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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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 도밍고는 캐리브 바다 가운데의 조그만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이다. 콜럼버스가 대양을 넘어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다. 산토 도밍고 시내 오자마 강변에는 거대한 등대가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바로 신대륙 발견 5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콜럼버스 등대이다. 정방형의 터에 세워진 이 등대는 등대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이 등대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1923년 범 미주회의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자금 문제로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공사에 착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오백 주년이 되는 해였던 1992년에 완공을 했다. 이 등대는 149개의 강력한 서치라이트는 70킬로 떨어진 곳에서도 보였고, 레이저를 쏘아 허공에 그리는 십자가는 푸에르토리코에서도 보였다.

                                                          

                                                                콜럼버스 등대

    5백주년 기념에 맞추기 위해, 호아낀 발라게르 대통령은-그는 시인이자 장님이었다- 이 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그 자리의 판잣집을 철거하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가난한 나라에 걸맞지 않는 1억 달라의 돈을 들였고 공사 기간 중 모든 시멘트는 이 공사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등대는 등대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 등대의 지하 무덤에 콜럼버스의 유골이 묻혀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에서 죽었고, 스페인의 남부 도시 세비야의 고딕식 사원인 히랄다에 묻혔었고, 1526년 그의 아들 디에고도 함께 이 사원에 묻혔다. 생전 산토도밍고에 묻히기를 원했던 시아버지의 뜻에 따라 1541년 며느리, 그러니까 디에고의 미망인이 산토도밍고 성당으로 이장을 한다. 그 후 해적의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덤을 폐쇄하고 묘비명을 밀봉했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 기간 중인 1795년 히스파니올라(도미니카)가 프랑스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프랑스를 신뢰할 수 없다는 뜻에서 콜럼버스의 유해를 쿠바로 옮겼다. 그 후 다시 히랄다 성당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의 인생 유전 만큼이나 그 시신도 유전을 한 것이다. 이 시신 유전의 유골이 콜럼버스의 것이 아닌 그의 아들 디에고의 것이라는 설이 있다. 도미니카 당국은 콜럼버스의 유골이 도미니카를 떠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2006년 DNA조사 결과 세비야의 유골이 콜럼버스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미니카 당국은 콜럼버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DNA조사를 거부하고 있는데,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등대의 건설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등대는 콜럼버스 징크스라는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공사 주역인 발라르게 대통령의 여동생은 이 등대의 방문 중 실족 추락사 했고, 이 등대의 완공식에서 기념사를 할 예정이었던 교황 바오로 II세는 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독재와 부패, 과두정치의 상징적이었던 그 기념물과 같은 반열에 서고자 했던 대통령은 임기 중 하야했다. 30만 촉광에 달했던 그 등대의 불빛은 도미니카 영광의 불빛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모독의 불빛으로 말해지고 있다. 지금은 등대불이 없는 이름만의 등대로 남아 있는데, 인류의 경험으로 보면, 거대한 건축 구조물은 행복보다는 불행이나 패망을 가져 온 것 같다. 바벨탑은 하나님의 징벌로, 만리장성은 진나라의 멸망으로, 피라밋이나 마야의 거대한석조 건축물도 건축자에게 번영보다는 파멸을 가져다주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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