이상향(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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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행복과 평화를 찾기가 어려움으로 영원한 행복의 세계를 꿈꾸며 그곳을 이상향이라고 불러왔다. 천국이나 극락도 아마 이 같은 이상향의 개념이 확장된 말일 것이다. 이상향이란 과연 어떤 곳일까? 이는 무거운 주제로, 과거의 현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의 저서 “뉴 아트란티스”에 등장하는 “벤살렘”은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섬으로, 이곳의 주민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며 정직하다. 관리들은 시민들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도, 받지도 않는다. 시민들은 순결하고 경건하다. 이곳의 시민들은, 유한한 인생에 있어서 순결 이상으로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베이컨은 이상향의 조건으로 고립된 섬과 순결을, 그리고 관리의 타락과 유흥이 범람하는 사회를 반 이상사회로 본 것이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의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이상국가의 시민들은 오만함을 만 악의 근원으로 본다. 따라서 그들은 오만함의 근원인 부, 귀족, 사유재산, 돈을 부정한다. 재화는 똑같이 분배되고, 똑같은 노동을 한다. 재산은 모두 공동 소유이다. 모든 개인의 근로 시간은 같으며 사회와 격리된 수도원, 수녀원, 맥주 집, 아카데미아는 부정된다.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유토피아는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약점으로 인해 달성 불가능한 사회임을 모어 자신도 인정을 했다.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유토피아라는 말도"존재하지 않는 곳Utopia"라는 뜻이다.

    영국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 1900-1954)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샹그릴라“는 히말리아 산맥 깊숙한 곳, 지금의 티베트에 있는 어느 이상향이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이곳은 영원한 행복의 마을로, 이곳의 사람들은 거의 영생을 한다.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도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곳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두 글에서는 모두, 인간의 불행은 인간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관점을 살필 수가 있다.

    15세기 스페인 소설가 몬탈보가 쓴 “에스프란디안의 모험”이라는 소설에는 깔리포르니아(California) 라는 섬이 등장한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이름은 이 소설로부터 연원한다. 황금으로 뒤덮인 이 섬은 여왕 깔리파가 통치하는 이상향이다. 소설 속의 깔리포르니아는 남자가 없는, 금과 진주로 치장한 아름답고 검은 여인들이 사는 이상향이다. 이상향으로 섬, 금이 있으나 남자들이 없는 곳을 말하고 있다. 툭하면 전쟁을 일삼은 중세의 남자들을 비판하고--중세는 물론, 고대나 현대에도 전쟁은 모조리 남자들이 일으켰다-- 역시 외부와 고립된 섬을 이상향의 조건으로 보았다. 그 읽기가 난삽하여 조금 읽다가 말았으니 그 자손을 어떻게 생산했는지 이 글의 필자는 알 수가 없다.

    이 같은 이상 사회들은 상상 속에나 존재할 수 있는 곳이지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니엘 데포(Daniel Defoe, 1659~1731)는 조금 다르다. 그가 쓴 “로빈손 크루소”는 이상향에 관한 소설이다. 당시의 영국 사회가 필요했던 삶의 조건을 진술함으로써, 영국이 당면했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상황을 극복코자 한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전략... , 나의 삶은 중간 수준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보면 높은 수준이고, 당신의 긴 인생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수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상태로서, 육체노동에서 오는 궁핍과 고난, 노고와 고통이 없으며, 상류계급의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거만함이나 사치, 야심, 질투심 때문에 허둥댈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가장 알맞은 상태라고 하셨다. 나의 부친은 한 가지 사실 즉, 이러한 삶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으로, 왕들조차 비참한 말로를 당하면 왕의 신분으로 태어났음을 슬퍼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도 양 극단의 중간--비천한 신분과 고귀한 신분의 가운데쯤 태어났었더라면 하거나, 현명한 사람들도 복을 빌 때는 가난도 부도 아닌 중간 정도의 신분을 빌며...중략...,재난은 상류층이나 하류층에 찾아오는 일이며, 중간계층에는 지극히 드문 일로, 이들에게는 상류층이나 하류층의 삶과는 달리 많은 굴곡도 없을 뿐만 아니라 허례허식, 사치, 낭비를 일삼는 부자들의 불안이나, 힘든 노동을 해도 부족한 살림살이와 조잡한 끼니를 때우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연적인 정신적, 육체적 불안과 고통이 없다는 것, 평화와 풍요야말로 중류층을 위한 봉사자라는 것, 그리고 절제, 온건, 평온, 건강, 사교, 그리고 모든 유쾌한 오락과 더불어 사람들이 원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중류층에게 내린 은총이라는 것, 매일의 빵을 위해 노예 같은 삶에 몸을 팔지도 않고, 평온한 영혼과 육체의 휴식을 앗아가는 난처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질투심으로 분노하지도 않고, 큰일을 이루려는 은밀한 욕망을 불태우지도 않으며...하략... 

    그러니까 중간계층이 두터운 사회가 이상향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이는 이룰 수 있는 사회이다.

    람은 격리되어 혼자 살 수가 없음으로 모여 사는 국가를 만든 것이고,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국가는 어울려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를 진다. 개인은 주어진 의무를 다 하고 지나친 욕망을 억제하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대함으로써 어울려 사는 삶의 틀을 손상 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가 이상향이라 할 것이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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