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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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황금에 미친놈이니 그 소원을 원 없이 들어주어라."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펄펄 끓는 불덩어리가 그의 입에 계속 부어진다. 녹인 금이다. 칠레를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 "뻬드로 데 발디비아"가,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맞이한 최후다. 인간들이 숭앙하는 황금을, 인간에 대한 모욕의 수단으로 사용한 예이다.
“발디비아”의 칠레 원정은 당초 황금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전임자 “알마그로”가 이미 실패 한 것을 보아서다. 알마그로는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도와 잉카를 정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잉카의 남쪽 어딘가에 있을 황금 도시 "엘도라도“ 를 찾아 나섰다. 2만 명에 달하는 그의 원정대는 안데스 고원을 지나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대부분이 죽은 다음에 도착한 곳이 지금의 칠레 산티아고 부근이었다. 그러나 고대했던 금은 없었다. 2만 명의 목숨만 없앤 완벽한 실패였다. 이를 목격한 그의 수하 장교 ”발디비아“는 황금이 아닌, 새로운 땅에 삶의 터전을 마련코자 했다. 그래서 그는, 그 단순한 꿈의 실현을 위해 150명의 병사와 씨앗, 농기구, 종자용 돼지와 함께 새로운 원정길에 나섰다. 1,500킬로에 이르는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을 횡단하여 거의 반년에 걸친 행군 끝에 어느 아름다운 계곡에 도착한다. 그는 그곳을 “산티아고”, 라고 명명한다. 1541년의 일로 지금의 칠레 수도이다. 우리로 치면 조선조 중종 임금 때의 일이다. 그가 스페인 국왕에게 올린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정착하기에 이처럼 좋은 곳은 세상천지에 없습니다. 지형은
평평하고 기후는 상쾌합니다. 겨울은 4개월이고 이 기간 중
초승달이 질 때만 하루 이틀 비가 옵니다. 햇빛이 따듯하니
난로가 필요 없습니다. 여름에도 덥지 않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끝없는 초원과 들판에는 모든 종류의 가축과
농작물을 기르고 경작할 수가 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도 무한정입니다."
이 같은 그의 묘사는 5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체로 같다. 그러나 이 목가적인 땅은 금의 발견으로 곧 죽음의 곳이 된다. 더 많은 금을 캐려면 더 많은 노동력과 토지를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우호적이던 원주민과의 갈등을 불러 온 것이다. 결국 “발디비아”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져, 펄펄 끓는 황금을 목에 넘기고 죽은 것이다. 이 원주민 즉, “아라우칸”족은 여느 아메리칸 인디언들과는 달라, 그 불굴의 저항 정신과 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애국심은 현대 국가의 어느 국민에 못지않다. 그들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민주적인 본능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정복한 백인들이 세운 칠레의 건국이념이 되었고, 영토에 관한 칠레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5백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산티아고를 품고 있는 안데스는 그 길이가 장장 7,000km이다. 베네주엘라에서 시작해서 남미 대륙을 종단하여, 그 끝 “푼타 아레나스”에서 다시 바다 밑으로 들어가 한 바퀴 휘돈 다음 남극대륙과 연결 된다. 그 연결 지점에 우리의 세종기지가 있다. 칠레의 길이가 4,300킬로이니, 안데스 산맥의 반 이상이 이 나라에 걸쳐 있는 것이다. 안데스의 평균 높이는 4천 미터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깊은 계곡들은 유럽인들이 꿈꾸었던 황금도시 "엘도라도"가 꿈이 아닌 현실로 존재한 곳이었고, 그에 따른 비극과 수많은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20세기 전반에 칠레에 깊은 정치적, 사회적 상처를 가져다 준 금속은 구리이다. 칠레의 안데스는 전 세계 구리 수요의 반 정도를 공급하고 있으며, 칠레 경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하자원이다. 또 구리 생산은 금 생산을 동반한다. 구리는 전기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주방 용구를 만드는데 쓰는 정도의 보잘 것 없는 금속이었지만, 전기의 전도성이 확인되면서 그 수요가 급격히 증가 하였다. 더구나 20세기 전반의 3대 전쟁이었던 1, 2차 대전 및 한국전쟁에서 필요했던 폭탄 수요의 증가는 구리 수요의 폭증을 가져온다. 폭탄의 탄피와 신관, 뇌관을 만들 수 있는 구리의 성질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칠레 구리광산의 이익을 독점했다는 점이다. 그 주역은 미국의 록펠러 가문과 구겐하임 가문, 그리고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그들에 의한 칠레와 멕시코의 구리 독점, 자의적인 구리가격 농단, 대금 지급의 전횡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1970년까지는 구리를 입에 올리는 것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는, 구리에 대한 일체의 정보가 일급비밀이었다. 1970년 집권한 아옌데 정부는 구리 산업을 국유화하고, 그 이익을 칠레 국민들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급진적인 좌파 정책으로 군부의 반발을 사, 미국 CIA가 배후 조종한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음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페루의 남쪽 국경선부터 시작되는 “아타카마” 사막은 그 길이가 약 1,000km로서 산티아고 북쪽 500km 지점에서 끝난다. 이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강우량 10mm를 얻으려면 5년이 걸린다. 