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Dr. Jekyll and Mr. Hyde

                  by

 Robert Louise Steve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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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의 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험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험을 통해 영혼을 불태운다. 스티븐슨의 작품 “보물섬”의 주인공 짐 호킨스는, 해적들의 대화를 들은 다음 모험에 나선다. “납치”의 주인공 데빗 발포어는 부모가 죽은 다음 집을 나가 수많은 모험에 직면한다. “검은 화살”에서는 주인공 딕 쉘턴이 아버지를 죽인 후견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리를 모아 숲속으로 숨는다. 이처럼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모험에 나서는 불굴의 의지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모험이 반드시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킬처럼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모험은 어떤 만용이나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는 욕망에 기인한 것이다. 지킬의 이야기에서 모험이란 물론 육체적인 것이지만, 내면의 영혼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외부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지킬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선하지도, 전적으로 악하지도 않은 인간성의 이중성으로 인해 그 사이를 방황하며 죽을 때까지 갈등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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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얽힌 이야기

     변호사 어터슨 씨는 환하게 웃어 본 일이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말을 할 때는 냉정하고 말 수가 적은데다 어눌하며 감정을 나타내는 일이 없는데 가냘픈 몸매, 큰 키, 창백한 얼굴이 음울하지만 호감이 가는 면도 있는 사람이다. 친구를 만나거나 포도주가 입맛에 맞을 때는 그의 눈에서 무엇인가 매우 인간적인 면모가 반짝이기도 하지만, 그런 면모는 그의 말이 아닌 만찬 후 무언의 눈빛에서, 그리고 직업 상 자주 토하는 열변 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자신에게 엄격했는데, 혼자 있을 때에는 진을 마심으로써 고급 포도주를 마시고 싶은 욕망을 억제했고, 연극을 좋아했지만 지난 20년 간 극장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타인에게 관대했으며,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배짱에 놀라면서도 질투라고 할 정도로 부러워하기도 했고 극단적인 경우에도 비난보다는 그런 사람들을 돕는 길을 택했다. 그는 묘한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카인의 이단을 인정하며, 내 동생일지라도 자기가 좋아 사탄의 길을 가겠다면 내버려 두겠다(창세기 4장9절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즉 어터슨은 카인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뜻으로 타인의 삶의 방식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옮긴이)'고 했다. 그 같은 태도로 인해, 그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경하여 마지막으로 찾는 사람으로,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이 흔했다. 사정이 이와 같아 그들이 사무실로 찾아오더라도 언제나 변함없는 자세로 대했다. 어터슨 씨는 아무리 좋아도 내색을 하는 일이 없었고 그의 우정 역시 이 같은 관대한 성품에 토대하고 있어, 관대한 처신을 한다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겸손한 사람들은 직업상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도 친분 관계를 맺는 것이 특징으로, 어터슨 씨야 말로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친척이거나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들로 그들과의 우정은 등나무처럼 세월 따라 자란 것이며, 따라서 그 우정에는 아무런 의도적인 목적이 없었다. 따라서 런던에서 잘 알려진 그의 먼 친척 리챠드 엔필드 씨와의 관계도 분명 그랬다. 그 두 사람이 함께 다니고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데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가사의하게 생각했다. 일요일에 산책을 하는 그들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몹시 따분한 모습으로 걷다가는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됐다는 듯 인사를 하더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 산책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매 주마다 즐기는 귀한 선물로 생각하여 자유로운 산책을 즐기려고 다른 오락거리를 피하거나 사업상의 약속마저 거절하곤 했다.

    때마침 그들이 런던 번화가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길이 좁고 주말에는 조용했지만, 주 중에는 장사로 붐비는 곳이었다. 그곳 주민들은 모두 장사가 잘 되는 듯했지만, 더 잘 하려는 경쟁심에서 손님을 끌려고 지나친 경쟁을 하다 보니 양 쪽 보도를 따라 여성 판매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 같은 화려함이 막을 내리고 비교적 한산해지는 일요일에도 어두컴컴한 주변과는 달리 이 거리는 숲속의 모닥불처럼 빛을 발했는데 새로 칠한 덧문이라든가 잘 닦아 놓은 놋쇠 손잡이들, 그리고 그 청결함과 상쾌한 분위기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골목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길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돌아 두 번째 문이 달린 건물 앞 작은 뜰 앞에서 길이 끝나는데, 음산한 느낌을 주는 바로 그 건물이 길 쪽으로 박공을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이층으로 된 그 건물은 창문이 없이 아래층에 문만 하나 있고, 이층 벽은 퇴색이 되어 구석구석에 오랜 세월 내팽개쳐진 흔적이 뚜렷했다. 문에는 사람이 왔다는 걸 알리는 종이라던가 문고리가 없었고, 부푸러기가 일고 색깔이 변해 있었다. 대문 앞에서 부랑자들이 웅크리고 잠을 자거나 문짝에다 딱성냥을 긋기도 했고, 계단 위에서 아이들이 가게 놀이를 하고, 학생들은 칼이 드는지 알아보려고 나무 장식을 깎아 보기도 했는데, 이처럼 반갑지 않은 방문객을 쫓아버리거나 그들이 남긴 상처를 수리하게 위해 나타난 사람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아무도 없었다. 길 건너편을 걷던 엔필드 씨와 어터슨 변호사가 그 건물 앞에 이르자, 엔필드 씨가 지팡이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문을 눈여겨 본 적이 있으세요?”

    상대방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했다.

    “참 이상한 일이 생각납니다.” 어터슨 씨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나?” 엔필드 씨가 대답했다.

    “음,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먼 곳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캄캄한 겨울 새벽으로 3시경이나 되었을까, 시내를 걷자니 그야말로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가로등 말고 아무것도 없었지요. 거리란 거리는 모두 잠들고--가로등이 줄을 이어 불을 밝힌 거리들은 교회 안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그렇게 걷다가 마침내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이며 경찰이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람 둘이 나타났어요. 한 사람은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 동쪽을 향해 뛰어가듯 잰 걸음을 했고, 또 한 사람은 여덟에서 열 살은 되었을까 하는 소녀로, 교차로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더라고요. 두 사람이 길모퉁이에서 부딪혔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런 다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 남자가 넘어진 소녀를 무작정 깔아뭉개니까 소녀가 엎어져 비명을 지르더군요. 끔찍한 그 장면에 비하면, 비명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저주 받은 저거노트(Juggernaut;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또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제도, 관행, 이념. 힌두교 크리슈나 신의 제8화신. 본문에서는 괴물 정도의 뉘앙스임. 옮긴이)와 같았습니다. 그 끔찍한 장면에 비하면 소녀의 비명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 그의 멱살을 잡아끄니, 울고 있는 소녀의 주변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고요. 그는 싸늘한 태도로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는데, 그 시선이 말할 수 없이 흉측해 제가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구원차 나타난 사람들은 소녀의 가족들이었죠. 그 아이를 치료할 의사를 부르자, 그가 곧 왔습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소녀는 별로 다친 데가 없고 놀란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고 했는데, 따라서 사건은 일단락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보고 첫눈에 몸서리를 쳤지요. 소녀의 가족들이 몸서리친 거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의사의 행동을 보고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인도 백인도 아닌 평범한 의사 겸 약제사로서, 에딘버러 억양을 심하게 쓰는 좀 거만한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우리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멱살을 잡은 사람을 흘끔흘끔 보는 그의 표정을 보니, 진저리를 치며 그를 죽이고 싶다는 듯 얼굴이 하얘지더군요. 그가 제 마음을 헤아리듯 저도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겠던데, 사람을 죽여서는 아니 됨으로 차선책을 택했습니다. 그런 좋지 않은 사건을 표면화해서 그의 이름을 런던 시내 전역에 걸쳐 욕되게 할 뜻도 있고 그럴 능력도 있다고 말해 주었지요. 만일 그에게 친구가 있고 체면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맹렬하게 퍼부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여자들을 떼어 놓았는데, 그녀들이 사납게 딱딱거렸기 때문이었지요. 그처럼 증오에 찬 얼굴들을 처음 보았고요,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그 남자가 음산하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역시 겁에 질린 모습도 보이구요- 시치미를 떼는데, 정말 악마 같았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 사건의 보상을 원한다면 보상하겠소. 신사라면 추문에 휩싸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겠죠.“ 하면서 ”금액을 말하시오“ 하더군요. 우리는 소녀의 가족을 위해 백 파운드를 요구했고, 분명 그는 끝까지 버티고 싶은 생각이 있는 듯했지만 우리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은 돈을 받아내는 일이었는데, 우리를 바로 저 문이 달린 저 건물로 데려가지 않았겠어요?- 열쇠를 급히 꺼내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 곧 십 파운드 상당의 금 그리고 부족한 돈은 쿠츠 은행(1692년에 설립된 영국 은행. 귀족들이 주 고객이었다. 옮긴이)의 당좌수표로 가져왔습니다. 수표에 서명된 이름은 제 이야기의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 이름을 밝힐 수는 없고, 다만 잘 알려진 이름으로 가끔 지상에도 발표되는 이름이었습니다. 많은 금액이었지만, 서명이 가짜가 아니라면 그 이상의 금액도 보장이 되는 사람의 서명이었지요. 전체적으로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고, 새벽 네 시에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가 백 파운드 가까운 타인 명의의 수표를 들고 나오는 일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그 사람에게 터놓고 말했지요. 그러나 그는 편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걱정하시 마시오. 은행 문이 열릴 때까지 함께 있다가 내가 직접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를 비롯하여 소녀의 아버지, 이웃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모두들 함께 우리 집으로 가 남은 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은행으로 몰려갔던 것입니다. 제가 바로 수표를 제시하고는, 여러 이유를 대며 가짜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짜가 아니었죠. 진짜였습니다. 어터슨 씨가 혀를 찼다.

    “쯧쯧.” 엔필드 씨가 말했다.

    “제 기분과 같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고 말구요, 기분 나쁜 이야기이죠. 아무도 그와는 인간관계를 갖기 불가능한 정말 혐오스러운 모습인데, 그 사람과는 달리 그 수표의 명의인은 예의범절이 지극한 사람으로 저명인사에다기(더군다나) 소위 선행을 하는 모범적인 신사라는 말입니다. 이거 사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직한 인사가 그 젊은이의 만행에 대해 터무니없는 돈을 치룬 것이지요. 결국, 저 문이 달린 건물을 협잡꾼의 집이라고 할 수밖에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지만 이야기가 다 끝나 게 아닙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는 침묵했다. 잠시 후 어터슨 씨가 갑자기 물었다.

    “그 수표의 명의인이 저 건물에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엔필드 씨가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제가 수표 명의인의 주소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어느 광장 근처입니다.” 어터슨 씨가 물었다.

    “그렇다면 저 문이 있는 건물에 대해 물어보았는가?” 대답은 이랬다.

    "묻지 않았습니다. 민감한 문제라서요. 물어보는 게 두렵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과 같다고나 할까요(계속 묻다보면 지킬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것이고, 엔필드는 지킬의 신분 노출을 우려하고 있다. 옮긴이). 일단 물어보면 돌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아, 돌을 굴린 다음 언덕 꼭대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돌은 혼자 굴러가 다른 돌을 건드리고, 결국은 한 선량한 사람(당신이 선량한 사람으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지킬을 가르킨다. 엔필드는 수표 명의인이 헨리 지킬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옮긴이)의 후원까지 굴러가 그의 머리를 때리고, 그리되면 그 가족은 성을 갈아야 한다는 말입니다(그가 죽으면 부인이 재혼을 해야 한다는 말. 옮긴이). 그래서 묻지 않는 게 제 신념이고요, 더구나 사는 곳이 이상하니 더 묻지를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거 참 좋은 신념이네 그려" 엔필드 씨가 계속했다.

     “하지만 그곳을 조사하고는 있지요. 집이랄 것도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문은 아무도 드나드는 일이 없고, 제가 주목하고 있는 신사만이 이따금 드나들 뿐입니다. 일층에는 없는 창문이 이층에는 광장을 향해 세 개씩이나 있는데, 언제나 잠겨 있지만 유리창은 깨끗하지요. 수시로 연기가 솟는 굴뚝이 하나 있어 누군가 살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아직 확신을 할 수 없는 것이, 광장 둘레에는 건물들이 서로 붙어 있어 한 건물의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걷다가 어터슨 씨가 입을 열었다.

     “엔필드, 자네의 생활 신념은 참으로 훌륭해.” 엔필드 씨가 대꾸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변호사가 계속했다.

     “그래서 내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 그 아이를 짓밟은 자의 이름말이야.” 엔필드 씨가 말했다.

     “음, 그걸 말한다고 해가 되지는 않겠지. 하이드, 라는 사람입니다.” 어터슨 씨가 물었다.

     “흐음, 어떤 사람으로 뵈던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외모가 정상이 아닌데다 뭔가 불쾌한, 징그럽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렇게 싫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틀림없이 어딘가 불구인 것 같기도 하고, 불구자인 것 같은 강한 느낌을 주는데, 어디가 그런지 꼬집어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이지만 정말로 이런 사람이다 ,라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명확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저의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그의 모습이 보이니까요.”

     어터슨 씨가 깊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걸었다. 이윽고 그가 물었다.

     “분명 열쇠를 사용하더라는 말이지?” 엔필드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어터슨이 말했다.

     “알아, 알고말고. 틀림없이 이상하다는 걸 나도 알지. 사실 내가 이름을 묻지 않은 이유는, 이미 그를 알고 있어서야. 리챠드, 자네 이야기 없던 일로 하세. 만일 자네가 잘 못 말한 게 있다면 다시 정확히 알려주게.” 상대방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충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정확한 사실입니다. 열쇠가 그에게 있었고, 더구나 지금도 그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걸 본 건 일주일도 채 안 됩니다.” 어터슨 씨가 한숨을 쉬었으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젊은이가 잠시 후 다시 말했다.

    “말이 많아 부끄럽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다시는 말을 않기로, 다시는 이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알겠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리챠드.”

하이드 씨를 찾아서

     그날 저녁 어터슨 씨는 우울한 기분으로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탁에 앉았으나 입맛이 없었다. 일요일이면 저녁 식사를 끝낸 후 난롯가에 앉아 서안 위에 놓인 무미건조한 신학 책을 읽다가 이웃한 교회의 시계가 자정을 알리면, 경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지만 그날 밤에는 잠옷으로 갈아입자마자, 촛불을 들고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금고의 문을 연 다음 깊숙이 감춰 두었던 지킬 박사의 유언장이라고 쓴 봉투에서 문서를 꺼내어, 그 내용을 읽으려고 찌푸린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유언장은 유언자의 자필로 쓴 것으로, 자필로 쓴 이유는 문서가 만들어질 때, 어터슨 씨가 그 자리에는 있었지만 문서의 작성에 개입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었는데, 유언장은 의학박사이고 민법학자이며 법학박사이고 왕립아카데미 회원인 헨리 지킬이 사망 시, 그의 모든 재산은 그의 “친구이며 후원자인 에드워드 하이드”에게 상속되리라는 것과 헨리 지킬 박사가 “실종 또는 원인 불명으로 3개월 이상 부재 시”에는 에드워드 하이드가 지체 없이 헨리 지킬의 사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박사의 시중을 들어온 가솔들에게(는) 소액의 돈을 주는 것 이상의 어떤 부담이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문서는 오랫동안 어터슨 변호사의 눈엣가시였다. 이 문서는 변호사로서 그리고 건전하고 일상적인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상궤를 벗어난 일이야말로 몰염치라고 믿는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날 밤까지 그의 분노를 돋군 것은 하이드 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는데, 그를 모른다는 것이 그날 밤 돌연 그를 정확히 안다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유언장의 문제점은 에드워드 하이드 ,라는 이름만 있지 그가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하이드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랜 세월 그의 눈을 가려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했던 안개가 걷히자, 돌연 어떤 사악한 존재에 대한 또렷한 예감이 떠올랐다. 마음에 거슬리는 그 문서를 금고에 넣으며 그가 말했다.

     "미친 짓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 거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겁이 나는군.“

     그렇게 말하고는 촛불을 끈 후 두터운 외투를 입고, 그의 절친한 친구이며 의사인 래니언 박사가 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장소인, 그의 자택이 있는 병원 단지 카벤디시 광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알고 있다면 바로 래니언일 거야’ 라고 그는 생각했다.

     정중한 하인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으며 현관문으로부터 래니언 박사가 홀로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식당으로 지체 없이 안내를 했다. 그는 다정하고 건강한 홍안의 신사로, 나이에 걸맞지 않는 새치머리에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행동에 절도가 있었다. 어터슨 씨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그를 맞았다. 그의 이 같은 친절은 좀 꾸민 티가 보이긴 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죽마고우이고, 중고등 학교를 비롯해 대학교 동창으로, 자신은 물론 서로를 존경하고, 둘이 만나 마음껏 즐기는 일이 언제나 있었다. 잠시 여담을 나눈 다음, 어터슨 변호사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불쾌한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그가 말했다.

     “래니언, 자네와 나는 틀림없이 헨리 지킬의 오랜 친구이지?” 래니언 박사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러나 우리들은 이제 늙었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요즈음 그를 전혀 못 만나고 있어.” 어터슨이 말했다.

    “그래?” “그와 자네가 공동의 관심사로 끈끈한 관계인 줄 알았는데.” 래니언이 대답했다.

