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보수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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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라는 두 어휘가 우리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우리에게 낯설었던 이 단어들이 어느 날 불현 듯 우리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이 두 단어를 두고 시민들이 편 갈라 싸운다. 어느 저명한 법률가의 글에서 보수 즉 우파는 “질서 즉 법의 편”으로 “옳은 쪽(오른쪽이 아닌)”이며 “원칙을 지키고” "반듯하고 선량"하면서 "술수를 부리지 않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 인용문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러한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I. 보수란Conservatism?
역사적으로 보수주의는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로” 정의되며 한 사회가 지금까지 보존해온 전통과 관습을 가장 보배로운 자산으로 본다. 17세기 영국의 정치가 캐리(Lucius Cary, 1610~1643)는 “멀쩡한 물건은 고칠 필요가 없다” 라고 했는데, 이는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을 표현한 것으로 위험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말하고 있다. 보수주의는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 변경은 사회를 더 낭패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허황된 약속보다는 고칠 필요가 없는 과거에 대한 확고한 신뢰, 안정된 사회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주의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에 반대하고 “기왕에 해본 것”에 집착한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 사회의 공동 이익에 부합해온 멀쩡한 제도를 버리고, 그 유용성이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법이나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관점이다. 프랑스 혁명에 반대한 보수주의 아버지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그의 논문 “프랑스 혁명 회고록”에서 “오직 과거의 법과 전통만이 우리의 자유를 지킨다” 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을 반대하는 반동적인 성격을 띌 수밖에 없었다. 문학상 나타나는 보수주의의 상징적 인물이 바로 돈키호테이다. 돈키호테야말로 개혁주의자인 그의 부하 산초 판자의 눈에 비친, 변화를 모르는 상징적 인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려면 그 근대적 시발점인 토리(Tory)와 휘그(Whig)라는 어휘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토리는 영국 보수당의 전신, 휘그는 노동당의 전신이다. 최초의 토리는 크롬웰 혁명(1649) 당시 의회와의 싸움에서 왕을 지지한 왕당파들이었다. 즉 구질서 지지자들이었다. 혁명의 주도자였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은 청교도로서, 국왕을 수장으로 하는 영국 성공회 지배체제의 폐지를 요구한 인물이다. 그의 요구는 왕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그 복잡한 내용이야 어찌됐던, 크롬웰 혁명은 챨스I세를 중심으로 한 성공회 중심의 구질서와 개혁을 원하는 신질서 청교도 간 싸움이었다. 즉 앞에서 말한 양심, 정직, 선량, 옮음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사건이었다. 크롬웰 혁명으로 처형된 챨스I세를 이어 그의 아들인 챨스II세가 왕위에 오름으로써(1658)왕정이 복고되었다. 그 후 1678년 챨스II세의 동생인 요크 공 제임스가 왕위계승권이(영국, 스콧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으로서)있느냐의 여부를 놓고 휘그와 토리가 대립한 적이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세력인 휘그는, 제임스가 로만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그의 왕위 계승을 반대했다. 휘그는 제임스가 국왕이 되면 프로테스탄트에게는 물론, 자유권, 재산권에 심각한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상속에 의한 절대군주제가 아니라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것이다. 이에 반해 토리는 제임스를 적극 지지했다. 이 싸움 역시 각자의 이익을 가운데 둔 대결이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 후 명예혁명 당시(1688) 휘그는 혁명의 주도 세력으로 제임스II세를 쓰러뜨린다. 명예혁명의 결과 제정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절대군주의 권한 제한, 의회의 권한 강화와 의회 내 발언의 자유, 정기적인 의회의원의 선출, 국왕에 대한 청원권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 권리장전은 마그나 카르타(1215), 인신구속법(1679), 권리청원(1628), 의회법(1911), 인권법(1998), 평등법(2010)과 함께 영국 불문헌법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휘그는 민주주의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과 공헌을 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보수 세력인 토리는 18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의회주의를 반대하고 왕정, 로만 가톨릭, 그리고 전통적인 정치시스템을 지지했다.