그 사막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경이 그 자체이다. 천지를 뒤흔드는 몽환경이다. 그 건조한 대기로 인해 상온의 상태에서 미이라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칠레 북부 아리카 민속 박물관은 3백여 구의 이 같은 미이라를 보존하고 있다. 고독한 사막의 여행자가 죽어 미이라화 한 것이다. 이 사막의 건조한 대기는 그 산란 현상이 작아 천문대의 적격지로, 이곳 "라 시야"는 초신성 "1987A"를 찾아낸 천문대이다. 대한민국도 이곳에 천문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 메마른 불모의 땅에도 안데스의 눈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이따금씩 숨을 쉬기 위해 솟아 오른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 물이 있는 곳에 인간이 있게 마련인지, 그 불모의 사막에도 그 언젠가, 무엇인가를 찾아와 살았을 사람들이 남겨 놓은 교회와 십자가의 잔해가 있어 지나는 길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이 아득하고 불모인 아타카마가 은총의 땅이 되고 있다. 이 사막에 전기자동차의 연료원인 하얀 황금, “리티움”이 다량 존재한다. 아타카마의 리티움 광은 사막의 벌판에 드리운 하얀 눈밭과 같다. 그냥 노천광이다. 지하로 흘러든 안데스의 눈 녹은 물에 녹아든 지하의 리티움이 다시 지상으로 흘러 나와, 강렬한 사막의 햇빛으로 수분이 증발된 다음, 하얀 리티움만 남긴다. 지하 리티움이 자연의 힘으로 쉽게 발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경제성 있는 리티움의 반 이상이 - 단일 광산으로 최대의 리티움 광산은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다 - 이 사막에 있다. 이 사막이 바로 21세기의 "엘도라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안데스(Andes)는 케추아어(잉카어)로 "해가 뜨는 동산(Inti)"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동산이 아닌, 신화 속의 영웅들처럼 도열한 안데스의 준봉들을 넘어 온 태양은, 서향의 건조한 산록에 하루 종일 빛을 뿌린다. 당연히 과일이 달다. 여기서 생산된 포도로 빚은 포도주는 신세계 포도주를 대표한다. 프랑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수확과 숙성을 한다. 이런 이유로 향과 알코홀 농도 면에서 프랑스 포도주와 확연한 차이가 남을 알 수가 있다. 또 많은 량이 프랑스로 수출되어, 그곳에서 라벨링이 된다. 무엇보다도 칠레 포도는 19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치명적인 뿌리진딧물 병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동서남북이 사막과 산맥, 한대지역과 망망대해로 둘러싸인 지형이 천연의 방역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4천킬로를 가야 남태평양의 섬들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칠레의 남쪽지역은-이 지역도 물론 안데스의 산줄기이다- 남극 기후대에 속해 춥고, 강우량이 많다. 이 지역은 아직도 전인미답의 삼림지대가 많으며, 대륙의 끝인 "불의 땅" 은 춥고 바람이 세다. 연중 많은 날들이 시속 100km의 살을 에는 바람이 분다. 불의 땅이라는 이름은, “마젤란”이 후일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해협을 지나면서, 대안의 땅에 번쩍이는 불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그 땅에는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인 "후에지안"이 살고 있는데, 소수만이 남아 있어 이들의 보존 문제가 국제적 현안이 되고 있다.
"칠레"는 잉카어 "칠레 마푸"의 줄임말로 “먼 땅”을 뜻한다. 즉, 칠레는 ‘멀다’, 라는 뜻이다. 잉카의 사람들이, 먼 남쪽 어딘가에 있을 “엘도라도”를 그렇게 불렀다. 이 먼 땅에 먼 곳의 인간들이 금을 찾아 왔고, 수많은 비극적 이야기를 낳았던 것이다. 만일 “발디비아”가 황금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억제하고 원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미 움켜쥔 황금덩이와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았음은 물론 역사가 달리 전개 되었을 것이다. 지나친 욕망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C)
도라도(Dorado)는 에스파냐어로 '황금의' 영어로는 The Golden 이라죠. 베토벤님의 엘 도라도를 읽으니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이 황금에 팔려 이 엘 도라도를 찾는 데에 얼마나 혈안이 되었었는지 알 수가 있었어요. 엘 도라도는 스페인어로 '금가루를 칠한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하네요. 온 몸에 황금 가루를 바른 원주민 추장을 일컫는다고.. 칩차 족의 추장은 권위를 세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금가루를 몸에 바른 뒤 구아타비타 호수에서 몸을 씻고 많은 보물을 호수에 던졌다는 그런 전설이 있다고 해요. 이 때문에 호수의 물을 빼고 그 밑에 가라앉은 보물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수 차례 있었지만 실패했고,콜롬비아 정부가 구아타비타 호수를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면서 구아타비타 호수의 보물은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고 하네요. 베토벤님 덕에 저도 공부했어요. 지식에 양식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ReplyDelete네, 께사다(Gonzalo Jimenez de Quesada)라는 스페인 정복자가 전해지는 말에 따라, 황금칠을 한 남자 "El Dorado"를 찾아 나섰지요. 그러나 실체를 찾아내지 못했고, 그의 원정대 5백명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170명에 불과 했습니다. 황금칠을 한 추장은 못 찾아냈지만, 결국 금과 에메랄드가 묻힌 땅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콜럼비아 에메랄드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답니다.
ReplyDelete좋은 글 남겨 주신 님에게 고마운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