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심기
The Corn Planting
by
Sherwood 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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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beethovenno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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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아들을 잃은 슬픔을 내면으로 극복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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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는 농부들이 늘 장을 보러 온다. 우리 마을 생활의 일부이다. 토요일은 장날이다. 장날이면 아이들이 우리 마을 고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노는 일이 많다. 햇치 허신슨도 예외가 아니다. 마을로부터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그의 농장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이 근처에서 가장 관리를 잘하는 좋은 농장 가운데 하나이다. 햇치는 키가 작고 얼굴이 주름진 노인이다. 그의 집은 스크랫치 그레이블 거리에 있고, 그 길을 벗어난 곳에는 초라한 집들이 많이 있다.
햇치의 농장은 눈에 띄었다. 집은 작았지만 언제나 산뜻한 페인트를 칠하고, 과수원의 과일 나무들은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해 줄기의 반 높이까지 석회를 발랐다. 마구간이나 헛간은 수리가 잘 되고, 논밭은 언제나 깨끗한 모습이다.
햇치는 칠십이 다 된 노인이다. 그는 좀 늦게 인생살이를 시작했다. 농장의 원래 소유주였던 그의 부친은 남북전쟁 참전 용사로, 심한 부상을 입고 귀향을 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래 살긴 했지만, 많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햇치는 외동아들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가사를 돌보며 일을 했다. 50가까이 돼서야 마흔 살의 여교사를 아내로 맞아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의 부인도 남편처럼 키가 작다. 결혼 후 그들은 땅에 헌신했다. 입는 옷을 만드는 일에 알맞은 사람이 있듯, 그들은 농사일에 적합한 듯했다. 이 부부에 관한 한 가지 사실은, 세월이 가면 부부는 닮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점점 닮아갔다. 얼굴도 닮아갔다.
그들의 외동아들 윌 허친슨도 키가 작았지만, 몸은 정말 튼튼했다. 우리 마을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우리 마을 야구부 투수였다. 그가 그린 소, 말 돼지는 그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었다. 나는 사람이 소나 말, 돼지, 물고기와 그렇게 닮았다는 사실을 전에는 몰랐었다.
윌은 우리 마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 사촌이 사는 시카고로 가 그곳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마을 출신 한 학생 역시 그곳 학교에 입학했었다. 윌이 입학하기 2년 전 일이다. 할 와이만이라는 이름의 시카고 대학 학생이었다. 그는 졸업 후 돌아와 우리 마을 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일을 맡았다. 할은 윌 허친슨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전에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지만, 시카고에서 만나 운동도 함께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후일 할이 내게 말했다.
할의 말에 따르면, 윌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처럼, 시카고에서도 곧 인기를 얻었다고 했다. 얼굴이 잘 생기다보니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솔직담백함으로 인해 나이 어린 학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했다. 거의 매일 밤 파티에 참가했고, 그림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광고에 이용되어 제법 많은 돈을 받았다고 했다.
고향의 부모님께 돈을 송금하기도 했다. 할이 귀향한 후, 그는 윌의 부모님을 뵈려고 허친슨 농장에 자주 갔다. 오후 시간에 혹은 여름 날 저녁, 걷거나 차를 몰고 가 그들을 만나 자리를 같이 했다. 대화는 언제나 윌에 관해서였다.
할에 따르면, 윌의 부모님이 외동아들에 거는 기대와 아들의 미래에 대한 꿈을 말하는 걸 들으면, 마음이 아플 정도라고 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나 이웃들과 거의 교제가 없었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만했고, 몸이 자그마한 할머니가 준비한 저녁식사를 마치면 다시 들로 나가 일을 한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햇치는 칠십 노인으로 그의 아내는 십년 연하이다. 할이 농장으로 그들을 방문하면, 그들은 즉시 일을 멈추고 다가와 그와 자리를 함께 한다고 했다. 농장에서 함께 일하다가도 길을 가는 할을 보면 서둘러 달려온다고 했다. 그들은 아들 윌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매주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작은 체구의 늙은 어머니가 남편의 뒤를 따라 뛰어오곤 했다. 햇치가 외쳤다.
“와이만 씨, 편지가 왔어요.” 아내가 숨이 턱에 받쳐 똑같은 소리를 외쳤다.
“와이만 씨, 편지가 왔어요.”
품에서 곧 편지를 꺼내 큰소리로 읽었다. 할에 따르면 편지 내용은 언제나 즐거웠다고 했다. 윌이 그림을 덧붙여 편지 내용을 풍부하게 꾸몄다. 시카고 시내 미시간 거리의 차량 행렬이라든가 네거리의 경찰관, 사무실로 급히 들어가는 젊은 속기사 같은 그림이었다. 두 노인은 시카고를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호기심도 나고 방문도 하고 싶었다. 그들은 그림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고,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아들에 대해 할이 기억하고 있는 일들을 어린애들처럼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한 번은 시카고 방문에 관해 몇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햇치가 말했다.
“물론 우리는 갈 수가 없어요.” 그가 다시 말했다.
“어떻게 하면 갈 수가 있지?”
어린 소년 시절부터 그는 그 작은 농장에서 살았다. 그가 젊은 시절 부친은 상이용사였고, 그래서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농장 일이란 제대로 하려면 대단히 힘이 든다. 잡초를 늘 잘라야 하고 가축도 키워야 한다. 햇치가 말했다.