     “그랬었지. 그런데 헨리 지킬이 내게 너무 이상하게 변한 것이 10년도 더 돼. 잘 못 가고 있어. 정신이 이상한 거야. 물론 옛 우정을 생각해서 당연히 그에게 계속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그에게 괴상한 점이 좀 있어.” 그가 돌연 얼굴을 붉히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비과학적인 헛소리는 데이먼과 피시아스(진정한 우정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 상의 두 인물. 시라큐스 왕 디오니시우스에게 반역한 죄로 피시아스는 사형 판결을 받는다. 죽기 전 고향의 가족을 만나고 오겠다는 피시아스를 왕은 허락지 않았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대신 처벌을 받겠다는 데이먼의 간청에 따라 피시아스의 가족 방문을 허락한다. 왕의 예상과는 달리 피시아스는 정한 날짜에 돌아오고, 이에 감동한 왕은 피시아스를 석방한다. 옮긴이)도 적대 관계로 만들 거야.”

     그가 화를 내어 어터슨 씨는 조금 안심을 했다. ‘그들은 어떤 과학적 관점에서만 견해가 다른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부동산양도증서 작성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과학적 이견보다 더 고약한 일은 없지’ ,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는 친구가 마음을 가라앉히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그에게 묻고자 찾아온 질문을 했다. 그가 물었다.

     “혹시 지킬이 보호했던 하이드 ,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 래니언이 대답했다.

    “하이드? 없어, 내 생전 그런 사람 이름도 들어본 일이 없네.”

     하이드에 대해 래니언이 말한 정보는 그뿐이었고, 집으로 돌아온 어터슨 변호사는 날이 밝을 때까지 크고 어두운 침대 위에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어두움 속에서 의문에 휩싸여 마음이 갈피를 못 잡은 편치 않은 밤이었다. 어터슨 씨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교회의 종이 6시를 알렸지만 그는 아직도 그 문제에 골몰했다. 지금까지는 지적인 추론을 했지만 이제는 상상력이 동원되어, 아니 상상에 사로잡혀, 커튼을 친 방의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누워 뒤척이고 있자니, 엔필드 씨의 이야기가 일련의 또렷한 그림이 되어 그의 마음속에 펼쳐졌다. 밤이 내린 도시에는 휘황한 불빛이 비췄고, 곧 이어 한 사나이가 재빨리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러자 박사의 집으로부터 한 어린이가 뛰어나가자 둘이 부딪혔고, 어린이의 비명에는 아랑곳없이 넘어진 어린이를 그 괴물이 밟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또 어느 부잣집의 방이 보였는데, 그의 친구인 지킬이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고, 방문이 열린 다음 침대의 커튼이 젖히자 잠자던 사람이 잠을 깼는데, 아! 바로 그의 옆에는 잠을 깨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인물이 서 있었고, 잠을 자야 하는 그 시간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장면도 보였다. 이 두 장면에 나타난 인물에 대한 생각이 밤새도록 변호사를 떠나지 않았고,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도, 그 인물은 잠든 집들 사이를 살금살금 빠져나가 더 빨리, 현기증이 날 정도로 재빨리, 가로등이 켜진 도시의 넓은 미로를 달리며 거리마다 소녀를 쓰러뜨려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다. 어터슨 씨가 알아볼 수도 있는 얼굴도 없었고 꿈속에서조차 얼굴이 안 보였으며, 얼굴이 보이는 경우라도 볼 수 없도록 혼란을 시킨 다음 곧 시야에서 사라져 버려, 실제의 하이드 씨를 만나보겠다는 이상할 만큼 강렬하고 억제할 수 없는 호기심이 어터슨 씨의 마음속으로부터 솟아올랐다. 일단 그를 볼 수만 있다면, 미심쩍은은 일이 늘 그렇듯 면밀한 조사를 통해 그 사건도 밝혀지고 풀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친구 지킬의 하이드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집착과 연대감 그리고 그 유언장의 놀라운 조항에 관한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의 얼굴, 무자비한 사람의 얼굴, 불현 듯 나타나 냉정한 엔필드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혐오감을 일으킨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날부터 어터슨 씨는 상점들이 늘어선 그 골목길을 자주 걷기 시작했다. 문을 열기 전 아침, 장사가 한참인 정오, 그리고 가끔은 안개가 가린 도시의 달 아래, 가로등이 모두 켜진 밤, 홀로 또는 사람들 속에 어터슨 씨가 늘 서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만일 그가 숨는 자(Mr. Hyde; Hide와 발음이 같은데 따른 비유. 옮긴 이)라면 나는 찾는 자(Mr. Seek)이다.’

     마침내 그의 인내력이 보답을 받게 되었다. 어느 맑고 건조한 밤이었다. 대기는 차갑고, 거리는 무도장의 바닥처럼 깨끗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가로등들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빛을 밝히고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상점들이 문을 닫을 10시 무렵,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런던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낮게 들려왔음에도 거리는 조용했다. 잔잔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길 양쪽의 집들에서 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는데, 그의 앞 멀리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어터슨 씨가 그 자리에서 잠시 서서 귀를 기울이니, 가벼운 발걸음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밤길을 걸으며, 도시가 내는 웅얼거림 속에서도 분명히 달리 들리는, 멀리서 오는 사람의 발자국이 내는 특이한 소리에 그는 이미 익숙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신경을 곤두세워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강렬한 예감에, 그는 바로 그 문이 달린 건물의 뜰 입구로 가 몸을 숨겼다.

     발걸음이 재빨리 다가왔고, 미지의 인물이 길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변호사가 숨은 장소에서 내다보니, 그가 만나야할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작고 매우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비록 멀리서이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강한 반감이 일었다. 그는 시간을 아끼려는 듯 거리를 건너 바로 그 문을 향해 곧장 왔고, 집에 도착한 듯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가 들어가려는 순간 어터슨 씨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오며 그의 어깨를 쳤다.

     “하이드 씨지요?”

     그가 쉬익 소리가 나는 숨을 들이쉬며 뒤로 흠칫했다. 그러나 그의 놀람은 한 순간이었고, 비록 변호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왜 그러시오?” 변호사가 대답했다.

     “오시는 걸 보았지요. 나는 지킬 박사의 오랜 친구인 곤트 가에 사는 어터슨입니다. 내 이름을 들었으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만났으니 괜찮다면 나도 함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이드 씨가 열쇠를 문에 끼우며 대답했다.

     “지킬 박사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는 외출했어요.” 그리고 물었다.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아셨나요?” 어터슨 씨가 말했다.

    “그냥 당신을 보고 알았지요.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소?” 하이드 씨가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무슨 부탁을?” 변호사가 물었다.

    “당신 얼굴을 보여줄 수가 있겠소?”

     하이드 씨는 주저하는 빛을 보이더니, 곧 결심을 한 듯 도전적인 태도로 얼굴을 들었고, 두 사람은 잠시 뚫어지게 서로를 응시했다. 어터슨 씨가 말했다.

    “앞으로 당신을 알아 볼 수 있겠습니다. 도움이 되겠어요.” 하이드 씨가 대답했다.

    “아,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 주소를 드리지요.” 그리고는 소호(당시 런던의 빈민가. 옮긴 이)에 있는 한 거리의 번지를 건넸다. 어터슨 씨는 생각했다. 아! 이 사람도 그 유언장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웅얼웅얼 주소만 읽었다. 하이드 씨가 물었다.

    “자, 어찌 나를 아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어터슨 씨가 대답했다.

    “누가 말을 해서.”

    “누가요?” 어터슨 씨가 말했다.

    “당신도 아는 친구들이지요.” 하이드 씨가 조금 거슬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알다니, 그들이 누굽니까?” 변호사가 대답했다.

    “지킬도 그 중 한 사람이고.” 하이드 씨가 분노에 차 외쳤다.

    “지킬이 그랬을 리가 없어.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어터슨 씨가 말했다.

    “이봐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하이드 씨가 고함을 지르고는 무시무시한 웃음을 짓더니, 다음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빨리 문을 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이드 씨가 사라진 다음 어터슨 씨는 잠시 그 자리에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런 다음 큰 길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한 그는, 정신적인 혼란에 빠진 사람처럼 이따금씩 걸음을 멈추고는 이마에 손을 댔다. 그가 걸으면서 생각한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 일이었다. 하이드 씨는 얼굴이 창백하고 몸집이 왜소한데다 모습이 불구였는데 이러이러한 기형이다, 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모습으로, 음산한 미소에다 수줍음과 대담함이 음흉하게 뒤섞인 태도로 변호사를 대했고, 속삭이듯 말하는 쉬고 갈라진 목소리 등 모든 것이 거슬렸는데 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어터슨 씨가 지금까지 그에게서 느낀 알 수 없는 거부감, 혐오감, 공포감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갈피를 못 잡고 중얼댔다.

    ‘뭔가 틀림없이 있어.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더 있어. 맙소사, 그는 거의 인간이 아니야! 혈거인이라고나 할까?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펠박사(17세기 영국 풍자시인 톰 부라운의 시를 말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싫어요, 펠박사.‘  옮긴 이)? 혹 흙덩어리에 깃든 악령이 아닐까? 맞아, 그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가엾은 나의 옛 친구 해리 지킬, 바로 자네의 새로운 친구 하이드의 얼굴에서 악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네‘

    그 골목길에서 길모퉁이를 돌면 고색창연한 집들에 둘러싸인 광장이 있는데, 퇴락한 그 집들은 각 층이나 각 방마다 지도제작업자들, 건축가들, 수상한 변호사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회사의 직원들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길모퉁이로부터 두 번째 집은 집 전체를 한 사람이 세를 들고 있었는데, 윗부분의 유리로 된 채광창만 환한 채 어두움에 휩싸인 정문은, 부잣집의 안락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문 앞에 선 어터슨 씨가 문을 두드렸고, 단정한 옷차림의 나이든 하인이 문을 열었다. 변호사가 물었다.

     “푸울, 지킬 박사 집에 있는가요?” 밝게 타는 난로(시골풍을 흉내 낸)불로 따듯해진, 값비싼 참나무 가구가 놓인 낮은 천장의 넓고 안락한, 돌로 바닥을 깐 응접실로 방문객을 안내하며 푸울이 말했다.

    “계신지 알아보겠습니다. 여기 난롯가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식당으로 가시겠습니까?” 변호사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지요.“ 그리고는 난로 가까이 다가섰다. 이 응접실은 지킬 박사가 자랑하는 곳으로, 어터슨도 런던에서 가장 유쾌한 곳이라고 늘 말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유쾌하기는커녕 몸서리를 쳤는데, 하이드의 얼굴이 기억 속에 남아, 그는 생전 처음 구역질과 혐오감을 느꼈고(그에게는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의 어두운 마음은, 장롱에 반사되어 흔들거리는 난롯불과 천정에서 춤추는 그림자 속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사건을 보는 듯했다. 푸울이 돌아와 지킬 박사의 외출을 알렸을 때 그는 오히려 안도감이 생겨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말했다.

     “푸울, 하이드 씨가 사용하지 않는 해부실로 들어가는 걸 보았소. 지킬 박사가 부재중에 그리해도 되는 겁니까?” 하인이 대답했다.

     “그러믄요, 어터슨 선생님. 하이드 씨가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터슨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푸울, 당신의 주인이 그 젊은이를 꽤나 믿는 모양이오.” 푸울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죠. 그에게 모든 일을 시키십니다.” 어터슨이 물었다.

    “내가 이 집에서 하이드 씨를 만나본 기억이 없는데?” 하인이 대답했다.

    “그러실 겁니다, 선생님, 그가 이 댁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실험실만 왔다 가곤 합니다.

    “알겠소, 나 가겠소, 푸울.”

    “안녕히 가십시오, 어터슨 선생님.”

    변호사는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가엾은 해리 지킬, 그는 지금 깊은 어려움에 빠져 있어.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에는 시효라는 게 없지. 옳지, 틀림없어. 옛날 지은 죄의 넋, 알 수 없는 저주의 재앙, 오랜 세월 잊고 이기심이 눈감아 준 죄악에 대한 징벌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찾아 온 거야(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 퀸투스 호라티우스의 송시 3권 두 번째 송가에서 인용한 말. ’벌은 절름발이라서 천천히 온다. 그러나 반드시 온다.‘ 옮긴이). 이런 생각이 들자 변호사는 기억을 샅샅이 더듬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고, 행여나 지은 죄가 도깨비 상자 속에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의 과거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자신의 삶을 자신만만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란 거의 없는 법이라 그는 자신이 저지른 소소한 잘못까지도 부끄러워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그는, 그가 저지를 뻔했으나 피할 수 있었던 많은 잘못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다시 지킬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 온 그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겨, 생각해보았다.

     ‘그 젊은이를 자세히 조사하면, 틀림없이 무슨 비밀이 있어. 그의 외모로 판단컨대 지킬의 불운은 태양빛이라 할 만큼, 그에게는 어두운 비밀이 있을 거야.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 해리의 침대 옆에 도둑처럼 몰래 서 있는 이 흉물을 생각하면 내 등골이 서늘해지고, 가엾은 해리, 정신을 차리게나! 자네는 위험에 빠져 있어. 만일 하이드가 자네의 유언장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상속을 받으려고 난리를 칠 것이기 때문일세.’ 그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 지킬이 허락한다면, 허락하기만 한다면 이를 막기 위해 내 온 힘을 다 해야 해.’ 그는 유언장의 이상한 구절들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확실하게 새겼다.

 평온 속의 지킬 박사

     두 주일 후 어터슨은 운이 좋게도 대여섯 명의 친한 친구와 함께 지킬 박사의 유쾌한 만찬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모두 지성인들에다 저명인사들이었고 좋은 포도주 맛을 가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돌아간 후 어터슨 씨는 자리에 남았다. 새로울 것이 없는 늘 있는 일이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떠들썩하고 유쾌한 손님들이 떠나가면 곧 집주인은 기꺼이 이 무뚝뚝한 변호사의 옷깃을 잡았던 것이다. 집주인은 이 말 없는 동료와 잠시 자리를 함께 하기를 좋아하여, 왁자지껄한 모임 끝에 조용조용한 말소리로 어터슨의 침묵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킬 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난로를 가운데 두고 어터슨과 마주앉은 그의 모습은--키가 크고 건장하며 부드러운 얼굴의 50대 남자로, 다소 짓궂은 눈매는 지적이고 관대한 모습으로--그의 표정으로 보아 어터슨 씨를 끔찍이나 아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어터슨 씨가 말했다.

    “지킬, 자네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네. 자네의 유언장을 알고 있지?” 이 질문에 언짢은 기색이 얼핏 지킬의 얼굴을 스쳤지만,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가 말했다.

    “어터슨, 딱도 하지. 나 같은 고객을 상대하다니. 내 유언장으로 인해 자네처럼 마음 고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네. 내 학설을 이단이라고 떠드는 밴댕이 래니언 빼고는 말이야. 아, 알지 알아, 그가 좋은 친구라는 걸--자네 내 말에 눈살을 찌푸릴 필요 없네--그는 뛰어난 친구이고, 나는 언제나 그에게서 많은 걸 배우려고 하지. 그러나 어찌됐던 그는 소갈머리 없는 현학자이지. 무지하고 주제넘은 현학자란 말일세. 나를 제일 실망 시킨 사람이야.” 이처럼 초점을 벗어난 엉뚱한 말에 어터슨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자네 말 인정할 수 없네.” 박사가 조금은 씁쓸히 말했다.

    “내 유언장이라고? 그럼 알고말고. 자네가 그런 말을 했지. ” 변호사가 계속했다.

    “으음, 다시 말하겠네만 하이드 청년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게 있어.”

    지킬 박사의 훤하고 잘 생긴 얼굴이 입술까지 하얘졌고, 눈 가에는 어두움이 스쳤다. 그가 말했다.

    “그 일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네. 더 이상 거론치 않기로 한 일로 기억하네만.” 어터슨이 말했다.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어.” 박사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들었어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나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군. 어터슨, 난 고통스러운 입장에 있어. 매우 이상한, 정말로 이상한 처지라는 말이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어터슨이 말했다.

    “지킬, 자네는 나를 알지. 날 믿어도 돼. 나를 믿고 깨끗이 털어놓고 말하게. 내 틀림없이 자네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겠네.” 박사가 말했다.

    “고마운 나의 어터슨, 훌륭한 정말 훌륭한 친구, 뭐라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자네를 전적으로 믿어, 이 세상 누구보다도, 할 수만 있다면 내 자신보다도 자네를 더 믿겠네. 그런데 그 일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지. 그리 나쁜 일도 아니고. 자네가 마음을 편히 갖도록 한 가지 말하지. 때가 오면 하이드를 내치겠네. 맹세하지. 정말 고맙고, 한마디 더하면, 어터슨, 확실히 자네는 이 일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어. 이는 개인적인 일이니, 그만 덮어 두게.“

     어터슨은 난롯불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네 말이 옳아.” 박사가 말했다.

    “음, 그런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 마지막으로 자네가 알았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네. 사실 나는 정말 가엾은 하이드에게 관심이 있어. 자네가 그를 만났다는 걸 알고 있네. 자네를 만났다고 하더군. 자네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나는 진심으로 그 젊은이가 걱정이 되네. 어터슨, 만일 내가 없더라도 그가 권리를 찾도록 돌보겠다고 약속해 주게. 자네가 사정을 안다면 그리해 주리라 믿고, 약속을 해준다면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걸세.” 변호사가 말했다.

    “내가 그를 좋아할 것인지 단언할 수 없군.” 지킬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그를 좋아하라는 말이 아니야. 그의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 내가 이곳에 없더라도 나를 위해 그를 도와주라는 말일세.” 어터슨은 억제할 수 없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가 말했다.

    “으음, 약속하지.”

