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쉬맨
Bus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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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칭찬을 할 때도, 받을 때도 있다. 칭찬을 받으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은, 칭찬의 긍정적인 면일 것이다. 그러나 칭찬의 부정적인 면도 생각할 수 있다. 성인이야 칭찬을 받는다 해도 가치관이나 세상사를 판단하는 마음의 기준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바뀐다면 그는, 성인이 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 사람은 다르다. 오랜 세월 계속 칭찬을 받으면, 그의 인격 형성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해 칭찬 속에서 자라는 경우가 그 예일 것이다. 불원간 그는 어려운 시험을 쉽게 통과하여 소위 출세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이고, 이제 그에 대한 칭찬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만이라는 성채에 갇혀 성 밖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모르는 오만한 성주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자신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들보다 마음 아픈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지식 습득은 오만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란 걸 모르는 것이다. 전개되는 사회 현상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인물들을 관찰할 수가 있다. 이러한 관찰은, 한 가정의 같은 형제간에서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 가정의 평화가 깨지는 것이다.
사실 어린 나이에 공부에 몰두한다는 건, 그리 칭찬 받을 일인가는 의문이 든다. 자연과 놀이에 친숙해야 할 나이에, 입신 양명의 꿈을 안고 책상머리에 앉아 수년간을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어찌 애달프다 하지 않으리오, 또 그 나이에 그렇게 안 한다고 해서, 앞날이 어두워진다고 할 수도 없다. 물론 칭찬 속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 오만해진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체로 그러한 경향이 있고, 또 혼란스러운 지난 수년 이래의 상황을 보면, 이와 관련한 그들에 대해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이겠다. 내용이야 알 수 없지만 그 싸움은 맹렬하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피가 흥건한 싸움이다. 결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오만의 싸움이다.
역사를 보면, 왕정이나 전제정권은 백성을 무시한 오만의 결정체다. 오만의 결과는 언제나 비극적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다음의 예가 있다.
‘...수준이 다른 두 생명체의 결합은, 두 생명체를 평균한 수준의 후손을 생산한다. 즉, 부모 중 높은 쪽의 수준을 따르지만, 그래도 따른 쪽 부 또는 모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수준이 다른 짝짓기는 더 높은 수준의 생명체를 유지하려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 이 법칙을 위한 전제조건은 열등체와 우등체의 결합이 아니라, 우등체의 열등체에 대한 완전한 승리에 있다. 우등체가 우위를 차지해야 하고 열등체와의 결합은 용납할 수 없다. 열등체와의 결합은 우등체의 위대성을 희생하는 것이다. 열등체는 이를 잔혹하다고 할 것이지만, 그는 다만 약자이며 한계가 있는 자이다.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유기체의 향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아돌프 히틀러가 그의 책 “나의 투쟁"에서 진술한 말이다. 타 민족을 부정하고,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이다. 니체의 초인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던가? 니체의 본뜻이 그랬을까...? 대충 읽어 보아도, 여기저기 납득하기 힘든 오만한 내용이 많다. 이 오만함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오지에 사는 종족인 부쉬맨들에게는 독특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다. 이 행사는 19세기초 영국 선교사들이 츠와나(Tswana)종족-지금의 Botswana공화국-에게 선교를 위해 필요했던 행사이다. 크리스마스 쇠고기 파티이다. 이 행사는 부쉬맨 종족에도 전해져, 그들은 “백인들의 대장 생일” 즉 크리스마스에, 그에 걸 맞는 커다란 소를 잡아 잔치를 여는 것이다. 부쉬맨들은 쇠고기를 먹고 설사를 해야 좋은 축제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기름기가 없어 설사를 하지 않으면 좋은 쇠고기가 아니라고 본다.
리(Richard B. Lee 1937~)는 부쉬맨을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어느 해 그는, 부쉬맨을 위한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600kg 상당의 커다란 소를 샀다.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소였고, 부족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기름지고 살진 소였다. 그는 부쉬맨들이 만족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부쉬맨들은 오히려 모욕적인 언사로 그 소를 폄하한다. 그렇게 작은 소를 가지고는 만족할 만한 잔치를 치룰 수 없다고 했다. 소가 작고 뼈만 남아 기름기도 없는, 볼 품 없는 소라는 것이다. 당황한 리는 다른 소를 찾았지만, 그가 이미 사들인 소가 가장 큰 소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 소를 잡아 잔치를 치렀다. 모두들 배불리 먹고 잔치는 성공리에 끝이 났다. 잔치가 끝난 후 리는 화도 나고 이해할 수도 없어 추장을 만났다. 추장이 말한다.
“오만 때문이지요. 우리는 아무리 좋은 사냥을 해오는 젊은이라도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칭찬을 하면 그는 자신이 으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되지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종이나 부하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오만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엔가 이 오만은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지요. 그렇게 해서 공동체를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훌륭한 사냥꾼도 칭찬을 하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겸손하고 의젓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언필칭 문명사회에서조차 들어보기 힘든 문명적인 말이 아닐까?
이글을 읽은 이에게 아래의 음악을......
https://www.youtube.com/watch?v=yahbGooZ8cY&ab_channel=Tessa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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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영웅치고 독재자로 변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독재자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고요. 대기업의 소유주나 뛰어난 지식인들도 모두 칭찬만 받다보니 자기의 부와 지위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기 잘나서 잘 살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며 남을 천시합니다. 계급이란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칭찬이 기른 오만이 차별을 당연시하게 만들지요. 그러니 오만과 자만심을 미리 방지해줄 수 없다면, 우리는 영웅을 없애야 합니다.
ReplyDelete동양이나 기타 토착 민족 등의 비서구권에서는 겸손을 늘 소중한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오만과 지배를 견제하면서 공존과 기여를 아름답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철저히 오만과 차별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소위 능력주의란 인간만이 지닌 냉혹한 정글의 법칙입니다.
달콤한 칭찬이 끔찍한 착각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