토리와 휘그는 초기 미국에 그대로 이전이 되어 미국 독립전쟁에서 휘그는 독립을 위하여 싸웠다. 조지 워싱턴, 제임스 메디슨, 존 애담스, 앤드루 잭슨 등이 대표적인 아메리칸 휘그이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의 토리는 독립을 반대하고 기존 질서인 영국을 위하여 싸운 사람들이다. 독립 후 휘그는 정치적 정당으로서 도로, 철도, 운하 건설 등 새 나라 건설에 힘썼다. 반면에 아메리칸 토리는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편에서 싸웠던 사실을 부끄러워하여 많은 사람들이 휘그로 전향함에 따라 하루아침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미국에 보수당이라는 명칭의 정당이 없는 이유이다. 아메리칸 휘그는 현 미국 민주당의 전신이다.
미국 독립(1776) 직후, 그러니까 명예혁명이 있은 후 100년이 지난 다음 있었던 프랑스 대혁명(1789)은 구질서(Ancien Régime)를 청산한 사건이었다. 구질서란 왕정, 귀족제도, 로만 가톨릭, 봉건제도 등에 집착한 가치체계이다. 우리로 치면 조선왕정, 양반제도, 유교 등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혁명으로 앙샹 레짐이 붕괴되었음은 물론이다. 혁명 당시 토리와 휘그 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그대로 토리와 휘그와의 싸움이다. 종교적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은 구질서인 로만 가톨릭과 신질서인 프로테스탄트 간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혁명파 모두가 개신교도는 아니었지만, 혁명 주도자 로베스 삐에르는 교조적인 프로테스탄트였다. 이처럼 신.구 질서 간의 싸움이었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반듯하고 선량하며 정직한” 구질서와 그렇지 않은 신질서 간 다툼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또 당시 프랑스 국민회의(National Assembly)에서 의장의 오른 쪽에는 구질서인 왕당파, 왼쪽에는 개혁파, 가운데에는 온건파가 자리한 것이 지금의 좌.우 그리고 중도로 불리게 된 단초였다. 이처럼 자리에 앉다보니 좌우로 불리게 된 것이지 옳고 그름이 좌우를 가름하는 기준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처럼 보수주의는 토리와 휘그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로 이 보수주의(Conservatism) 라는 용어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34년 영국의 토리당을 보수당(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로 개명하면서 부터이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산업화에 따른 자유주의적 개혁과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보수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백성에 대한 통제를 가치체계로 하는 보수주의가 개혁과 자유를 싫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 개혁이 계속되었고, 특히 보통선거 제도의 확립으로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확대됨에 따라, 위협을 느낀 보수주의는 이에 온 힘을 기울여 저항한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확대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정책에 따른 시민의 권리 확대와 이에 따른 복지 확대는 자연히 재정수요의 확대를 초래하면서 재정의 낭비를 불러온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날드 레이건 정부에 의한 자유경쟁시장, 규제철폐, 작은 정부 등 신자유주의적인 아젠다들은, 19세기식 완전 경쟁에 토대한 100% 고전주의적 자본주의로 회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간의 이 같은 낭비적인 복지정책을 극복하기 위한 고전적인 보수주의 정책이었다고 할 수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불간섭이라는 레이거노믹스는, 1960년대를 휩쓸었던 젊은 세대의 반문화 - 그때까지의 전통 문화에 대한 저항 - 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II. 진보란Progress?
진보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인간 복지의 개선”으로 정의된다. 진보주의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등 제 분야의 전진Advance이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시킨다고 본다. 인류는 긴 역사를 통하여 삶의 조건들을 개선시켜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여 나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복지란 무엇인가? 이에는 가치일원론과 다원론이 있다. 일원론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다원론은 여러 가치(인간의 행복에 필요한)의 총합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복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임으로, 그냥 "사회생활 환경을 개선" 하는 정도로 보는 견해가 있다.