캐루 씨 피살 사건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18_년 10월, 이상한 강력사건이 발생하여 런던이 발칵 뒤집혔고, 무엇보다도 사건의 희생자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서 더욱 그랬다. 사건은 일부만 알려졌지만 충격적이었다. 템즈강에서 가까운 집에 홀로 사는 어느 하녀가, 밤 열한 시경 잠을 자려고 이층 침실로 올라갔다. 런던 시에 잠깐 안개가 내리긴 했었지만 자정 무렵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하녀가 창문으로 내려다 본 거리는 보름달이 비쳐 환했다. 그녀는 창문턱 아래 놓인 침대에 걸터앉아, 낭만적인 기분으로 달콤한 꿈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거리를 가는 사람들이 더 이상 평화스러울 수가 없고 세상이 정말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생각을 그 때처럼 해 본 적이 결코(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사건을 진술하면서 결코, 라는 말을 반복했다)없었다고 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앉아 있는데, 단정한 백발의 한 노신사가 길을 따라 다가왔고, 키가 작은 한 남자가 그를 향해 걸어왔는데 처음에는 이 사람에게 눈길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말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가까이 다가서자(바로 그녀의 창 아래서), 노인이 매우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하며 키가 작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말의 내용이란 별 중요한 것이 아닌 길을 묻는 듯했지만, 그가 말을 할 때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쳐 그녀는 그 장면을 재미있게 내려다보았고, 그는 단정하고 고풍스런 예법으로 그러나 격식을 갖춘 고고한 인품으로 속삭이듯 말을 했다. 그에게서 눈을 돌려 키가 작은 사람을 보니 놀랍게도 그는 하이드 씨가 틀림없었는데, 언젠가 그가 그녀의 주인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의 모습을 보고 꺼림칙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는 손에 든 굵은 지팡이를 까불대고 있었는데, 물음에는 한마디 대답도 없이, 참고 듣는 듯했지만 불순한 의도가 있는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불 같이 화를 내며 발을 구르고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미친 사람처럼(하녀 말에 따르면) 날뛰기 시작했다. 노인이 매우 놀라고 당황한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하이드 씨는 욕지거리와 함께 지팡이로 노인을 때려 쓰러뜨렸다. 다음 순간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쓰러진 노인을 짓밟자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하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두 시가 되어서야 그녀는 제정신이 들었고, 경찰에 알렸다. 살인자는 이미 멀리 도주한 후였지만, 길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폭행을 당한 시신이 누워 있었다. 살인 도구였던 지팡이는 보기 드물게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였지만, 무자비한 폭행으로 인해 가운데가 부러져 그 반쪽이 길 옆 시궁창에 버려져 있었고, 다른 반쪽은 틀림없이 살인자가 가져간 듯했다. 희생자의 옆에 지갑과 금시계가 있었으나, 희생자가 아마 우체통에 넣으려고 했던, 우표가 붙고 봉인이 된 봉투에는 어터슨 씨의 이름과 주소 말고는 편지지가 들어있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어터슨 씨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 편지봉투를 받아 읽고, 전후 사정을 듣고 난 다음 편지를 가져온 사람에게 신중하게 말했다. “시신을 보기 전에 무슨 말을 하겠소. 이는 중대한 사건이야. 옷을 입을 터이니 조금 기다리시오.”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그는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한 후 시신이 안치된 경찰서로 마차를 몰았다. 시체실로 들어선 순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맞아, 바로 그이야. 유감스럽게도 댄버스 캐루 경이야.” 경찰관이 외쳤다.

    “아, 이럴 수가?” 다음 순간 직업적 본능으로 그의 눈이 빛났다. 그가 말했다.

    “이 사건은 대단히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범인을 찾도록 우릴 좀 도와주십시오.” 하녀가 목격한 사항을 경찰관이 간단히 설명했고, 부러진 지팡이도 보여주었다.

    경찰관이 하이드를 거명하여 어터슨 씨는 움찔했지만, 부러진 지팡이를 보니 수년 전 그가 헨리 지킬에게 선물한 바로 그 지팡이였고, 따라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물었다.

    “하이드 씨는 키가 작던가요?” 경찰관이 대답했다.

    “하녀 말에 따르면 키가 유별나게 작고, 모습이 흉측했다고 합니다.” 어터슨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머리를 들며 말했다.

    “내 마차를 타고 함께 갑시다. 그의 집으로 당신을 안내 하겠소.”

    시간은 아침 아홉 시 경으로, 계절이 바뀌고 나서 처음으로 안개가 낀 아침이었다. 짙은 초콜릿 빛깔의 안개가 하늘 낮게 드리웠고, 이 철옹성 같은 안개 속에 바람이 계속 불어와 마차는 거리를 기어가듯 했고, 늦은 저녁처럼 어두운데다 큰 화재가 난 듯한 휘황한 불빛과 가끔 안개가 잠깐 걷히는 동안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하며 황혼녘 같은 온갖 불빛이 어터슨 씨의 눈에 들어왔다. 이처럼 햇빛이 바뀌면서 더러운 거리와 꾀죄죄한 행인들,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는 가로등과 어두워질 때만 켜는 가로등 때문에 소호의 음울한 거리는 악몽 속 어느 도시의 한 구역 같았다. 또 그는, 때때로 가장 양심적인 사람조차도 결딴을 내는, 법과 사법경찰에 대한 공포감도 들었다.

    그가 안내한 집에 마차가 도착하자 안개가 잠시 걷혔고 우중충한 거리와 선술집, 싸구려 프랑스 식당, 싸구려 물건을 비롯하여 2페니짜리 샐러드를 파는 상점, 누더기를 걸친 채 대문 앞에 떼 지어 있는 아이들, 아침부터 술잔을 손에 든 다양한 국적의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다음 순간 호박 색깔의 갈색 안개가 다시 내리자 주변의 지저분한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곳이 바로 헨리 지킬이 아끼는 사람으로, 2십5만 파운드를 상속 받을 사람의 집이었다.

    얼굴이 뽀얀 백발의 노파가 문을 열었다. 그녀의 심술궂은 얼굴은 위선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예의는 밝았다. 바로 하이드 씨의 집이 옳다고 했고, 그는 외출 중이라고 했다. 전 날 밤 매우 늦게 귀가를 했고, 외출을 한 지가 채 한 시간도 안됐으며,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으로 보아 그의 이 같은 행동은 하등 이상할 게 없고, 자주 집을 비우며 거의 두 달만에야 어제 밤 그를 보았다고 했다. 변호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방을 좀 보아야 하겠는데요.” 이 말에 하녀는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아, 그에게 문제가 생겼군요!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어터슨 씨와 수사관이 서로 마주본 다음, 수사관이 물었다.

    “보아하니 그는 동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인, 저와 이 분이 좀 둘러보겠습니다.”

    그 노파가 아니었더라면 텅 비었을 커다란 저택에, 하이드 씨는 불과 두 개의 방만을 사용했는데, 그 방들에는 호사스럽고 좋은 취미를 말해 주는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진열장에는 포도주가 가득했고, 은식기에다가 우아한 식탁보와 냅킨, 그리고 미술에 조예가 깊은 지킬이 선물로 주었을(어터슨 씨의 추측으로) 멋진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고, 아름다운 색깔의 촘촘히 짠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방에는 최근 마구 뒤진 여러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바닥에는 주머니가 뒤집혀진 옷가지가 널려 있었고,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서랍들은 열린 채, 난로 위에 재가 덮여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종이를 태운 듯했다. 난로의 잔불 속에서 수사관은 타다 남은 녹색의 수표책을 찾아냈고, 문 뒤에서 지팡이의 다른 반쪽도 발견되자 그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듯 기쁜 빛을 띠었다. 은행을 방문하여, 살인자의 구좌에 수천 파운드의 돈이 예치되어 있음을 알아내자 수사관은 더 없이 만족해 하였다. 그가 어터슨 씨에게 말했다.

    “범인을 체포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세요. 독안에 든 쥐입니다. 그는 정신이 나간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팡이를 남겨 놓거나 수표책을 태울 리가 없지요. 아암, 그렇고말고요. 사람에게 돈이란 생명과 같은 것이니까요. 은행으로 가 기다리면서 그의 인상착의에 관한 전단이나 뿌리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이드 씨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하녀 반장조차도 그를 본 것이 두 번에 불과했으며, 그의 가족 소재지도 알 수 없었고, 사진을 찍은 적도 없었으며, 그를 목격한 몇 안 되는 사람들도 그의 모습에 관해 일반 목격자도 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진술을 했으므로, 그의 인상착의에 관한 전단을 뿌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 사항에서만 진술이 같았는데, 바로 슬금슬금 도망치는 그의 표현하기 힘든 기괴한 모습에서 목격자가 느낀 공포감이었다.

편지 사건

     늦은 오후, 어터슨 씨는 지킬 박사의 집에 도착하여 다시 푸울의 안내를 받아 주방을 지나 한 때 정원이었던 후원을 건너 실험실 또는 해부실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건물(앞에서 말한 길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돌아 두 번째 문이 달린 건물과 동일한 건물임. 옮긴이)로 갔다. 지킬 박사는 그 건물을 어느 저명한 외과의사로부터 사들였는데, 박사의 취향이 해부학보다는 화학실험이었으므로 후원 한 구석에 있는 그 건물의 용도를 바꿨던 것이다. 변호사는 그 구석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음침한데다 창문이 떨어져 나간 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한 때는 공부에 열심인 학생들로 꽉 찼었으나 이제는 괴이한 정적 속에 잠긴 강의실, 화학실험 도구들이 놓여 있는 탁자들, 약 바구니들과 포장 끈이 흩어져 있는 마루, 어두운 천정에 희미하게 걸린 등불을 두리번거리며 지나가자니 낯설고 기분이 언짢았다. 강의실 끝에는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오르면 붉은 천으로 가려 놓은 문이 있는데, 그 문을 통해 어터슨 씨는 마침내 지킬 박사의 밀실에 도착했다. 그곳은 넓은 방으로 유리진열장과 가구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체경과 책상이 있었고,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세 개의 창문은 쇠창살을 한 채 먼지에 쌓여 있었다. 벽난로가 타고 있었고,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여 어두웠으므로 벽난로 위의 등을 켜 놓은 채 난로 가까이 지킬 박사가 죽은 듯 앉아 있었다. 방문객을 맞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찬 손을 내밀어 낯선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푸울이 자리들 뜨자 곧 어터슨 씨가 말했다.

    “여보게, 소식을 들었나?” 박사가 어깨를 들썩하며 말했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 식당에서 들리더라구.” 변호사가 말했다.

    “내 말 들어보게. 자네처럼 캐루 씨는 내 고객이었지. 알고 싶은 일이 있어. 자네 미치지 않고서야 그 친구를 숨겨 놓은 건 아니겠지?” 박사가 외쳤다.

    “어터슨 맹세하지. 그를 다시는 안 보겠다는 걸 하나님께 맹세하겠어. 이 세상에서 그와 단절할 걸 내 명예를 걸겠네. 모든 게 끝났다구. 사실 그도 나의 도움을 원치 않아. 자네는 나만큼 그를 모르지. 그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돼. 그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내 말 믿게. 그에 대한 말은 더 이상 없을 걸세.”

     그의 말을 듣고 변호사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친구의 열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변호사가 말했다.

    “그를 매우 신뢰하는 모양이네만, 자네 말대로 되었으면 좋겠네. 사건이 재판에 부쳐지면, 자네 이름이 밝혀질 것이야.” 지킬이 대답했다.

    “절대로 그를 믿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 하지만 한 가지 도와주게. 내가 편지 한 장을 받은 게 있는데, 경찰에 제출을 해야 할지 여부를 모르겠군. 자네에게 보여줄 테니, 어터슨, 잘 판단해주게. 자네야말로 내가 제일 믿는 사람이지.” 변호사가 물었다.

    “그의 정체가 들어날까봐 겁이 난다, 이 말이지?” 지킬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 하이드와는 끝났고 이제 아무런 관련이 없어. 이 몹쓸 사건으로 내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을까 걱정이야.” 어터슨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친구의 이기심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이 말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생각 끝에 그가 말했다.

    “음, 그 편지를 보여주게.”

    반듯한 글씨로 쓴 편지에는 ‘에드워드 하이드’ ,라는 서명이 있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그의 후견인인 지킬 박사의 끝없는 보살핌에 대해 제대로 된 보답을 못했고, 그가 확실한 도피 방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안전을 위해 노고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편지는 변호사의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지킬을 배려하는 돈독한 마음이 담겼고, 따라서 그는 의심을 키운데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그가 물었다.

    “편지 봉투는 가지고 있는가?” 지킬이 대답했다.

    “어떻게 할지 몰라 태워 버렸네. 소인도 없었고. 인편으로 보냈더군.” 어터슨이 물었다

    “내가 가지고 가서 하루 밤 생각해볼까?” 지킬이 말했다.

    “나를 위해 자네가 전적으로 판단해주게. 나는 자신이 없어.” 변호사가 대답했다.

    “생각해보겠네. 한 가지 더, 자네의 실종에 관한 그 유언장의 유언들은 하이드가 한 말인가?”

지킬 박사는 거의 졸도를 할 듯, 입을 꽉 다문 채 머리를 끄덕였다. 어터슨이 말했다.

    “내 알고 있었어. 자네를 죽이겠다는 의도였지. 잘도 피했네.” 지킬 박사가 심각하게 대답했다.

    “그 이상 중요한 것을 알았네. 배운 게 있어. 아, 어터슨, 배운 게 있다구(변신에 관해 암시하고 있다. 옮긴이).” 그가 두 손으로 잠시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문을 나서며 변호사는 푸울과 잠깐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오늘 누군가가 그 편지를 전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긴 사람입디까?” 그러나 푸울은, 집배원이 다녀간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봉투가 없는 편지만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다시 공포에 사로잡혔다. 분명 그 편지는 실험실에 있었고, 그렇다면 그 편지는 아마 실험실 책상에서 썼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판단을 달리해서 보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할 문제였다. 그가 거리로 나서자, 신문팔이 소년들이 거리를 지나며 악을 쓰듯 외쳤다.

    “호외요 호외! 하원의원이 충격적으로 살해되었습니다.” 그 외침은 그의 친구요 고객이었던 한 사람의 장례식을 알리는 부고나 마찬가지였고, 그는 또 다른 친구의 명성이 그 사건의 추문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는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해야 했고, 그는 자신감이 몸에 밴 사람이었지만,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니라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는 자기 집 난롯가에서 사무장인 게스트 씨와 난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고, 난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그의 집 어두운 지하실에 오랜 동안 저장해두었던 묵은 포도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날개를 편 안개가 아직 도시를 뒤덮고 있었고, 가로등은 홍옥처럼 빛을 내고 있었는데, 구름이 내려앉은 깊은 안개 속을 도시 속 삶의 행렬이 강풍처럼 소음을 내며 거대한 동맥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앉아 있는 방은 난롯불로 아늑했다. 색 유리창을 통하는 빛이 더욱 현란하듯, 오랜 숙성을 거쳐 신맛이 없어진 포도주는 부드러운 붉은 빛을 띠고, 산허리의 포도밭을 비추는 가을 날 오후의 따듯한 햇빛은 런던의 안개를 막 걷어내려 하고 있었다. 변호사는 망연히 앉아 있었다. 그가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사무장인 게스트 씨가 유일한 사람으로, 그에게는 꼭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은 비밀까지 털어놓는 일도 있었다. 게스트는 업무 차 지킬 박사의 집을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푸울을 알고 있었고, 하이드 씨와 지킬 박사와의 친분관계에 관한 말을 안 들었을 리가 없고, 그렇다면 문제를 옳게 해결하기 위해 게스트가 그 편지를 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는 필체를 공부하여 글자체를 분간할 수 있으므로 그가 편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절차가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그밖에도 그는 법률 조언자로서, 문서의 이상한 글귀를 발견하면 반드시 조언을 했고, 그에 따라 어터슨 씨는 다음 단계를 구상했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댄버스 경이 당한 슬픈 사건이야.” 게스트가 대답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했습니다. 범인은 미친놈이 틀림없습니다.” 어터슨이 말했다.

    “당신 의견을 듣고 싶은데, 여기 그가 쓴 편지가 있소. 우리끼리 말인데, 내 이 편지를 어찌할지 모르겠고, 이 일은 잘해도 손해야. 여기 당신이 딱 알아볼 수 있는 그의 필적이 있네.”

게스트의 눈이 빛났고, 곧 자리에 앉아 그 편지를 열심히 살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미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한 필체입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여러 면에서 매우 이상한 자이지.” 그때 하인이 종이쪽지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게스트가 물었다.

    “지킬 박사가 보낸 편지인가요? 필체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다만, 변호사님께 온 사신인가요?”

    “만찬에 오라는 초대장이군. 마땅히 당신이 읽어야 되지 않겠소?“

    “네, 알겠습니다.” 사무장이 두 장의 종이를 나란히 펴놓고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그런 다음 두 장의 종이를 돌려주며 그가 말했다

    “매우 흥미로운 글자체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어터슨 씨는 자신과 씨름을 했다. 그가 갑자기 물었다.

    “게스트, 왜 두 장의 글자체를 비교했지?” 사무장이 대답했다.

    “음, 이상하게 닮은 점이 있어서입니다. 두 필체가 여러 면에서 같고, 한 장은 뉘어 쓴 글자체가 오직 다른 점입니다. 어터슨이 말했다.

    “거 참 이상하군.” 게스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묘한 일입니다. 어터슨이 말했다.

    “이 쪽지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칠 터이니 그리 알게.” 사무장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날 밤 어터슨 씨는 혼자 있게 되자, 곧 그 쪽지를 금고에 넣어 보관을 했다. 그는 생각했다.

