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레티아(Lucre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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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최근 성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어느 여성 직업군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여성의 순결과 관련된 사건이다.

    어느 나라든 건국 설화가 있으며, 설화의 중심에는 영웅이나 신성한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을 민족의 조상으로 섬김으로써 모두 같은 조상을 둔 자손이라는 생각에서, 서로 동질성을 확인하고 위대한 인물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우리의 조상이신 단군성조라던가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등 많은 예를 들 수가 있다.

    후세에 라틴어를 남긴 로마는 어떠한가? 로마 건국의 영웅인 로물루스는 신성과는 먼 난잡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아들로 갓난아기 적에 버려져, 목동들이 늑대의 젖을 먹여 키운 인물이다. 그는 로마 건설(패권)을 놓고 쌍둥이 형제인 로무스Romus와 다투다 그를 죽인다. 로물루스는 로마에 처음으로 사람들을 정착 시켰으며, 인근 사비나Sabina족의 여자들을 납치해 오기도 한다. 이처럼 로마 건국 신화는 그다지 영광스럽지가 않다. 그렇지만 이 신화가 상징하는 것은, 그 후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선조가 신화 속의 도덕군자가 아니라, 군신의 아들로서 용맹스럽고 현실적인 영웅이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준다.

    정확한 로마 건국 연대를 알기는 어렵지만 대략 기원전 1000년경에는 이미 이태리 반도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BC295년경에는 이태리 반도 전역의 모든 부족이 로마의 통제를 받는다. 그렇지만 로마 건국 초기에는 이웃 에트루리아(현재의 이태리 북부지방)의 강력한 왕들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BC509년, 에트루리아의 타르키니우스 왕의 아들인 섹스투스가 로마의 귀부인 루크레티아를 겁탈한다. 수치심을 못 이긴 그녀는 자살을 하고, 이를 계기로 로마인들의 대 에트루리아 항쟁이 시작된다.

   

                -  섹스투스와 루크레티아 -

         BC390년, 카밀리우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군대가 에트루리아의 수도인 파레리이(로마 북쪽 50킬로 지점)를 공격한다. 당시 팔레이리 권문세가들의 자제 교육은 저명한 교사가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이 교사는 아이들을 카밀리우스에 데리고 가 말하기를, “이 아이들은 팔레이리 세도가들의 자제들입니다. 장군께 넘겨드립니다. 팔레이리는 이제 장군의 수중에 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을 들은 카밀리우스는 대단히 노하여, "우리가 비록 전투 중에 있지만, 전쟁이라는 것도 평화와 마찬가지로 다 법도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어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지,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전쟁이지만 우리는 보편적인 가치에 구속을 받고 있다.“ 라고 꾸짖었다.

    그는 교사를 묶은 다음, 아이들에게 매를 들려 팔레이리로 돌려보내면서, 성에 도착할 때까지 매질을 하라고 한다. 반역자를 경멸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팔레이리의 주민들은 즉시 항복을 한다. 로마의 정정당당함과 명예로움에 굴복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 2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 종교인이 수십억인 이 시대에도 전쟁이 나면 죄 없는 부녀자들, 아이들을 마구 죽이는 걸 보면, 당시 로마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고결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같은 관리들의 윤리의식은 로마인들이 행한 경건하고 빈번했던 종교의식에서 형성된 것이며, 백성들은 이처럼 올곧은 관리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복종을 했던 것이다. 폴리비우스(220~BC118)같은 역사가들은 이런 점에서 로마인들의 비범함을 찾는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벗어나 공화정으로 들어선다. 그러니까 여성의 순결을 우습게 안 우스운 남자로 인해, 팔레이리가 망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2천 수백 년이 지나, 그 여성 직업군인의 순결을 우습게 안 우스운 남자도 망한 것이다. 이 공화정은 BC31년까지 지속되었다. 로마 공화정은 성문헌법의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창안한 공화정 제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다. 미국 헌법은 많은 부분을 로마 공화정 통치제도를 모방하고 있다.

    로마 독립의 계기가 된 루크레티아 사건은, 후일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성 제롬(St. Jerome, 342-420)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여인들을 칭송하고, 루크레티아를 도덕을 위해 희생된 초기 순교자로 보았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 354 – 430)은 정절이란 의지의 문제이지 육체적 문제가 아니라고 하여, 자살은 잘 못된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정절의 표상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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