진보에 관한 이론적인 학설은 18세기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다. 이 시기는 계몽주의 시대(30년 전쟁이 끝난 1648부터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까지)로서, 인류의 행복(복지)은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닌 인류스스로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의 진보사상가들은 역사발전의 근본 법칙들을 어떤 철학적 깊은 사념이 아닌 보편적인(일상적인) 사회현상에서 찾았고, 이 법칙들을 미래를 예측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보았다. 많은 진보사상가들의 생각은 모두 이 같은 보편적인 역사관에 토대하고 있다. 흄(David Hume, 1711 ~ 1776), 애담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튀르고(Anne Robert Jacques Turgot, 1727~1781), 헤겔(G.W.F. Hegel, 1770~1831), 꽁트(Auguste Comte, 1798~1857),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맑스(Karl H. Marx, 1818~1883),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이 지면에 모두 열거할 수 없음으로, 튀르고와 애담 스미스에 대해서만 약술한다.
영국 경험철학의 영향을 받은 튀르고는, 모든 인간의 지식은 경험에 근거한다고 했다. 튀르고는, 과학적인 진보는 수학과 기술의 진보에 의존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같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복지에 대해 적극적인 정의를 내리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과학적 발견과 정치적 자유가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다. 또 정치제도가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과학은 천재들에 의해 발전하지만, 천재들은 정치제도에 의해 양성되기 때문에 정치제도는 과학의 진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제도가 과학의 발전을 고양 시키거나 억제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예컨대 과학적 천재들에게 독재체재는 최악이며, 그들을 양성하는 건 민주공화정이라고 했다. 자유스러운 정치제도만이 과학적 발견의 본질적인 환경이라고 했다. 또한 과학적 지식의 발전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온다고 했다. 이 주장은,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수상자가 대부분 서구 과학자들이라는 사실로 증명된다.
애담스미스는 스코트랜드 계몽주의 경제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이론이 가져온 부는, 20세기 진보 활동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대혁명으로 획득된 시민의 정치적 자유는, 마땅히 경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경제 활동에 국가의 간섭이 없는 자유방임laissez-faire을 주장- 이 주장은 후일 보수주의 노선이 된다-한 것이다. 정부의 간섭이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야말로 도덕적 물질적 진보를 가져오며, 한 나라의 공동선을 위해 최선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하는 야경국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완전경쟁에 토대한 애담스미스의 고전주의적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빅토리언 자본주의(영국 빅토리아 여왕 통치 기간(1837~1901))이다.
이제 완전 경쟁에 토대한 산업화와 자유무역의 확대에 따라 거대한 부가 생성된다. 능력 있는 사람이 아무런 제약없이 모든 걸 차지하는 사회가 실현된 것이다. 그 결과 통제를 벗어난 독점적인 기업 행태, 근로자와 자본가의 격렬한 대립, 빈부격차가 초래된다. 국가의 통제가 전혀 없는 자유방임에 의한 자본주의는,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과 근로계층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가져온 것이다. 챨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탐욕의 상징 스크루지는, 바로 자유방임적인 영국 빅토리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제활동의 자유방임에 기인한 이와 같은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의 붕괴는, 자유방임적인 사상에 극적인 반전을 불러온다. 이처럼 통제 받지 않은 자본이 초래한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신자유주의자들(New Liberals; 아래 주1,2 참조) 또는 신 복지(New welfare)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개혁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바로잡으려고 한 것이다. 자유주의 본질적인 목표는 그대로 둔 채, 그 방법을 바꾼 것이다. 즉, "진보Progress"의 등장이다. 그러니까 현대 정치철학으로서의 진보의 등장은 19세기 산업혁명이 가져온, 탐욕적인 빅토리언 자본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빈곤, 폭력, 기업의 탐욕, 인종차별 같은 문제는 “자유시장이 아닌 정부가 개입,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또한 정부의 권한 행사는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시민의 복지를 증진 시킬 때만이 정당하다고 했다.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 정부의 개입"이라는, 진보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라는 어휘는 꽁트(Auguste Comte, 1798~1857. 