    “도대체 헨리 지킬이 살인범을 보호하려고 남의 눈을 속이다니.”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래니언 박사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건

     시간은 흘러갔다. 댄버스 경의 죽음은 공인에 대한 범죄였으므로 수천 파운드의 현상금이 걸렸지만, 하이드 씨는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듯 경찰의 수사망 밖에 있었다. 그의 과거가 낱낱이 밝혀졌고, 비정하고 폭력적인 그의 잔혹함, 추잡한 삶, 그가 상대하는 이상한 사람들, 도처에서 들리는 그에 대한 혐오감 등 소문이 돌았지만, 그의 종적은 묘연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날 아침 소호의 집을 나간 이후,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터슨 씨는 극도의 경계심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하이드가 없어진 일이 댄버스 경의 죽음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악마의 영향력이 사라졌으므로, 이제 지킬 박사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 친구들과의 교제를 다시 시작하여, 그들의 정다운 손님으로서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는 종교인이면서 그에 못지않은 자선가이기도 했다. 활기찬 생활에다 야외생활을 몹시 좋아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내면에서 빛나는 듯 그의 얼굴은 밝고 명랑했다.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마음의 평정을 다시 찾은 것이다.

    1월8일, 어터슨 변호사는 지킬 박사의 조촐한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래니언 박사도 참석했다. 초청자의 얼굴은, 그들 세 사람이 떼려야 뗄 수 없이 가까웠던 옛날의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12일 그리고 14일에 변호사가 다시 찾았지만, 지킬을 만날 수가 없었다. 푸울의 말에 따르면 ‘박사님은 집에서 꼼짝도 않은 채 아무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15일 다시 찾았지만 또 거절을 당했고, 지난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지킬을 만나온 터였으므로, 이 같은 그의 칩거가 걱정되었다. 16일 밤에는 게스트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17일 밤에는 래니언 박사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집에서는 적어도 변호사의 방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래니언 박사의 변한 모습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듯한 기색이 얼굴에 완연했다. 홍안이었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이 바싹 마른데다가 대머리가 더 벗겨진 채 더 늙어 보였지만, 변호사의 주목을 끈 것은 이처럼 급격한 신체적인 변호가 아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떤 공포심을 증언하는 듯한 그의 태도였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옳지, 그는 의사이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견디기가 어려운 거야.’ ,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병색이 든 얼굴을 보니, 오히려 막다른 골목에 선 듯 결연한 모습이었다. 그가 말했다.

     “깜짝 놀란 일이 있었네. 그 충격에서 내 다시는 회복을 못할 거야. 내 목숨이 몇 주나 가려는지. 음, 그동안 유쾌하게 살았고, 나는 인생을 즐겼던 거야. 그렇고말고. 세상만사를 다 알기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네." 어터슨이 말했다.

    “지킬 역시 아파. 그를 만난 적이 있는가?”

그러나 래니언의 안색이 변하며 불안정하고 큰 목소리로, 떨리는 손을 들며 말했다.

    “지킬 박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듣거나 만나고 싶지 않네. 그와는 절교야.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그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말게.”

어터슨이 혀를 찬 다음, 한 참을 생각한 끝에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는가? 래니언, 우리 셋은 친구이고,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네.” 래니언이 대답했다.

    “없어, 그에게 물어보게.” 변호사가 말했다.

    “나를 만나려고 하지 않을 걸세.” 래니언이 말했다.

    “그렇겠지. 어터슨, 내가 죽은 후 자네는 이 사건의 잘잘못을 알게 될 거야. 지금은 말할 수가 없네. 그런데 여기 나와 함께 앉아 이 사건에 대해 자네가 아는 사항을 제발 말해주게. 이 저주 받은 사건에 대해 자네가 분명히 말할 수 없다면 그냥 가게. 나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터슨은 자리에 앉아, 자신을 만나주지 않은 것을 책망하고 왜 래니언과 불행한 절교를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묻는 편지를 지킬에게 썼고, 다음 날 매우 가슴 아픈 어투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때로는 알 수 없는 음울한 구절이 있는 긴 답장을 받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들의 옛 친구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그의 의견에 나는 동감하네. 앞으로 나는 절대로 혼자 살 것이며, 자네를 만나지 않는다 해도 놀라거나 우리의 우정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네. 내가 어두운 길을 가겠다는 걸 참고 용서해야 할 것이야.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위험과 벌로 내 자신을 벌주려고 하네. 내가 죄지은 자들의 수괴라면 역시 누구보다도 고통 받아야 할 자이네. 이 세상에 비인간적인 공포와 고통을 받아 주는 곳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어터슨, 내가 이 운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면 나의 이 칩거를 존중해 주게.

     어터슨은 깜짝 놀랐다. 하이드의 사악한 영향력이 사라져 지킬 박사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었고 우정을 되찾았었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그의 유쾌한 성격과 중후한 나이로 인해 앞으로의 일들이 모두 낙관적이었지만 이제 우정, 마음의 평화, 인생행로 등 모두가 다시 파괴된 것이다. 이처럼 엄청나고 돌발적인 변화는 바로 그가 미쳤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래니언의 말과 태도로 미루어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래니언 박사는 병석에 누웠고, 2주가 채 못 되어 죽었다. 장례식을 치룬 그날 밤, 어터슨은 슬픔에 겨워 사무실 문을 잠근 채 우울한 빛의 촛불 곁에 앉아, 죽은 친구가 친필로 주소를 쓰고 도장을 찍어 봉인해서 보낸 편지를 꺼내어 앞에 놓았다. 봉투에는 ‘어터슨 친전. 그가 나보다 먼저 사망 시 개봉하지 말고 파괴할 것’ 이라는 단호한 문구가 쓰여 있었고 따라서 변호사는 그 내용을 읽기가 두려웠다. ‘난 오늘 친구를 땅에 묻었다. 이 편지 때문에 또 다른 친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 쓸데없는 걱정임을 알고는 편지 봉투를 열었다. 그러자 봉인이 된 또 다른 봉투가 나왔고, 겉에는 ‘헨리 지킬이 사망하거나 실종될 때까지 개봉하지 말 것’ 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터슨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편지에는 그가 오래 전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던, 그 정신 나간 유언장에서처럼 바로 그 실종이라는 말이 다시 출현한 것이다. 그 말이 헨리 지킬과 관련을 맺는다는 심각한 생각이 들었다. 유언장에서의 실종이란 말은, 하이드에 관한 끔찍한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말이었다. 너무도 무시무시하고 명백한 목적을 위해 유언장에 그 말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래니언이 친필로 쓴 그 편지는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일까? 그는 개봉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할 만큼 이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커다란 호기심과 깊은 의문이 생겼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명예심, 그리고 고인이 된 친구에 대한 신의를 엄격히 지켜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 편지를 그의 개인 금고 가장 깊숙한 곳에 다시 감췄다.

    호기심을 억제하는 것과 호기심을 극복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날부터 어터슨은, 전과 다름없는 열정으로 남아 있는 친구와 교제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를 긍휼히 생각하기는 했지만 불안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곧 다시 그를 방문했고, 문전 거절을 당했지만 오히려 안도했다. 차라리 툭 터진 도시의 소음과 대기 속에 묻힌 그의 집 문전에서 푸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스스로 자신을 구속한 자의 집에서 불가사의한 은둔자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나은 편이었다. 사실 푸울은 유쾌한 소식을 전해주지는 않았다. 지킬이 가끔 잠을 자기도 하는 실험실 위 사무실에서 이전보다 더 몸을 숨긴 채, 기력이 쇠약해지고 점점 말이 없이 책도 읽지 않고, 마치 가슴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푸울의 말은 늘 같아, 어터슨 씨의 지킬 방문은 뜸해지기 시작했다.

창가에서 있었던 일

     어느 일요일, 어터슨 씨와 엔필드 씨는 함께 늘 하던 산책길에서, 우연히 전에 함께 걸었던 골목길을 걷다가, 문이 달린 바로 그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문을 응시했다. 엔필드가 말했다.

    “자, 이제 모든 일은 잘 끝났습니다. 하이드 씨가 다시는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어터슨이 말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내가 그를 보고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 엔필드가 대답했다.

    “그를 직접 보지 않고는 그런 느낌은 불가능하지요. 어쨌든 이 길이 지킬 박사 댁으로 가는 뒷길임을 알아냈으니 나는 바보가 아니지요? 변호사님이 못 알아내셨으니 결국은 제가 알아낸 것이지요.” 어터슨이 말했다.

    “나 때문에 자네가 알아낸 것이로구나, 그렇지?” 그렇다면 뜰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한 번 보자구. 사실 말이지, 가엾은 지킬이 걱정되고, 비록 밖에 있지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그에게 좋은 일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건물의 뜰은 춥고 조금 젖어 있었다. 하늘은 높았지만, 해가 지면서 깃든 황혼이 하늘 가득했다. 창문 세 개가 반쯤 닫힌 채였고, 불행한 죄수처럼 끝 모를 슬픈 모습으로 창가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지킬이 어터슨의 눈에 들어왔다. 어터슨이 외쳤다.

     “어이 지킬! 건강이 회복되었으리라 믿네만.” 지킬 박사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마음이 슬퍼, 어터슨, 매우 우울하다네. 얼마 못 살 거 같아. 하나님 은혜이지.” 변호사가 말했다.

    “너무 집에만 있어서 그래. 나와 엔필드처럼-- 이 사람은 내 사촌 엔필드이고, 저 분은 지킬 박사 자, 서로 인사들 하게-- 집 밖으로 나와서 한 바퀴 돌란 말이야. 자, 나오게. 모자를 쓰고 우리와 함께 빠른 걸음을 걸어보세." 지킬이 한숨을 쉬었다.

    “친절도 하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어. 암, 그렇고말고. 불가능한 일이야. 엄두도 낼 수가 없어. 어터슨, 어쨌든 자네를 보니 반갑네. 정말 기뻐. 자네와 엔필드 씨가 내 방으로 올라왔으면 좋겠네만,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장소가 적당치 않아.” 변호사가 정답게 대답했다.

    “음, 그렇다면 여기 이 밑에 앉아 자네와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좋겠군." 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내가 할 말을 하는군.” 그러나 이 말을 하고 나자마자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공포와 절망이 이어지는 걸 보니, 창 아래 두 사람은 피가 얼어붙는 드했다. 창문이 재빨리 닫혀 그 같은 모습은 순간적이었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그를 알아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말없이 발걸음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침묵 속에 골목길을 건너, 일요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잡한 곳에 이르러서야 어터슨 씨는 뒤로 돌아 그의 동행자를 보았다. 그가 말했다.

    “하나님, 저희들을 용서하세요, 용서를 비옵니다.”

    그러나 엔필드 씨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만을 끄덕였고, 말없이 걷기만을 했다.

마지막 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한 후 난롯가에 앉아 있던 어터슨 씨는 뜻밖에도 푸울 씨의 방문을 받았다. 그가 깜작 놀라 말했다.

    “아니, 푸울이 아닌가, 무슨 일로 오셨소?” 그리고는 곧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물었다.

    “왜 그러시오. 박사가 어디 아픈 거요?" 그가 말했다.

    “어터슨 선생님,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어쨌든 앉으시오. 여기 포도주가 있으니 마시고, 무얼 원하는지 차근차근 말하시오.” 푸울이 대답했다.

    “박사님이 어떠신지 선생님은 알고 계시지요. 완전히 은둔 상태입니다. 밀실에서 다시 칩거 상태에 들어가셨습니다. 정말 싫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느니 제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어터슨 선생님, 두렵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자, 자, 걱정 말고 솔직하게 말하시오. 뭐가 걱정이요?” 질문에는 아랑곳없이 푸울이 말했다.

    “거의 일주일 동안이나 제가 공포에 떨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은 표정에서도 역력했다. 상황의 악화로 인해서인지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두렵다는 말을 하고 나서는 변호사의 얼굴을 쳐바보지도 못했다.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은 채 잔을 무릅 위에 놓고 아래만 쳐다보았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변호사가 말했다.

    “자, 그럴만한 이유를 알겠소, 푸울, 뭔가 심각한 잘못이 있다는 말이겠지.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오.” 푸울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나쁜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놀란 듯, 그리고는 마침내 화가 난 듯 외쳤다.

    “나쁜 장난이라! 그 놈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그가 대답했다.

    “감히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와 함께 가서 직접 보시겠습니까?”

    어터슨 씨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었지만, 마시지 않은 포도주 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안도하는 이 하인의 얼굴을 보곤 의아해 했다. 3월에 걸맞는 황량하고 추운 달밤으로, 바람이 뉘여 놓은 듯 등을 대고 누운 창백한 달은 곱고 투명한 비단으로 만든, 날아가는 난파선 같았다. 바람이 불어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고, 찬 바람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거리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없었고, 어터슨 씨로서는 런던의 그 구역이 그처럼 적막한 적을 본 일이 없어, 바람이 사람들을 휩쓸어 간 게 아닌가 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꽉 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재난과 맞닥뜨릴 것이라는 예감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생애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접촉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았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광장은 바람이 불어 먼지가 가득했고, 정원의 앙상한 나뭇가지는 울타리를 때리고 있었다. 오는 길 내내 한두 발짝 앞서 걷던 푸울은 보도의 가운데서 멈추더니,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모자를 벗은 다음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부지런히 걸어와 흐르는 땀이 아닌, 목을 조이는 고통의 식은땀이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변호사님, 다 왔습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빕니다.” 변호사가 대답했다.

    “아멘, 푸울.”

    푸울이 매우 경계하는 태도로 노크를 했다. 잠금 쇠줄은 그대로 걸린 채 문이 열리고 안으로부터 누가 물었다.

    “푸울인가요?” 푸울이 대답했다.

    “그래요. 문을 여시오.”

    들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불이 환했다. 난로불이 활할 타고 있었고, 난롯가에는 그 집 남,여 모든 하인들이 양떼처럼 모여 있었다. 어터슨 씨의 눈에 훌쩍거리는 하녀의 모습이 들어왔고, 요리사가 ‘어머나, 어터슨 씨가 오셨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마치 그를 포옹하려는 듯 두 손을 들고 달려왔다. 변호사가 짜증을 내듯 말했다.

    “무슨 일이야, 왜 모두들 여기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보기도 흉하고, 당신들 주인이 언짢아 할 텐데.” 푸울이 말했다.

    “모두들 두려움으로 떨고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아무 말도 없었다. 오직 훌쩍거리는 하녀만이 더 크게 울었다.

    “울음을 그쳐.“ 신경이 곤두서는 듯 푸울이 화난 표정으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하녀가 점점 더 큰 소리로 울자 모두들 두려움에 찬 얼굴로 안쪽 문을 보았다. 식당일을 돕는 소년에게 푸울이 말했다.

    “자, 촛불을 가져와. 당장 저 문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리고는 어터슨 씨에게 따르라는 말과 함께 후원으로 안내했다. 그가 말했다.

    “변호사님,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하세요. 귀를 기울이시고 소리를 내지 마세요. 혹시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가지 마세요.” 이 뜻밖의 말에 어터슨 씨는 신경이 곤두서 거의 쓰러질 뻔했으나, 다시 정신을 차린 그는 하인을 따라 실험실 건물로 들어간 다음, 바구니와 병 같은 잡동사니들이 흩어져 있는 강의실을 지나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밑까지 갔다. 푸울이 벽에 기댄 채 귀를 기울이라는 몸짓을 했고, 촛불을 바닥에 놓은 다음 단호한 결심을 한 듯 계단을 올라, 붉은 천이 걸린 박사의 밀실 문을 조금 머뭇거리는 손으로 노크했다. 그가 지킬 박사를 불렀다.

    ”어터슨 씨가 뵙자고 하는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더 심한 몸짓을 해가며 귀를 기울이라는 신호를 했다.

    안으로부터 대답이 흘러나왔다. 불평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전해.“ 푸울이 다소 안심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촛불을 다시 잡은 어터슨 씨를 안내하여, 다시 후원을 지나 불이 꺼진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바닥에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어터슨 씨의 눈을 응시하며 푸울이 말했다.

    “변호사님, 그 목소리가 우리 주인님 목소리 맞습니까?” 변호사가 매우 창백한 모습으로 푸울을 보며 대답했다.

    “많이 변한 목소리야.” 푸울이 대답했다.

    “변했다고요? 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0년이나 제가 이 댁에서 일을 했는데, 주인님의 목소리를 혼동할 리가 있습니까? 아니지요, 변호사님, 주인님과 함께 목소리도 사라진 것입니다. 8일전 그 분이 사라지시던 날, 우리들은 주님의 이름을 외치시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분 대신에 저 방에 있는 이는 누구이며, 왜 그곳에 앉아 하나님께 절절히 기도를 하는 것입니까, 변호사님?” 어터슨 씨가 이빨로 손가락을 뜯으며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푸울 씨, 당치도 않은 이야기란 말이지요. 당신의 생각대로 만일 지킬 박사가 살해당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 살인자가 저 방에 머무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말이 안돼요.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푸울이 말했다.

     “저, 변호사님, 변호사님은 설득 시켜 드리기가 힘든 분이군요. 그렇지만 설득 시켜 드리죠. 그러니까 오늘까지 일주일 내내, 주인님 혹은 주인님이 아니라면 그 괴물이, 어쨌든 저 방에 있는 그가 무엇이던 간에, 무슨 약인지 그의 마음에 맞는 약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울고불고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는, 이를테면 주인님은 수시로 약 이름을 쓴 종이를 계단 아래로 던지는 식이었지요. 지금까지 일주일 내내 우리는 이 종이를 줍는 일밖에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문이 닫혀 있었고, 문 앞에 식사를 가져다 놓으면,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안으로 들이더군요. 그런데 변호사님, 아, 하루에 두세 번 지시를 내리고 불평이 따르고, 저는 런던 시내에 모든 약방들로 부리나케 심부름을 다녔습니다. 약을 가져오면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되돌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다른 약방을 찾아보라는 명령을 하셨지요. 무슨 약인지 절실히 필요했던 약입니다.” 어터슨 씨가 물었다.