“여행을 하면 우유는 누가 짜지?” 그나 그의 아내 아닌 다른 사람이 우유를 짜면 그의 소가 다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그의 밭을 대신 갈게 하거나, 옥수수 밭일과 마구간 일을 맡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의 농장에 대해 그런 식이었다.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라고 할이 말했다 그는 두 노인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 봄날 밤이었다. 할이 우리 집으로 와 소식을 전했다. 그는 우리 마을 기차역 전화교환원이 전해 준 전보를 들고 왔다. 실제로는 햇치 허친슨에게 가는 전보였지만, 할에게 배달된 것이다. 윌 헛친슨이 죽었다는,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친구들과 파티에 참석을 했고 아마 음주 사고가 아니었을까 한다. 차가 부서지고 윌 허친슨이 죽은 것이다. 전보를 그의 부모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전화교환원으로부터 받은 할이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했다.
내가 차로 가자고 했지만 할은 걸어가자고 했다. 시간을 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갔다. 때는 이른 봄이었고, 말없이 걷던 발걸음, 막 돋아나는 나뭇잎사귀, 우리가 건넌 작은 시내, 달빛이 비친 시냇물의 생생한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는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걸었다.
농장에 도착한 다음 할이 그 집 대문으로 다가섰고, 나는 길에 서 있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 떨어진 농가로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이른 할이, 노크를 하기가 싫은 듯 10분은 머뭇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노크를 했고,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났다. 마치 총소리 같았다. 햇치 노인이 문을 열었고, 할이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마을로부터 오는 길 내내 노부부를 위로할 말을 생각해 두었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고 보니 생각대로 할 수가 없었다. 햇치의 면전에서 모든 걸 정신없이 쏟아 냈다.
그게 전부였다. 햇치 노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문이 열린 채, 달빛 속에 흰색의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할이 말한 다음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할은 그대로 서있었다. 잠시 서있던 그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로 왔다. 그가 신음하듯 말했다.
“으음.” 나도 그를 따라했다.
“으음.” 우리들은 길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의 집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려왔다.
그렇게 십 분인가 반시간인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우리는 조용히 귀만 기울인 채 그 집을 응시했다.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할이 나에게 속삭였다.
“저기 봐.”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집을 나와 헛간으로 가고 있었다. 햇치 노인은 그날 낮에 밭갈이를 했다. 헛간 가까운 밭에 가래질을 끝내고 밭고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두 사람은 헛간으로 들어간 후 곧 나왔다. 그들이 밭을 향해 가자 할과 나는 밭을 지나 창고까지 몰래 기어가 그들이 하는 일을 엿볼 수가 있는 곳에 몸을 숨겼다.
눈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인은 헛간에서 옥수수 파종기를 들고 나왔고, 그의 아내는 옥수수 씨를 담은 자루를 꺼내어, 그 날 밤, 달빛 아래,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 바로 옥수수 씨를 심으려고 했던 것이다.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기괴한 일이었다. 두 노인 모두 잠옷을 입고 있었다. 밭고랑을 따라 씨를 뿌리며 헛간 그늘 속에 서 있는 우리들 가까이 다가와, 고랑 끝 울타리 옆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사위가 적막했다. 내 생애 처음 무엇인가 깨달았는데, 무엇을 느꼈고 깨달았는지 지금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아마 땅과 농부의 관계에 관한 어떤 것 - 땅에 옥수수 씨를 뿌리는 그 두 노인이 흐느낀 침묵의 통곡 같은 그 무엇을 느꼈던 것 같다. 마치 그들은 땅에 죽음을 뿌려 생명을 다시 움트게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행동을 했다. 그들은 또한 무엇인가를 땅에게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들이 밭에 뿌린 생명과 아들의 죽음과의 관계에서 그들이 기대한 것은 말로서 확인할 길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할과 내가 그곳에 서서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게 전부다.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마을로 돌아왔지만, 할의 말에 따르면, 그 다음 날 아침 그들을 만나 아들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하는 문제를 논의 했는데, 두 노인 모두 이상할 만큼 침착하여 슬픔을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날 밤 이후 햇치 허친슨과 그의 아내는 틀림없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할은, 두 노인이 무엇인가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할이 이런 말을 했다.
“두 노인은 농장이 있고 또 읽을 수 있는 윌의 편지들을 아직 품에 가지고 있거든.” (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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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앤더슨(Sherwood Anderson; 1876-1941)은 오하이오 주 캠든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기 미국의 안톤 체홉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글재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그의 아버지는 가공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토해내는 떠돌이 이야기꾼이었다. 앤더슨은 학교 교육을 받은 일이 없지만, 그의 인생 체험을 통해 글을 썼다. 미-스페인 전쟁 기간 중 육군에 입대하여 복무했다. 제대 후 공장 직공으로 일하다가, 유명한 화가인 동생 칼의 소개로, 시카고에서 필경사로 취직을 했다. 그는 자전적 첫 소설 “와인스버그, 오하이오”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명성을 얻었지만 생활은 안정되지 않았다. 도시를 전전하고 이혼을 반복했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처받기 쉬운 보통 사람들을 그려내는데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옥수수 심기”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영문학의 바이블’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글을 베토벤님의 번역으로 읽으니 얼마나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다가오는지 제가 그 작품 속으로 저벅저벅 들어가고 있습니다.원본을 한국적인 언어로 너무 잘 표현해 주시는 베토벤님은 그 어떤 번역가 보다 단연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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