     “그 명령지를 가지고 있는가요?”

     푸울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구겨진 종이를 내밀었고, 변호사가 허리를 굽혀 촛불 가까이 대고 면밀하게 살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삼가 모우 씨에게 문안드립니다.

지난 번 보내주신 약은 성분이 부족하여 치료 목적에 무용지물입니다. 18_ 년, J 박사는 모우 씨로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약을 구입한 바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시어 같은 품질의 제품으로 남은 재고가 있다면 즉시 그에게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가격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 약은 J. 박사에게 대단히 중요한 약임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의 편지 내용은 차분하였지만, 이어 마음이 흔들린 듯 흐트러진 필체로 마구 써 놓은 추가 사연이 있었다.

     '제발, 먼저 번 약을 보내주십시오.'

     어터슨 씨가 말했다.

    “이상한 편지군.” 그리고는 날카롭게 물었다.

    “봉투도 없는 그 편지를 어떻게 손에 넣었소?” 푸울이 대꾸했다.

    “모우 씨 상점 일꾼이 화를 내며 이렇게 휴지처럼 구겨진 걸 내게 집어던졌습니다.” 변호사가 다시 말했다.

    “분명 박사의 필체인데, 그렇지요?” 하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것 같은데요.” 그리고는 곧 이어 다시 말했다.

    ”필체가 뭐 중요한가요? 그가 쓰는 걸 직접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터슨이 다시 물었다.

    “보았다니, 정말?” 푸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실을 말씀 드리죠. 정원에서 나와 강의실로 급히 가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밀실 문은 열려 있었고, 강의실 구석에 앉아 약 바구니를 뒤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사무실을 몰래 빠져 나온 것 같았습니다. 내가 들어서자 나를 본 그가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쏜살 같이 뛰어 올라가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를 본 것은 순간이었지만, 제 머리털이 쭈뼛했습니다. 변호사님, 그가 만일 저의 주인이라면 왜 얼굴에 가면을 썼습니까? 제가 모시는 주인리라면 왜 생쥐처럼 소리를 지르고 내게서 도망을 쳤을까요? 오랜 동안 주인님을 모셨고 그리고...”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터슨 씨가 말했다.

    “모든 게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야. 그런데 이제 대낮처럼 명백해졌어. 푸울, 당신 주인은 분명 고통스럽고 몸이 변하는 몹쓸 병에 걸렸어요. 내가 아는 한 그래서 목소리가 바뀌고, 그래서 얼굴이 변하여 친구를 피하고, 그래서 그 가엾은 사람이 그 병에서 벗어나려는 마지막 희망으로 그 약을 찾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그를 회복 시켜 주소서! 이 게 바로 나의 판단이오. 참으로 슬프고, 푸울, 아, 정말 생각하기조차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판단을 해야 분명하고 무리 없이 앞뒤가 들어맞는 말이고, 우리들이 엄청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거지요.” 얼굴이 하얘지며 하인이 말했다.

     “변호사님, 그 흉물은 제 주인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인님은--그가 주위를 살피며 속삭이듯 말했다-- 키가 크고 건장하지요. 그런데 이놈은 난쟁이 뺨칩니다. 어터슨이 머뭇거리자, 푸울이 외쳤다.

     “변호사님, 아, 제가 20년을 모셨는데 주인님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일생 동안 매일 아침 지켜 본, 그의 키가 닫는 사무실 문 높이를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가면을 쓴 모습도 절대 지킬 박사가 아닙니다. 주님만이 아실 테지만, 절대 지킬 박사일 수가 없고요, 살인 사건이 틀림없습니다.” 변호사가 대답했다.

     “푸울, 그렇다며 사건을 밝히는 건 나의 일입니다. 당신이 주인에 대해 의심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이 편지로 보아 그가 아직 살아 있지 않을까 혼란이 생기고, 어쨌든 그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아야하겠소.” 하인이 외쳤다.

     “좋습니다, 변호사님.” 어터슨이 재차 말했다.

    “문제는 누가 문을 부순다?” 푸울이 대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 두 사람이 해야죠.” 변호사가 말했다.

    “좋아요, 결과가 어찌 되든 당신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소.” 푸울이 계속했다.

    “강의실에 도끼가 있습니다. 주방의 부젓가락을 들으셔도 됩니다.”

변호사가 묵직하나 조잡한 부젓가락을 휘둘러보았다. 2층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푸울, 우리가 위험을 무릅쓴다는 걸 알지요?” 하인이 대답했다.

    “그럼요.” 변호사가 말했다.

    “솔직한 건 좋은 일이오. 우리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그 이상 생각하는 게 있어요. 모든 걸 남김없이 털어 놓읍시다. 당신이 본 그 가면을 쓴 사람, 누구였소?” 푸울이 대답했다.

    “동작이 매우 빠르고 등을 구부려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하이드가 아니었는지 물으시는 거지요? 아, 물론 그 자입니다! 몸집도 거의 같았고, 행동도 번개처럼 민첩했고, 그 말고 누가 실험실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살인 사건이 있었던 시간에 그가 실험실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아세요?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터슨 선생님, 하이드를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변호사가 대답했다.

    “한 번 말을 나눈 적이 있소.”

    “그렇다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무엇인가--변신술 같은 그 무엇--이 이상 무어라 정확히 말할 수 없는, 뼈 속까지 떨리고 싫은, 괴상한 그 무엇이 그에게 있다는 걸 분명 아시리라 믿습니다.” 어터슨 씨가 대답했다.

    “당신 말대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푸울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 가면을 쓴 괴물이 약품들 사이에서 뛰어나와 박사님의 밀실로 재빨리 사라지는 걸 보고는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아, 변호사님,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는 없겠지요. 의심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걸 책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느낌이라는 게 있고, 맹세컨대 그는 틀림없이 하이드였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아, 그랬었군. 바로 내가 두려워하는 점이오. 악마가--틀림없이 악마가 와 있어요--지킬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습니다. 당신 말을 진정으로 믿어요. 가엾은 해리가 살해되었어요. 그 살인자가 아직 희생자의 방에(무슨 목적인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숨어 있는 겁니다. 자, 우리의 이름으로 복수를 합시다. 브래드쇼를 불러요.”

     브래드쇼가 놀라서 창백하게 질린 채 곧 불려왔다. 변호사가 그에게 말했다.

    “놀라지 말아요, 브래드쇼. 이 소름끼치는 일로 모두들 놀랐겠지만 이제 끝장을 냅시다. 푸울과 나는 그의 사물실로 밀고 들어가겠소.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나는 비난을 받아도 떳떳할 거요. 일을 그르치거나 악당이 뒷문으로 도망을 못 치도록 당신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실험실 뒷문으로 가 몽둥이를 들고 지키시오. 10분간 여유를 줄 터이니 그 자리로 가시오.”

    브래드쇼가 자리를 뜨자 변호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자아, 푸울, 시작합시다.” 변호사가 부젓가락을 손에 든 채 길을 따라 후원으로 나갔다. 구름이 달을 가려 캄캄했다. 건물 깊숙이 한 점 바람이 불어와 촛불을 흔들어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여기저기 그림자를 드리웠고, 강의실에 도착해서야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런던의 소음이 사방에서 침울하게 들려왔지만, 바로 가까이에서는 오락가락 마루를 밟는 발자국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푸울이 속삭였다.

    “저렇게 하루 종일, 아니 밤새도록 우왕좌왕할 겁니다. 새 약이 올 때만 잠시 걸음을 멈추지요. 아, 마음이 불안하면 저렇게 쉬지를 못하고 서성이는 것입니다! 발자국마다 흉악한 피가 고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변호사님, 가까이 주의 깊게 귀를--마음의 귀를--기울여 보세요. 저게 박사님 발자국 소리입니까?”

     발소리가 가볍고 이상한데다 멈칫거리고 느리기도 하여, 헨리 지킬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어터슨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물었다.

    “저 방에서 다른 일은 없었소?" 푸울이 대답했다.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울음소리를 들었습죠.” 변호사가 오싹한 공포를 느끼며 물었다.

    “울음소리를? 어떤 울음소리?” 푸울이 대답했다.

    “여인 아니면 길 잃은 망령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가슴에 사무치는 울음이라 저도 울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10분이 지났다. 푸울이 짚더미 속에 감췄던 도끼를 꺼냈고, 공격의 길을 밝히기 위해 가까운 탁자 위에 촛불을 놓았고, 밤의 정적 속에 힘없는 발자국이 아직도 왔다 갔다 소리를 내는 곳으로 숨을 죽이며 다가갔다. 어터슨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킬, 자네를 좀 보아야겠네..” 잠시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터슨이 다시 외쳤다.

     “별다른 일이 아니고, 궁금해서 그러는데 억지로라도 자네를 좀 보아야겠어. 좋은 방법이 안 통하면 나쁜 방법이라도, 승낙을 안 하면 강제로라도 만나야겠네.” 목소리가 들렸다.

    “어터슨,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게!” 어터슨이 소리쳤다.

    “저건 지킬의 목소리가 아냐. 하이드의 목소리야! 문을 부셔.” 푸울이 도끼를 번쩍 들어 문을 부수자 건물이 흔들리고, 붉은 천이 걸린 문의 자물쇠와 돌쩌귀가 비틀렸다. 겁먹은 짐승이 내는 음산한 외마디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도끼질이 반복되면서 문의 판자가 부서지고 문틀이 튕겨져 나왔다. 도끼질을 네 번씩이나 했지만, 나무가 단단하고 장인의 솜씨로 만든 튼튼한 문이라, 다섯 번째 도끼질 끝에야 자물쇠가 부서지면서 사무실 안 쪽 앙탄자위로 문이 쓰러졌다. 자신들이 행한 폭력과 뒤 이은 정적에 놀란 공격자들은 잠시 뒤로 물러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고요한 등불, 활활 타며 빛을 내는 난로, 가냘픈 소리를 내며 끓는 주전자, 열려 있는 한 두 개의 서랍, 책상 위 정돈된 서류들, 차가 담긴 찻잔들, 조용한 밀실 등 약품으로 꽉찬 진열장을 제외하고는 그 날 밤 런던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그들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바로 그 밀실 한가운데에 애처롭게 몸이 변한 사람이 아직도 몸을 뒤틀고 있었다. 발끝으로 다가 가 몸을 뒤쳐보니, 에드워드 하이드의 얼굴이었다. 그는 아주 큰, 박사의 체구에나 맞는 커다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의 근육이 움직여 아직 살아 있는 듯했지만 생명이 다한 듯했고, 그가 들고 있는 찌그러진 약병과 새어나온 강한 약 냄새로 미루어, 어터슨 씨는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터슨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를 구하던 벌을 주던, 너무 늦었소. 이제 하이드는 끝장이 났고, 남은 건 당신 주인의 시체를 찾는 일 뿐이오.”

     건물 1층 대부분은 강의실로, 천정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지킬의 방은 이층 구석에 있어 밖의 뜰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강의실에서 복도를 따라가면 골목길로 나가는 문이 있었고, 2층 지킬의 밀실에서 별도의 사다리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거리로 나갈 수가 있었다. 또 몇 개의 어두운 사무실들과 넓은 지하실이 있었다. 이 모든 곳들을 샅샅이 뒤졌다. 얼핏 보니 사무실들은 모두 비어 있었는데, 문에 쌓인 먼지로 보아 오래 전에 폐쇄된 듯했다. 지하실에는 지킬의 전임 의사 때부터 사용했던 오만가지 잡동사니로 가득했지만, 문을 열고 보니 수년 간 쌓인 거미줄이 가로막아 더 이상의 조사가 필요 없었다. 헨리 지킬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종적이 묘연했다.

     푸울이 복도 바닥을 쿵쿵 구른 다음 되돌아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이 밑에 묻혀 있는 게 틀림 없습니다.” 어터슨이 말했다.

    “아니면 도망을 쳤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는 골목길로 나가는 문을 살폈다. 문은 잠겨 있었고, 복도 바닥에는 녹슨 열쇠가 눈에 띄었다. 변호사가 말했다.

    “사용한 흔적이 없는 열쇠군.” 푸울이 소리쳤다.

    “사용을 했습니다. 발로 짓이긴 듯 부러진 열쇠가 보이지 않으세요?” 어터슨이 계속했다.

    “그렇군, 부러진데다 녹도 슬고.” 두 사람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 마주보았다. 변호사가 말했다.

    “푸울, 알 수 없는 일이야. 다시 지킬의 밀실로 가 봅시다.”

     그들은 말없이 계단을 올라가, 흘끔흘끔 시체를 보며 겁에 질린 채 샅샅이 방을 조사했다. 책상 위에 약을 사용한 흔적이 있었고, 그 불행한 사람이 실험을 하다 실패한 듯, 무게가 다른 백색의 약품 덩이를 담아 놓은 여러 개의 유리 접시들이 있었다. 푸울이 말했다.

    “바로 저 약이 제가 늘 가져다 드린 약입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난로 위의 주전자가 끓어 넘치며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난로에 다가가서 보니, 안락의자 옆에 찻잔이 놓여 있었고, 컵에는 바로 그 하얀 물질이 들어 있었다. 서가에는 몇 권의 책이 있었고, 찻잔 옆에도 한권이 펼쳐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종교서적이었다. 그가 몇 번인가 신성모독을 적극적으로 편드는 글을 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에, 어터슨은 깜짝 놀랐다. 계속 조사해보니 커다란 체경이 있었고, 체경 깊숙이 비치는 무서운 광경을 겁에 질려 들여다보았다. 무서운 광경이란 다름 아닌 천정에서 흔들거리는 붉은 불빛의 그림자가 장롱의 유리문들에 반사되어 체경에 반사된 것으로, 등을 구부린 채 들여다보니 자신들의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푸울이 속삭였다.

    “좀 이상한 거울입니다, 변호사님.” 변호사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그렇소. 지킬은 왜 이 물건이 필요했을까?” 그 말을 하는 순간 깜짝 놀라 숨을 죽였지만, 곧 다시 정신을 차린 다음 말했다.

    “무엇에 쓰고자 거울이 필요했을까?” 푸울이 말했다.

    “그렀습니다. 왜 필요했을까요?”

     그런 다음 책상 위를 보았다. 가지런히 정돈된 서류들 위에 커다란 봉투가 있었고, 봉투 겉에는 박사가 친필로 쓴 어터슨 씨의 이름이 있었다. 봉투를 열자 문서들이 쏟아져 바닥에 떨여졌다. 처음의 문서는 6개월 전 그가 지킬에게 돌려주었던 것으로, 사망 시의 상속과 실종 시의 증여에 관한 이상한 조건을 담은 유언장이었지만, 놀랍게도 에드워드 하이드가 아닌 변호사 가브리엘 존 어터슨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는 푸울의 얼굴과 유언장을 번갈아 본 다음 양탄자 위에 길게 누워 있는 저주 받은 시체를 보았다. 그가 말했다.

     “머리가 빙빙 도는군. 어쨌든 최근 이 문서는 지킬의 손에 있었어요. 나를 택할 이유가 없지. 극도로 흥분해 정신이 나갔었음에 틀림없어. 이 문서를 파괴했어야 하는 거요.”

    다음 문서를 보았다. 박사가 친필로 쓴 간단한 내용의 편지로, 맨 앞에 날짜가 있었다. 변호사가 외쳤다.

     “아, 푸울! 그가 살아 있었어요. 여기 오늘 날짜가. 그가 죽었다면 그 짧은 시간에 시체가 사라질 리가 없지. 아직 살아 있는 게 틀림없어. 도망친 거야. 그렇다면 왜?, 어떻게 도망을? 그가 도망을 쳤다면, 여기 이 누워있는 사람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어. 당신의 주인이 무서운 재난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푸울이 물었다.

    “왜 편지를 읽지 않으세요?” 변호사가 무겁게 대답했다.

    “두려워서요. 제발 내 생각이 틀리기를.” 이 말과 함께 그는 편지를 눈에 대고 읽었다.


 '친애하는 어터슨,

     자네가 이 편지를 받을 즈음이면, 나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혀 종적을 감추고 있을 것이네. 그러나 나의 본능과 형언할 수 없는 여러 상황으로 보건대, 확실히 피할 수 없는 종말이 다가왔네. 이 편지를 읽은 후, 래니언이 내게 경고한 내용으로 자네에게 전하고자 한 편지를 먼저 읽은 다음, 더 알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보잘 것 없고 불행한 자네에 친구인 나의 고백을 읽어보게.'

-헨리 지킬-

 

    어터슨이 물었다.

    “세 번째 편지는?”

    “여기 있습니다." 푸울이 밀랍으로 봉한 두툼한 문서를 어터슨에게 건넸다.

변호사가 그 문서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말했다.

    “이 문서에 관해서는 내가 입을 다물겠소. 당신 주인이 도주를 했거나 사망했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의 명예를 지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열 시군. 집으로 가 이 문서들을 조용한 가운데 읽어 보겠지만, 경찰을 부를 일이 있으면, 자정 전에 다시 오겠소.”

     그들은 밖으로 나와 강의실 문을 잠근 다음, 현관에 모여 있는 하인들과 헤어진 어터슨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이 불가사의한 일을 설명할 두 개의 편지를 읽었다.

 래니언 박사의 진술

     11월 9일, 그러니까 오늘부터 나흘 전 오후 나는, 내 친구이며 학교 동창인 지킬로부터 등기우편을 받았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없었으므로, 이 편지를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더구나 하루 전 그와 만나 저녁 식사를 했으므로, 그와의 교제에 있어 이 같은 등기 형태의 편지를 받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과 같은 편지 내용에 더욱더 의심이 갔다.

 '친애하는 래니언,

     자네는 나의 죽마고우 가운데 한 사람이지. 비록 가끔 학문적인 이견이 있었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우리의 우정이 금이 간 적은 없네. 만일 자네가 나에게 ‘지킬, 나의 생명, 나의 명예, 나의 이성은 전적으로 자네에게 달렸네’ ,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내 왼손이라도 잘라 자네를 도우리라는 생각을 하루도 저버린 적이 없었네. 래니언, 나의 생명, 나의 명예, 나의 이성은 전적으로 자네의 자비에 달렸네. 만일 오늘밤 자네가 나를 돕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곤란한 부탁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할 테지만, 그건 자네가 판단한 일이지. 오늘밤 다른 모든 약속을--국왕폐하의 내실에 대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다른 날로 미루기를 바라네. 내가 진찰이 필요하니 이 편지와 함께, 탈 것이 없으면 마차를 불러 타고, 곧바로 우리 집으로 오게. 내 집사인 푸울에게 명령을 하여, 열쇠공과 함께 자네를 영접하라고 했네. 열쇠공이 문을 열면 자네 혼자 들어가 왼쪽 진열장(E자가 표시된)유리문을 열고, 문이 잠겼으며 자물쇠를 부수고, 위로부터 네 번째 또는 밑으로부터 세 번째(그러니까 같은 서랍)서랍을, 내용물이 들어 있는 채로 빼어내게. 자네가 내 말을 잘 못 알아듣지 않을까 매우 걱정이 되지만, 설사 내가 잘 못 말했더라도, 가루약 조금, 약병 한 개, 그리고 공책 한 권을 보면 어떤 서랍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물건들에 손대지 말고 서랍을 통째로 가지고 카벤디쉬 광장으로 와주게. 이것이 첫째 부탁이고, 두 번째 부탁을 하겠네. 만일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출발한다면, 자정 훨씬 전에 돌아가 주기를 바라네. 이처럼 시간 여유를 말하는 것은 어떤 재난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자네의 하인들이 잠자는 동안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 한 시간가량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야. 자정이 되면 자네 진찰실에 자네 혼자 있으면 내가 보낸 사람이 도착할 터이니, 자네가 직접 그를 안내하여 집안으로 들인 후 갖고 있던 서랍을 건네주게. 그러면 자네의 역할은 끝난 것이고, 내가 대단히 고마워할 것이네. 만일 이 부탁에 대한 이유를 설명을 하라고 하면, 모든 절차가 대단히 중요하여 하나라도 잘 못되면, 모든 게 이상하겠지만, 나의 죽음과 정신의 파멸로 자네의 마음이 무거울 것이야. 나의 이 부탁을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 확신하지만,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손이 떨리네. 이 시간에 이상한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생각해보게. 그러나 자네가 제때에 나를 돕는다면, 나의 고통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네. 친애하는 래니언, 나를 돕고 구해주게.'

     추신: 이 편지를 봉하고 나니 새로운 두려움이 생기네. 우체국의 잘못으로 이 편지가 내일 아침을 지나 배달이 될 경우는, 래니언, 내일 낮 자네가 편한 시간에 내가 말한 대로 해주고, 너무 늦은 시간일 테지만, 다시 한 번 자정에 내가 보낸 사람을 만나보게. 내일 밤 아무런 일이 없다면, 자네는 헨리 지킬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네.

     편지를 읽어보니 내 친구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지만 사실로 확인이 되지 않는 이상, 그의 말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그의 헛소리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는 그 중요성을 판단할 입장이 아니었고, 그처럼 절절한 호소를 아무런 책임 없이 소홀이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이륜마차를 타고 곧장 지킬의 집으로 갔다. 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등기 우편으로 명령서를 받았고, 곧 열쇠공과 목수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이 왔다.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지킬의 밀실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독자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있는)곳인, 이미 고인이 된 덴만 박사의 수술실로 갔다. 문이 매우 튼튼했고 자물쇠는 꿈쩍도 안했다. 문을 부수려면 많은 손상이 불가피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목수가 말했다. 열쇠공은 낙담을 했지만 어쨌든 그는 솜씨가 있는 사람이었다. 두 시간 동안 노력 끝에 문이 열렸다. E자가 써진 진열장 문이 열렸고, 나는 지킬이 말한 서랍을 빼 보자기로 싼 다음 끈으로 묶어, 그것을 가지고 카벤디쉬 광장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포장을 풀고 내용물을 조사했다. 매우 고운 가루였지만 약을 만들 정도는 아니어서, 지킬이 손수 조제한 것임이 분명했다. 또 다른 포장을 뜯고 보니, 하얀 소금 같은 백색 결정이 있었다. 그 다음 약병에 눈이 갔는데, 붉은 색의 액체가 반쯤 담겨 있었고 자극적인 냄새가 나, 인이 아니면 무슨 휘발성 액체가 아닐까 했다. 달리 무슨 물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공책은 평범한 것으로 일련의 날짜가 작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었다. 몇 년에 걸친 기록이었는데 일 년 전에 돌연 중단이 되어 있었다. 수백 개의 날짜 가운데 여기저기 표시를 해놓았는데, 여섯 곳에는 날짜 옆에 “두 번” 이라고 간단한 표시를 해놓았고, 목록의 앞머리 몇 곳에는 “완전 실패!!!” ,라고 써 놓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약간의 백색 결정체가 들어있는 약병이 있었고, 일련의 실험이 실용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지킬의 많은 실험이 그렇듯)기록이 있었다. 내가 지금 우리 집에 가지고 있는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내 친구의 명예, 정신 건강이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의 심부름꾼이 약방에 갈 수가 있다면 지킬은 왜 그곳에 직접 못가는 것일까? 불가피한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내가 왜 비밀리에 그 심부름꾼을 만나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고, 하인들을 잠자리에 들게 하고 나서,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권총을 장전했다. 런던에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내가 직접 나가서 보니, 키가 작은 사람이 현관의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내가 물었다.

     “지킬이 보내서 온 사람이오?”

     그가 위축된 자세로 ‘그렇다’ 고 대답했고, 들어오라고 하자 시선을 돌려 어두운 광장을 뒤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경찰이 황소 눈처럼 생긴 반원형의 유리 렌즈로 된 조명등을 든 채 걸어가고 있었고, 경찰을 본 그가 당황하며 급히 집안으로 들어왔다.

     고백컨대 그의 태도를 보고 나는 놀라 기분이 나빴고, 그를 따라 밝은 불이 켜진 진찰실로 들어서면서 여차하면 쏘려고 권총에 손을 댔다. 진찰실에 들어서야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그를 그처럼 자세히 본 건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말한 대로, 그는 작은 키에 얼굴이 몹시 씰룩거리고, 눈에 띄게 연약한 몸, 이에 못지않게 나를 보고 당황하는 그의 괴이한 모습과 끔찍한 얼굴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등골이 서늘했다가 이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당시 나는 이를 그에 대한 특이한 혐오감 탓으로 돌리며 다만 그 혐오감이 이상할 정도로 심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후 그 원인은 인간성 깊이 뿌리를 둔 것으로, 혐오감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고귀한 동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그 사람(그가 진찰실로 들어온 순간부터 구역질나는 호기심 덩어리, 라고 밖에 할 수 없는)은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옷은 좋은 옷감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는 있었지만 모든 치수가 너무 커, 바지는 땅바닥까지 흘러내려 주름이 잡히고, 외투의 허리가 구부정한 등에 걸쳐 있고, 상의 칼라는 어깨 전체를 덥고 있었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새임에도 이상하게 우습지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쳐다보는 바로 그 이상한 인물의--놀랍고도 거부감을 주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내면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이면서 잘못된 그 무엇으로 인해, 그 낯선 옷차림새는 그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그가 어떤 사람일까에 관심이 일어 그의 출신, 생활, 경제 형편, 사회적 위치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이를 알아내려면 많은 일들이 필요했지만, 곧 해결이 되었다. 그가 풀이 죽어 몸을 떨며 난롯가에 섰다. 그가 소리쳤다.

     “그것을 가져왔나요? 그걸 가져왔어요?” 그가 몸 둘 바를 모르고 조바심을 내며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내 혈관에 싸늘한 고통이 흐르는 것 같아, 그를 밀쳤다. 내가 말했다.

     “신사 양반, 나는 당신을 아직 모릅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그리고는 약 견본을 보여주고, 늘 환자를 대하는 정중한 태도로, 늦은 시간임을 생각하며 환자로 인해 겪게 될 걱정과 두려움에 싸여 의자에 앉았다. 그가 매우 정중하게 대답했다.

     “용서하십시오, 래니언 박사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조바심을 낸 것은 예의를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박사님의 친구인 지킬 박사의 요청으로 어떤 중요한 일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가 말을 멈추고 목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침착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발작이 일어나는 듯 몸을 꼬기 시작했다. “제가 알기로는...”

    그가 제대로 말을 못하니 가엾은 생각이 들었고 또 나의 호기심도 점점 강해졌다. 책상 위 아직 보자기에 싸인 약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저기 있습니다.”

    그가 약을 향해 뛰어가, 잠시 멈추더니 가슴에 손을 댔다. 그의 턱이 경련을 일으키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고, 얼굴이 무섭게 변해 그가 죽거나 정신을 잃지 않을까 두려웠다. 내가 말했다.

    “정신을 차리세요.”

     나를 보며 그가 무시무시한 웃음을 짓더니, 거침없이 보자기를 풀었다. 내용물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지어, 내 몸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다음 순간,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계량컵이 있습니까?”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컵을 주었다.

     그가 웃음으로 감사의 표시를 한 다음, 소량의 붉은 염료에 가루를 섞었다. 그 혼합물은 처음 붉은색이었으나 가루가 녹으면서 색깔이 밝은 색으로 변하더니, 거품이 이는 소리와 함께 김이 솟기 시작했다. 끓기가 멈추자 새로 생긴 화합물이 적갈색으로 변하더니 다시 서서히 연초록 색깔로 바뀌었다. 예리한 눈길로 변화를 지켜보던 그는, 웃음을 지으며 그 컵을 책상 위에 놓은 다음, 얼굴을 돌려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말했다.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 되느냐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컵을 이 집 밖으로 가져가도 더 이상 군소리를 안 할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호기심에 굴복하여 내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 아니오? 당신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니 대답하기 전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한 봉사의 마음이 하나의 정신적인 가치로 인정되어 대가를 받는다면 모르되, 당신의 결정에 따라 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부자도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 되거나, 아니면 바로 여기 이 방에서 당장 당신의 눈앞에, 새로운 지식과 권력, 명성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며, 사탄도 믿지 않을 어느 천재를 보고 눈이 아찔해질 것입니다(하이드는 약효를 암시하고 있다. 옮긴이).”

     내가 내심과는 달리 무관심한 태도로 대답했다.

    “신사 양반,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이 봉사하는 일에 내가 너무 깊이 개입을 하여, 이제 끝을 보기 전에는 중단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래니언 박사, 약속을 지키리라 믿습니다. 의사로서 이제 말하는 사항에 대해 비밀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그 많은 세월을 편협하고 유물론적인 관점을 고집하여, 초자연적인 의약품의 효능을 부정했고, 선배 의사들을 무시했지요--자, 보세요!”

     그가 컵을 입술에 대고 한 모금 마셨다. 뒤이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고 휘청거리며 책상을 잡더니, 눈망울이 튀어나오고 입을 벌린 채 헐떡거렸다. 무슨 변화로 생각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이 몸이 부푸는 듯했고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기형적인 얼굴 모습이 녹아내리는 듯 변하면서--다음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벽에 기대어 그 천재로부터 나를 방어하려고 팔을 뻗었고, 나의 마음은 공포로 가득했다. 내가 비명을 질렀다.

     “하나님 맙소사!” 나는 계속 비명을 질렀다. 바로 눈앞에--마친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듯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거의 실신한 듯, 두 손을 더듬고 있는 --헨리 지킬이 서 있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본 것을 보았고, 들은 것을 들었고, 진저리를 쳤으며, 그 광경이 내 눈에서 사라진 후 믿을 수 있는 일이었는지 내 자신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생활이 뿌리 채 흔들렸으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죽음의 공포가 밤낮 없이 나와 함께 했고, 나의 삶이 다해 틀림없이 죽을 것이지만, 의문을 품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보여준 도덕적 비열함을 생각하면, 공포가 엄습해왔다. 어터슨, 자네에게 한 가지 전할 말은(자네가 믿으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면), 이 말로써 충분할 것이다. 지킬의 고백에 따르면, 그날 밤 나의 집에 은밀히 찾아온 자는 바로 하이드로, 전국에 수배된 캐루의 살인자였다. 

헨리 지킬이 진술한 사건의 전모

     18-년, 나는 상당한 재산을 상속 받은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천성이 부지런한데다 현명하고, 선량한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기를 좋아했으며, 따라서 명예롭고 남다른 미래가 기대되는 터였다. 나의 가장 나쁜 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명랑하고 조급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지만, 이 같은 성격은 거만하게 굴거나 사람들 앞에서 늘 보다 엄격한 표정을 지어야한다는 나의 바람과는 양립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쾌락을 숨기고, 인생을 되돌아보니, 이미 표리부동한 이중적인 삶을 살아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저지른 죄와 같은 그러한 일탈을 자랑삼아 내세울 것이나, 나의 높은 이상에 비추어 볼 때 그 같은 일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일들이다. 나라는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것은 정확히 말해 나의 욕망 때문이지 내가 저지른 과오로 인한 타락 때문도 아니고, 인간성을 가름하는 선과 악이라는 두 영역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보다 훨씬 깊숙이, 나의 내면에 뚜렷이 구분되어 존재하기 때문도 아니다.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나는 모든 종교의 뿌리이며 모든 고통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험난한 인생 법칙에 대해 깊고 끊임없는 성찰을 해보았다. 나는 두 가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위선자는 아니었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진지한 사람이었다. 속박을 벗어나 멋대로 부끄러운 일에 빠져든 때도 있었고, 슬픔이나 고통의 제거를 위해 또는 지식의 전파를 위해 땡볕 아래 땀을 흘린 때도 있었다. 나의 과학적 연구는 대체로 신비롭고 선험적인 방향으로 흘렀고, 그 연구를 통해 나의 내면에서 투쟁하는 선과 악 사이의 영원한 싸움이 무엇인가를 밝혀내기도 했다. 매일매일 나는 도덕과 사유라는 나의 지성을 통해 한 가지 진리에 꾸준히 접근을 했고, 그 진리의 일부를 발견함으로써 나는 무시무시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 바, 그 진리란 바로 인간성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나의 지식이 그 이상을 밝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일 다른 사람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여 나를 앞지를 것이지만, 내가 감히 말하건대, 인간이란 다양하고 모순된, 그리고 독립적인 인간성의 집합체라는 사실이다. 나의 인간성에 관해서 말을 하자면, 내 삶의 특성상 나는 한 가지, 오직 한 가지 방향으로만 실수 없이 몰두해왔다. 내가 심원하고 원초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깨닫게 된 것은, 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심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였다. 내 의식의 영역 내에서 투쟁하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인간성 가운데서, 나의 인간성은 그 둘 중 하나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그 둘 모두를 갖추었기 때문이며, 나의 과학적인 발견이 인간성 분리 ,라는 기적과 같은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암시하기 훨씬 이전부터도, 나는 달콤한 백일몽을 꾸듯 이 두 가지 인간성을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이 두 가지 인간성을 분리하여 별도의 주체에 가둘 수가 있다면, 삶은 견디기 힘든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악은 제 갈 길로 가게 되어 그의 올곧은 쌍둥이 형제의 참회나 도덕적 열망으로부터 벗어날 것이고, 선은 그가 기뻐할 수 있는 선행을 하면서 이 모순 덩어리인 악으로 인한 수치와 참회를 더 이상 느낄 필요 없이, 고귀한 길을 흔들림 없이 안전하게 걸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조화 불가능한 두 형제가 이처럼 의식이라는 자궁 속에서 함께 묶여 끊임없이 투쟁하는 극단의 쌍둥이라는 사실은, 바로 인류에 대한 저주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떼어놓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미 말한 대로, 실험실 책상 위에서 문제 해결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지금까지 말한 것 이상으로 나는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이 단단하게 보이지만, 우리의 육신은 안개처럼 변하기 쉬운 무시무시한 비물질성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발견한 어떤 성분이, 바람이 불면 커튼이 부풀고 뒤틀리듯, 살갗으로 하여금 경련을 일으키며 떨어져나갔다가 다시 붙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 과학적 사실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유로 더 이상 깊이 고백할 수가 없다. 먼저, 인간은 언제나 삶의 고통과 짐을 등에 지고 있고, 이를 떨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낯설고 두려운 무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나의 설명이 분명히 밝히겠지만, 아! 슬프도다, 나의 발견은 불완전했다. 그러나 나는 만족했다. 나의 영혼을 이루고 있는 어떤 힘이 내는 기운이나 광채로부터 나의 육신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내가 만든 약으로 이 힘들을 최대로 이끌어내면, 그 힘으로 내 육신과 얼굴이 흉하게 바뀐다고 해도 나에게는 당연한 일로, 그 모습은 내 영혼의 열등한 면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이론을 실험에 옮기기까지 오랜 동안 머뭇거렸다. 그처럼 강력한 효능으로 사람의 근본을 좌지우지 흔들어 놓는 약은, 미량으로도 또는 투약 중 아주 작은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정신의 본거가 변하는 걸 관찰하고자하는 나의 노력이 실패할 수도 있었으므로, 그 실험은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매우 위험한 실험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그처럼 크고 유별나, 마침내 그 같은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나는 오랜 동안 시약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곧 약품상으로부터 내가 아는 특별한 염을 다량 구입했고, 이 약품으로 실험을 끝냈다. 저주 받은 어느 날 늦은 밤 나는, 이 약품들을 유리잔에 섞은 다음 연기를 내며 끓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비등이 끝나자 대단한 용기를 내어 한 모금 마셨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아픔, 견디기 힘든 구역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극복하기 힘든 정신적인 공포가 따랐다. 그런 다음 고통이 가라앉게 되자, 마치 중병을 앓고 난 기분이었다. 감각이 조금 이상했고,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무엇,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믿을 수 없는 행복감이 따랐다. 젊어지고 몸이 가벼워진데다가 육체적으로 더 행복한 느낌이었다. 머리가 맑아지며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환각 속에서 물방아 돌 듯 이어졌고, 순수한 영혼의 자유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모든 도덕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이 새로운 생명을 처음으로 숨 쉬고 나자 내 자신이 사악한, 정말로 사악한 사람으로 내 안에 있는 원초적인 악마에게 내 자신을 팔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힘이 솟고 포도주를 마신 듯 행복해졌다. 손을 내밀어 이 새로운 느낌에 환호하는 순간 갑자기 내 몸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걸 알았다.

     그날 내 방에는 거울이 없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장소 옆에 놓인 거울은 내 몸의 변화를 보기 위해 나중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밤이 지난 새벽녘으로--새벽녘으로 아직 어두웠으나,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식솔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희망과 승리감에 도취되어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 위해 침실로 가기로 했다. 별들이 내려다보는 뜰을 지나며, 나는 놀라운 마음으로 불면의 별들이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몰래 복도를 걸었고, 바로 내 집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내 방에 와서 처음으로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일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가 아닌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이론적으로 말을 해야겠다. 지금 내가 변신한 모습인 나의 사악한 면은 그 힘이나 원숙함에서 내가 방금 포기한 선한 면만 못하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온 과정의 모든 일들은 90퍼센트 이상이 노력, 도덕심, 자제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사악한 짓을 저지른 적이 별로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하이드가 헨리 지킬보다 체구도 작고 훨씬 민첩하며 나이도 젊다고 생각한다. 지킬의 모습이 선으로 빛나 듯, 하이드의 얼굴에는 사악함이 명백하다. 그밖에도 악(사망의 원인이라고 내가 아직도 믿고 있는)은 하이드의 몸에 기형과 타락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렇지만 거울 속의 그 추악한 모습을 보면, 나는 반감이 생기기보다는 뛰어가 반기고 싶다. 그 역시 내 자신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이다. 나의 눈에 그는 보다 생생한 영혼의 모습이고, 내가 지금까지 나의 얼굴이라고 주장하며 살아온 불완전하고 찢어진 얼굴보다 더 호소력 있고 특별한 얼굴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선이었다. 내가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이었을 때, 처음 나를 가까이 본 사람들은 예외 없이 나의 살갗에 의혹과 불안감을 보였다. 내 생각으로 미루어 이 사실은,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모든 사람들은 선과 악의 복합체이며, 인간 가운데 오직 하이드만이 절대 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 앞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두 번째의 결정적인 실험이 남아 있었다. 그 실험은 다름 아닌, 변신 후 다시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이미 나의 집이 아닌 곳이 되어 버린 이곳으로부터 해가 돋기 전에 도망을 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약을 만들어 마셨다. 몸이 녹아내릴 듯한 고통이 다시 왔고, 이어서 헨리 지킬의 성격, 키, 얼굴 등 지킬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그날 밤 나는 운명의 기로에 서 있었다. 보다 고귀한 정신을 가지고 이 발견을 했거나 또는 관대하고 경건한 열정으로 이 실험을 했다면, 모든 것은 분명 결과가 달라야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이 고통으로부터는 악마가 아니라 천사가 나타났어야 했다. 그 약의 약효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으로, 악마적인 약도 신성한 약도 아니었지만, 내 육신이라는 감옥의 문을 열고 빌립보의 죄수들처럼(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을 기초부터 온통 뒤흔들어 놓는 바람에 문이 모두 열리고 죄수들을 묶어 두었던 쇠사슬이 다 풀리고 말았다. 사도행전 16:26. 옮긴이) 나의 내면에 있던 죄수를 탈출시킨 것이다. 그 순간 나의 도덕심은 잠자고 있었고, 그래서 그 주인공인 에드워드 하이드가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한편으로는 악,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든 헨리 지킬이라는 두 개의 성격, 두 개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 결합되어 있는 이 모순을 고치고 개선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이미 절망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무미건조한 연구생활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가끔은 즐거운 때도 있었는데, 나의 즐거움이란(쉽게 말해) 속된 것으로, 나는 사람들이 잘 아는 명사였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 이 같은 삶의 모순은 날이 갈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의 새로운 능력에 유혹을 당해 마침내 꼼짝 못하고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 약을 마시기만 하면, 저명한 교수라는 내 육신의 굴레를 벗고, 커다란 외투를 입은 에드워드 하이드의 육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 당시에는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극히 정밀한 연구를 통해 시약을 만들었다. 후일 하이드가 경찰의 추적을 받았던 장소인 소호에 집을 얻어 가구를 차렸다. 가정부로는 세심함이 부족하나 말이 없는, 내가 잘 아는 여자를 고용했다. 한편 하인들에게 지시를 하여 하이드(하인들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을 했다)가 자유로이, 그의 뜻대로 나의 집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했고, 또 다른 나인 하이드가 혼동하지 않도록 나도 그 집을 방문하여 모든 것을 눈에 익혔다. 그 다음 어터슨이 그토록 반감을 가지는 유언장을 작성했고, 그렇게 해서 지킬에게 무슨 일이 발행하더라도 아무런 금전적인 손해가 없이 하이드의 신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빈틈없이 준비(내 생각으로)를 했고, 이처럼 낯선 방법으로 내 지위에서 오는 이익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지난날의 사람들은 자신의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불량배를 고용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감췄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지만, 재미 삼아 그렇게 한 사람으로는 처음이다. 나는 진정으로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 사이를 활보하다가는, 곧바로 빌린 육신을 벗어 던지고 학생처럼 자유의 바다로 뛰어드는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 두터운 보호막에 싸여 있어 나의 안전은 완벽했다. 생각해보라 --내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그렇지만 실험실로 들어가 준비된 약을 섞어 마시면, 에드워드 하이드와 그가 한 일들이 거울 위의 입김처럼 사라지고, 그 대신 그곳에는 그의 집 서재에서 조용히 책상 위의 등불을 돋우며, 사람들의 의구심을 비웃는 헨리 지킬이 있는 것이다. 내가 변신을 한 다음 서둘러 찾은 즐거움이란, 내가 이미 말한 대로 속된 것이었다. 나는 상스런 말을 쓰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하이드의 즐거움은 악마를 향해 잘 못 가고 있었다. 내가 지킬로 다시 돌아왔을 때, 하이드의 이 같은 타락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는 일이 흔했다. 나의 영혼으로부터 불러내어 자유롭게 즐거움을 찾도록 한 그가 근본적으로 사악하고 악마적인 존재로,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이기적이며,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던 아랑곳없이 야수와 같은 탐욕으로 쾌락을 들이키는 것이다. 그는 무자비한 냉혈한이다. 헨리 지킬은 에드워드 하이드의 통제를 교묘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결국 책임을 져야한 자는 하이드, 다름 아닌 바로 하이드였다. 지킬은 그대로였다. 지킬은 손상되지 않은 좋은 성품으로 다시 돌아왔고,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을 고칠 수 있다면 서둘러 고쳐 놓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양심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관련된(지금도 내가 저질렀음을 인정하기 힘들다) 그 수치스러운 일들을 상세히 진술할 계획은 없다. 그에 대한 나의 경고나 처벌에 따른 조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나는 한 사건을 겪었는데, 사소한 사건이라 그냥 상황만 진술하겠다. 한 어린이에 대한 잔인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을 목격한 행인이 나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고, 어느 날 그 행인이 어터슨의 친척이라는 걸 알았으며(리챠드 엔필드를 말하고 있다. 옮긴이), 그 소녀의 가족과 소녀를 돌 본 의사가 그와 합세하여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끝내는 그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그들을 문이 달린 건물로 데리고 가, 헨리 지킬의 이름으로 수표를 끊어 주었다. 그러나 그 후 그 같은 위험은 쉽게 피할 수가 있었는데, 에드워드 하이드의 이름으로 다른 은행에 구좌를 열었고, 필체를 비스듬히 뉘어 서명을 다르게 함으로써, 나는 운명의 손이 닫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댄버스 경이 사망하기 대략 두 달 전, 나는 외출을 했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를 했는데, 다음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니 느낌이 좀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천정이 높은 내 침실과 화려한 가구들, 마호가니 침대보를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광장의 내 집 내 방에서 잠을 자고 깬 것이 아니라, 에드워드 하이드의 몸으로 잠을 잔 소호의 작은 방에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환각의 원인들을 심리적 관점에서 느긋하게 생각하며 가끔 내가 그랬듯이, 기분 좋게 다시 아침잠에 빠졌다. 잠이 깨어 내 손을 보았다. 헨리 지킬의 손(어터슨이 말했듯이)은 전문가로서의 모양새와 크기로, 크고 힘이 있으며 희고 단하다. 그러나 그때 내가 런던의 아침나절, 노란 햇빛 속에 내려다본 손은 가냘프고 손마디가 줄어든 희끄무레한 색깔로, 검은 털이 길고 무성하게 뒤덮은 손이었다. 바로 에드워드 하이드의 손이었다.

     틀림없이 30초 가까이 내려다보았고, 나는 놀라 넋을 잃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공포심이 일어, 깜작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향해 뛰어갔다. 거울을 보니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맞아, 난 헨리 지킬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깨어나니 에드워드 하이드야. 이를 어찌 설명한다? 스스로 물으니 또 다른 공포가 몰려왔다. 어떻게 치료한다? 날이 샌지 이미 오래였다. 하인들이 잠을 깨고, 모든 약들은 내 사무실에 있었다. 그곳까지는 멀었다. 두 개의 계단을 내려가 뒷길로 해서 뜰을 지나 해부실에 이르렀다. 거기서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얼굴을 가릴 수도 있었지만, 줄어든 키를 감출 수가 없으니 얼굴을 감춘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안도감이 크게 들었다. 하이드의 왕래하는 모습에 하인들이 이미 익숙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렀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옷을 입은 채 집을 나왔고, 그 시간에 이상한 옷차림새를 한 나를 보고 브래드쇼가 뒷걸음질을 했다. 10분 후, 지킬 박사는 제 모습으로 돌아와 식탁에 앉아 얼굴을 찡그린 채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있었다.

     식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온 이 불가사의한 사건은 벽에 글을 쓴 바빌로니아의 손가락처럼(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의 촛대 맞은편 석회 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다니엘5:5. 옮긴이), 내 자신에 대한 판결문을 한 줄 한 줄 읽는 거나 같았다.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나의 이중적인 존재가 지속 가능할지의 여부와 무슨 문제가 초래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몸이 불어나 내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내가 운동을 하고 잘 먹어 그렇다 치더라도, 에드워드 하이드의 키가 자라고 또 보다 따듯한 피가(내가 그의 몸이 되었을 때)흐르는 듯하여, 이런 상태가 계속되어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능력을 잃게 되면, 타고난 내 인간성의 균형이 영원히 역전됨으로써, 하이드의 성격이 나의 성격이 되어, 돌이킬 수 없이 되리라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약효는 매번 달랐다. 처음에는 완전 실패였다. 그런 후 한 번은 두 배, 또 한 번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채 세 배의 양을 썼다. 그때까지 나의 행복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란, 이 같은 희귀한 실험에 따른 불확실성 말고는 없었다. 어쨌든 그날 아침의 사건으로 보면 처음에는 지킬의 몸을 벗어 던지는 일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하이드의 몸에서 벗어나는 게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본래의 선량한 자아를 잃고, 사악한 제2의 인격으로 서서히 바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두 개의 인격 사이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내 두 개의 인격체는 사물을 기억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특성들은 서로 달랐다. 지킬(복합적인 인간성의 소유자)은 지극히 명석한 사람으로, 이제 그는 탐욕에 젖어 하이드의 쾌락과 만용을 계획하고 공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하이드는 지킬에게 냉담했고, 추적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동굴을 아는 산도적처럼 지킬을 도피처로만 생각했다. 지킬은 아버지보다도 더한 관심을 보였지만, 하이드는 싸늘한 아들이 태도 이상이었다. 지킬과 운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오랜 세월 은밀히 몰두하고 최근에야 소중히 여기게 된 가치들을 위해 죽는다는 걸 뜻했다. 하이드와 운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수많은 이익과 욕심을 위하여 죽음으로써, 일순간에 영원한 경멸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의 사랑을 잃는다는 것을 뜻했다. 두 가지 선택을 비교해보면 공평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지킬을 선택하면 욕망의 억제라는 지옥불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고, 하이드를 선택하면 자신이 무엇을 잃을 것인지조차 알지를 못할 것이므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저울질하려면 고려해야할 사항이 더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기이하지만, 이 같은 선택의 조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오래되고 흔한 일로, 많은 사람들이 조심을 하고 경계를 해도 유혹에 빠져 죄를 짓게 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선을 선택했으나 이를 밀고 나갈 힘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늙고 만족스럽지 않은 의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내 주변에는 친구도 많고 정직한 희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하는 하이드의 탈을 쓰고 즐긴 자유와 젊음, 경솔한 행동, 충동적인 행동, 은밀한 쾌락과 결연히 작별을 고했다. 소호의 집도 처분하지 못했고, 아직도 내 방에는 에드워드 하이드의 옷도 그대로 있어, 무의식적으로 작별을 조금 주저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나의 결정을 믿었고, 과거에는 전혀 몰랐던 진지한 삶을 살았으며 양심이 가져다 준 보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악에 대한 나의 새로운 각성이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고, 양심을 기리는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서 자유를 찾으려고 괴로워한 하이드가 그랬듯이, 나도 격렬한 고통과 열망으로 괴로워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도덕심이 약해진 순간, 다시 변신의 약을 만들어 마셨다. 술중독자는 자신의 비행의 원인을 말할 때, 절대로 술로 인한 육체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한에서는, 에드워드 하이드의 본질적 인격인 악이 그처럼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고 잔혹한 것으로 여기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벌을 받은 것이다. 나의 내면에 오랜 세월 갇혀 있던 악이 노도처럼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그 약을 마실 때면 내 마음이 오히려 더욱 더 통제할 수 없이, 미친 듯이 악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속으로부터 치미는 충동 속에 그 불행한 희생자(댄버스 캐루 경. 옮긴이)의 정중한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마침내, 도덕적인 사람이(지킬 자신을 말함. 옮긴이) 그처럼 가엾은 충동에 빠져 범죄를 저지른다면 죄가 될 수 없다고 하나님 앞에 선언했다. 그리고 몸이 아픈 어린이가 장난감을 부수듯, 정신없이 매질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최악의 인간조차도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균형감각을 스스로 벗어던진 것이다. 내게 있어 유혹을 당한다는 것은 비록 작은 유혹일지라도, 바로 파멸이었다.

     곧 내 마음 속에 사악한 마음이 일어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지극히 행복한 마음으로, 저항을 못하는 그(댄버스)를 두들겨 팼다. 매질마다 행복했다. 행복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돌연 싸늘한 공포가 엄습해왔고, 매질에 지치기 시작했다. 눈앞에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 나의 생명이 파괴되는 장면이 보였다. 으쓱했던 마음이 떨리면서 이 살인의 현장에서 도망쳤다. 악에 대한 나의 탐닉은 만족스러웠고 꿀맛 같았지만, 생명에 대한 애착은 교수대에 매달린 듯 위기에 직면했다. 나는 소호의 집으로 달려가(증거를 확실히 없애기 위해)모든 문서를 파괴한 다음, 가로등이 켜진 거리로 나가 방황하며, 악에 대한 탐닉과 생명에 대한 애착이라는 두 가지 정신적인 극한 속에서, 내가 저지른 범죄를 만족한 듯 되돌아보고는 장차 또 다른 못된 범죄를 계획하면서, 그러나 내 뒤를 쫓는 복수자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이드는 콧노래를 부르며 약을 만들었고, 죽음을 무릅쓰고 그것을 마셨다. 변신의 고통은 그의 몸을 산산이 찢어 놓고서야 지킬로 바뀐 다음, 지킬은 감사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던 것이다. 나의 전신은 이기심으로 꽉 차있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던 어린 시절과 내 직업상 자아를 부정하면서까지 기울였던 노고의 시절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그 무시무시하고 저주 받은 그 변신의 밤까지 내 인생 전체를 본 것이다.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나를 꾸짖고 기억속의 목소리와 무서운 영상들을 눈물과 기도로써 지우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 같은 절절한 애원 속에서도 추악한 내 죄악이 아직도 내 영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참회의 고통이 점점 사라지면서 기쁨이 찾아왔다. 내 행위로 인한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이다. 이제 하이드가 사라진 것이다. 내가 원하든 말든, 이제 오로지 내 실존의 선한 면만 남게 된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따르는 제약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약을 만들기 위해 진지한 마음으로 드나들었던 실험실 문을 잠근 다음, 그 열쇠를 발로 뭉개어 깨버린 나의 존재를 생각하니 이 얼마나 기쁜가!

     다음 날 살인범이 밝혀져 하이드가 범인임이 명백해졌고, 피해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사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닌 상식을 벗어난 비극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알고 기뻤다. 교수대에 대한 공포로 인해, 선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지고 보호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킬은 이제 나의 도피처이다. 순간적으로라도 하이드가 그곳에서 나타나면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그를 잡아 죽일 것이다.

     나는 장차 좋은 일을 해 과거의 잘못을 갚으려고 했다. 솔직히 말해 나의 이 결심은 몇 가지 좋은 결과를 가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작년 12월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진지한 노력을 했고, 남을 위한 많은 일들을 했으며 이에 따라 조용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는 걸 어터슨은 알고 있다. 실로 말하거니와 이 유익하고 고결한 삶은 결코 싫증이 나는 일이 아니며, 매일 이 같은 생활을 완벽하게 즐기고는 있으나, 나에게는 이중적인 욕망이라는 저주가 아직 남아 있고, 참회의 마음이 무디어지자, 내가 그처럼 오랜 세월 집착했다가 최근 그 사슬을 끊었던 악한 마음이 고개를 들어, 다시 자유를 요구하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이드의 부활을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하이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킬의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유혹 앞에 나의 양심을 시험하고 싶었고, 나도 모르게 일상의 죄를 저지르듯, 그 유혹의 공격에 굴복한 것이다.

     참을 수 있을 만큼은 참았는데 모든 일이란 끝이 있게 마련이어서, 악에 대해 그냥 조금씩 양보를 하다 보니 마침내 나의 정신적인 균형이 깨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나의 굴복은 그 약을 발견하기 전 나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맑고 투명한 1월 어느 날, 서리가 녹아 땅이 질척거렸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리젠트 공원은 겨울이 속삭이는 소리로 가득했고, 봄의 향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햇빛을 쐬고 있었다. 나의 내면의 야수가 기억의 편린들을 핥고 있었다. 정신이 조금 몽롱한 상태였고, 또 다시 죄가 떠올랐으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를 사람들과 나를, 나의 관대한 마음과 그들의 무관심에서 오는 비정함과 비교를 하니 웃음이 나왔다. 이처럼 자만에 찬 생각을 하는 순간, 양심의 가책이 들면서 엄청난 구역질과 함께 몸이 몹시 떨렸다. 그런 다음 정신이 혼미해졌고, 다시 정신을 조금 차리자 정신 상태가 바뀌면서 대담해지고, 두려움도 없어지고,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났음을 알았다. 내 몸을 내려다보니, 몸이 줄어든 채 구겨진 옷이 축 늘어져 있었고, 무릎 위의 줄어든 손에는 털이 무성했다. 다시 에드워드 하이드가 된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이 보장된 부유한 신사로, 내 집에서 나를 위해 나만의 식탁이 준비된 사람이었지만, 이제 나는 교수대의 공포에 떠는 지명수배된 살인자로, 집도 없이 모든 사람들의 추적을 받는 사냥감이 된 것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했지만, 아직 판단력이 남아 있었다. 나는, 내가 제2의 인격으로 바뀌면 내 몸이 더 날렵해지고 정신적으로 몹시 유연해짐을 지금까지 여러 번 겪었다. 따라서 지킬의 인격이 무너지자 하이드의 인격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약은 내 사무실 여러 진열장 중 어느 하나에 있었다. 그 약을 어떻게 손에 넣는다? 이것이 내가 (손으로 나의 변한 얼굴을 눌러보았다)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실험실 문은 내가 이미 잠갔다. 나의 집을 통해 그곳으로 가려면, 하인들이 나를 교수대로 보낼 터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 사람으로 래니언을 생각했다. 어떻게 그를 찾아가 설득을 한다? 거리에서 체포를 면한다 해도, 무슨 길로 그를 찾아 가며, 낯모르는 이 흉측한 모습의 방문객인 내가, 저명한 의사인 그를 어떻게 설득하여, 그의 동료인 지킬 박사의 연구물인 약을 찾아내도록 할 것인가? 곧 내게 남아 있는 내 원래의 인격을 가진 지킬을 생각했고, 그래서 그의 필체로 편지를 쓸 수가 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자 ,내가 해야 할 일이 명백해졌다.

     곧 옷차림새를 정성들여 추스르고는 지나가는 마차를 불러 타고, 내가 우연히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포틀랜드 가에 위치한 어느 호텔로 갔다. 내 모습(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비극적인 운명인지야 어떻든 정말 우스꽝스러운)을 본 마부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를 갈며 그에게 악마와 같은 표정을 짓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그에게는 다행스러운 일로-- 내게는 더 다행스러운 일로, 만일 그가 계속 웃었다면 여지없이 그를 마부 석으로부터 끌어 내렸을 것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면서 흉악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종업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나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채, 나의 명령에 따라 굽신거리며 방으로 나를 안내했고 또 필기구도 가져왔다. 생명을 위협 받고 있는 하이드는 나에게 새로운 존재로, 터무니없는 분노로 몸을 떨고 살인의 충동을 느끼는, 가학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영특하여 의지의 힘으로 분노를 억제하고, 래니언과 푸울에게 각각 한 통씩 두 통의 편지를 써, 수신자들에 그 편지를 확실히 받도록 등기우편으로 보냈던 것이다. 편지를 보낸 후 이빨로 손톱을 뜯어내며 호텔 방 난롯가에 종일토록 앉아 두려움에 휩싸인 채 홀로 식사를 했고, 웨이터들은 눈에 띄게 주눅이 든 채 시중을 들었던 것이다. 밤이 되자 그는 뚜껑이 덮힌 마차를 타고 런던의 이 거리 저 거리를 배회했다. 나라고 할 수 없는 바로, 그가 그랬다. 지옥의 아들인 그는 인간이 아니다. 공포와 증오 이외에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마침내 마부가 그를 의심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차에서 내려 눈에 확 띄는 커다란 옷을 입은 채 밤 길 속의 군중들 사이를 걷자, 그의 내면으로부터 공포와 증오심이 폭풍우처럼 몰아쳤다. 누가 추적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혼자 중얼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이 뜸한 거리를 지나며 자정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쟀다. 어느 여인이 성냥인 듯한 물건을 사라고 했고, 그가 따귀를 때리자 여인이 도망을 쳤다.

     래니언의 집에 도착하여 지킬의 몸으로 돌아오자, 나의 이 옛 친구가 두렵다는 말을 했고, 그의 말에 나도 놀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놀랐더라도 그 놀라움은, 내가 회상하는 그날 밤에 겪은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바뀌었다. 교수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나를 괴롭힌 하이드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뀐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래니언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날 낮의 일로 기진맥진한 끝에 죽은 듯 깊은 잠이 들어, 악몽으로 몸을 뒤채면서도 깨어나질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떨리고 기운이 없었지만, 기분이 상쾌했다. 아직도 나는 나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그 추악한 존재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했고, 그 전날의 무시무시한 일들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약도 가까이 있었다. 래니언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건만으로도 감사하여 희망의 빛이 비치는 듯했다.

     아침 식사 후 나는 뜰 안을 천천히 걸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찬 공기를 마시자, 변신을 알리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느낌을 또 느꼈고, 마침 나의 은신처인 밀실로 돌아오자 , 다시 하이드의 마음이 되어 흥분이 되고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지킬로 돌아가려면 두 배의 약 성분이 필요했는데, 아!, 여섯 시간 후 슬픈 마음으로 난롯불을 보고 있자니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고 따라서 다시 약을 먹어야 했다. 그날 이후 잠깐 내가 지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선수와 같은 엄청난 운동과 그 약의 즉각적인 약효 때문이었다. 밤낮으로 몸이 떨려 불길했고, 무엇보다 잠을 자거나 의자에 앉아 잠깐 졸고 나서 보면, 나는 언제나 하이드의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따라붙는 이 어두운 운명으로 인한 긴장과 함께 저주 받은 나를 쉴 새 없이 감시를 해야 하므로,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런 일들로 인해, 내 본래의 모습인 지킬은 열병이 먹어치워 텅 빈 존재가 되어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지고, 남은 건 오로지 내 제2의 자아 하이드에 대한 공포였다. 그러나 잠이 들거나 약효가 떨어지면, 거의 고통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변신에 따른 고통은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유 없이 들끓는 증오의 마음, 그리고 격렬한 생명력을 담을 만큼 튼튼치 못한 육체 등 무서운 장면들로 꽉 찬 환각의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지킬이 병듦에 따라 하이드는 더욱 강한 힘을 갖는 듯했다. 둘을 갈라놓은 증오심은 분명 둘 모두에게 같았다. 지킬에게 있어 증오는 본질적인 본능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생각을 공유하고 죽음을 함께할 존재로 그의 변형된 기형을 있는 그대로 전부 보아왔고, 그에게 가장 마음 아픈 고통이었던 그와의 관계를 제외하면, 그의 생명력으로 보아 하이드는 생명력이 없는 사악한 무기체이다. 이는 충격적인 사실로, 지옥에서 솟아 오른 혼돈이 악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모양새이며, 모습이 없는 먼지가 몸짓을 하며 죄를 짓는 형상이고, 죽어 모양새도 없는 것이 생명이 하는 일을 갉아 먹는 모양새다. 더구나 그 반역적인 존재는 아내보다 더 친밀하게, 눈동자보다 더 가까이 지킬과 묶여 그의 육신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말소리가 들리고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지며, 몸이 약해지거나 잠이 들 때마다 그를 덮쳐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다. 지킬에 대한 하이드의 증오는 이와 다르다. 교수대에 대한 공포로 인해 하이드는 일시 자살을 반복하면서, 완전한 인간이 아닌 차선의 인간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이 같은 일을 싫어하고, 지킬이 처한 절망 상태를 혐오하면서도 지킬이 자신을 증오하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래서 나를 원숭이 같은 속임수로 속이고, 나의 필체로 나의 책에 신성모독의 낙서를 했고, 편지들을 불사르고 내 아버지의 초상화를 파괴했다. 진실로 하이드에게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면, 그는 나를 파멸 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을 파멸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명에 대한 애착은 놀라웠고 그밖에도, 그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몸이 굳어지지만, 하이드의 비참한 모습과 그의 생명에 대한 애착을 생각할 때, 그리고 자살로서 그를 떨쳐버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음을 그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 속에는 그를 가엾어 하는 연민의 정이 있다.

     더 이상 말해 봐야 소용도 없을 것이고 시간도 없다. 누구도 나처럼 그만한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 그렇지만 고통에 순응하는 습관 때문에,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마비되고, 절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나는 몇 년간 벌을 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마침내 헨리 지킬의 얼굴과 성격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대재난이 닥쳐왔다. 내 약의 원료는 처음 실험을 한 후 더 구입한 적이 없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을 보내 원료를 더 구해 약을 조제 했다. 약이 끓었다. 먼저 산 원료는 색깔이 변했지만 두 번째 산 것은 변하질 않았다. 그것을 마셨으나 효력이 없었다. 원료를 찾아 내가 런던을 얼마나 헤맸는지 푸울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어터슨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헤맸어 봐야 소용이 없었다. 먼저 산 원료는 불순물이 있었고, 그 알 수 없는 불순물이 바로 이 약의 약효를 내게 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약을 먹은 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고, 이제 나는 맨 먼저 마신 약의 마지막 남은 효력에 힘입어 이 진술을 마치려고 한다. 따라서 헨리 지킬이 자신의 사고로 생각하고 자신의 얼굴을(얼마나 슬픈 모습으로 바뀐 거울 속의 내 얼굴인가!) 거울에 볼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한 지금이 마지막이다. 지금까지의 진술이 온전하다면,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하고 또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제 이 긴 편지를 서둘러 끝내야겠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동안 내가 하이드로 바뀐다면, 그는 이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지만, 내가 이 편지를 쓰고 나서 시간이 좀 경과한 후 변신을 한다면, 그의 엄청난 이기심(생명에 대한. 옮긴 이)과 시야의 한계로 인해 그처럼 짐승 같은 짓을 다시는 못할 것이다. 실로 우리 둘에게 다가오는 어두운 운명은 이미 그를 바꾸고 억누르고 있다. 지금부터 30분이 지난 후, 나는 그 혐오스러운 인격으로 영원히 다시 탈바꿈하여 의자에 앉아 몸을 떨며 통곡을 하거나, 지극히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이 방(지상의 내 마지막 피신처인)을 왔다 갔다 하며, 소리마다 위험을 알리는 게 아닐까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이드는 교수대 위에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최후의 순간에 용기를 내어 죽음에서 벗어날 것인가? 하나님만이 아실 일로 나는 관심 없다. 이제 내가 진정 죽을 시간이 되었고, 그 후의 일은 나와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의 일이다. 여기서 글을 마치며 나의 이 고백을 봉투에 넣고 봉인함으로써, 불행한 헨리 지킬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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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연보

1850 11월 13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아버지 토마스 스티븐슨, 

         어머니 마가렛 사이의 외동 아들로 태어남. 태어나면서부터 

          폐결핵으로 추정되는 질병에 걸림.

1858 병약으로 인해 학교를 자주 결석함. 가정교사를 초대 함.

1859 챨스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챨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발표.

1865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발표.

1867 아버지 토마스, 가업 계승을 바라며 아들을

          에딘버러 대학에 입학 시킴.

          병약하나 낭만적인 그는 교수들을 기쁘게 

           하지만, 수업을 소홀히 함. 에딘버러 시민들과의 

           교제보다는 미쉘 드 몽테뉴, 윌리엄 해즐릿, 

           다니엘 데포 등의 문체를 공부하며 시간을 보냄. 

1871  건축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꿈에 따라

          아버지를 실망 시킴. 진정으로 좋아하는 글쓰기를

          계속함.

1872 루이스 캐롤의 "거울로", 죠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발표.

1874 토마스 하디의 "광인들로부터의 도피" 발표.

1875 변호사 시험 합격. 변호사로 일하는 대신 

          글을 쓰며, 유럽을 여행함.

1876 프랑스의 오이스 강 유람. 이때 얻은 영감으로

         여행기 "내륙으로의 여행" 집필.

  1878 "내륙으로의 여행" 발간. 파니의 미국 귀향으로 

            우울증에 빠짐. 프랑스의 Massif  Central 산맥 종주

            시작. 그 경험담을 이듬해  "세벤느에서의 

            당나귀 여행" 으로 발표.

  1879 캘리포니아로 가 파니를 만남. 심각한 

           폐질환으로 사경을 헤맴.

  1880 이혼 후 파니와 재혼. 북 캘리포니아에서

            파니의 간호를 받음. 두 사람 에딘버러로 

            돌아온 후 4년간을 투병함. 남 프랑스 및

            스위스 여행.

  1881 파니가 데리고 온 아들 로이드 오스번과

            장난 삼아 그린 지도에서, 묻힌 보물에 관한

            이야기의 플롯을 생각함.

  1882 "보물섬" 발표, 영국 독자들의 호응을 얻음.

  1884 남 프랑스 여행 중 병 재발. 파니, 오스번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남해안의 휴양지 

           본마우스에서 3년간 요양함. 그후 2년간 많은

           작품을 씀. 헨리 제 임스와 교제함.

  1885 "동시집" 발표

  1886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일", 

            "납치" 등 발표.

  1887 5월 부친 사망. 남은 유가족 미국 여행. 수필집 

           "추억과 초상들" 발표.

  1888 유람선 카스코 호를 타고 남태평양 유람. 

           이때, 타히티, 마르케스, 하와이 등

      많은 섬을 방문함.

1889 몰로카이의 나병촌 방문. 촌장인 다미안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함.  "지주 밸런트래" 발표.

1890 동 태평양 유람. 폐출혈로 사모아 섬에서 

          내림. "남해 바다에서"와 "다미안 신

          부님" 등 발표.

1891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발표.

1892 사모아 인들에 대한 서구 열강의 인권 침해에 

         대한 저항운동 주도.  "역사 주석", "사모아에서 

         고난의 8년" 등 발표.

1893 사모아 추장을 지지하자, 사주 혐의로 추방 

          위기를 맞음. 건강 악화로 스코틀랜드로의 

           귀향이 불가능함에 따라 깊은 향수에 빠짐.

1894  사모아에 평화가 정착하자 영웅으로 찬사를 받음. 

           12월 3일, "허미스톤의 위어,집필 중, 뇌출혈로 

            사망. 사모아의 바이아(Vaea)산 정상에 묻힘.


박흥서

옮긴이는 마드리드,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칠레 무역관장을 역임했고 GATT(WTO전신) 및 UNCTAD(UN무역개발회의)의무역협상에 참여하는등 오랜 세월 국제무역 업무에 종사하였다. 그는 "성채의 나라 스페인"과 "영어 단어 내려다보기" 등 두 권의 책을 지었다. 그는 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 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번역했다.

Comments

  1. 좋은 문학 작품을 보는 것은 인생에서 훌륭한 경험을 줍니다.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요.
    고전을 읽는 것은 지식과 경험, 사색을 위하여 좋은 도구가 됩니다.

    고전은 옛날 책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는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와 핵심 사상이 들어있다 생각합니다.
    환경은 변화해도 사람은 변화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고전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져다 주고요.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님께서 직접 번역해 준 고전들은 읽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고, 복잡한 사회에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줄 뿐만 아니라
    명망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접해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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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간의 양면성을 다룬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알게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잘못된 욕망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범죄가 되는 것이고, 욕망을 잘 조절하여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명예와 명성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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