프랑스 실증주의 철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였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소위 "진보의 시기(1890s ~ 대공황까지)" 에 미국에서 광범위한 진보적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이 어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 시기 미국은 진보운동의 근원지로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와 사회복지 확대가 핵심이었다. 사회 각 분야의 효율성이 강조되었고 부패와 낭비의 추방, 노동자 대우 개선, 어린이 노동법 제정, 최저임금, 주당 근로시간 제한, 여성 투표권, 소득에 따른 소득세율 차등 적용 등을 이루어냈다. 데오도르 루즈벨트(1858~1919) 대통령은 진보주의자로서 이 시대의 주요한 개혁을 이끈 인물이었고, 32대 대통령 후랭크린 루즈벨트(Franklin D.Roosevelt, 1882~1945)의 “뉴딜정책”은 경제에 정부가 개입한 대표적인 진보주의 정책이었다. 그의 뉴딜정책이 가져다 준 1930년대 사회복지의 확대는, 자유방임에 반대한 신자유주의자(New Liberals)사상이 달성한 가장 성공적인 사회복지 정책이었다. 대공황 직후의 1930년대와 2차대전이 있었던 1940년대는 미국 진보운동의 대약진 시대였다. 그가 주도한 뉴딜연대(New Deal Coaliation)는 20세기 중반 미국식 자유주의로 정의되고 있다. 그 후 대내외 정책에서도 미국의 진보적인 역할은 계속되었고 이것이 바로 20세기 미국정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보수는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공산주의나 파시즘으로 보고 비판했다. 하이에크( 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도 국가가 개입, 계획한 뉴딜은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비판적이었다. 야경국가를 최선으로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 관점에서는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란 어불성설이었다. 다시 말해 경제개발5개년계획 같은 국가경제정책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이제 우리는 진보, 보수를 가름하는 갈림길은 경제, 사회 활동에 "국가의 개입" 여부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실 정치에서 보면 100%개입은 공산주의(극좌 사회주의), 0%개입은 빅토리언 자본주의이다. 이 두 제도는 이미 역사의 심판을 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정부의 개입 형식과 정도에 따라 40개 이상의 사회주의가 있다(아래 주3참조). 기독교 사회주의, 불교사회주의, 유대사회주의, 이슬람사회주의,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Fabian Socialism(아래 주4참조).....등, 여러 스펙트럼의 사회주의가 등장하는 것이다. 수정자본주도 일종의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 인류가 그만큼 삶의 조건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21세기인 지금, 정부가 경제 활동에 개입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20세기 미국 진보의 등장은 19세기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방종에 대한 반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미국의 경제 침체와 인프레이션 및 재정적자 확대는 이 같은 진보적인 정책에 회의를 가져오게 된다. 진보적인 정책으로 초래된 경제적 혼란으로, 복지정책과 거대정부(경제, 사회 정책에 개입하는 정부의 거대 권한)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영국과 미국에서는 새로운 집권 세력인 "신 우익(New Right)" 즉,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등장한다. 이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자유시장원리의 부활을 뜻한 것으로, 100%는 아니지만 19세기 자유방임주의의 20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역인 마가렛 보수당 정권과 레이건 행정부에 의한 규제철폐와 정부지출의 축소 등 보수적 정책들은, 1920년대 이래 처음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정부의 복지제도 개혁, 거대 정부가 끝났다는 그의 선언은, 20세기 국가주의(경제, 사회 정책에 국가의 간섭)에 저항한 세력에 편을 들어 준 선언이었다. 이 저항은 국제적인 대규모 운동으로 번져, 데이빗 카메론 정부의 자율적인 거대 사회(Big Society),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New Labor)정책 또한 20세기 국가주의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경제에 대한 불간섭 정책은 현재의 빈부 격차를 확대시켰다는 비난을 듣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상이 개략적인 보수와 진보에 대한 설명이다(C).
Writte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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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 글에서는 진보와 신자유주의자(New Liberals)가 혼용되고 있다. 진보주의와 이 신자유주의자 사상과는 역사적으로 같은 길을 걸어 왔고 이데올로기 면에서도 유사하나, 또 약간의 노선 차이가 있다. 이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나,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2) 신자유주의자(New Liberals)는 19세기로부터 20세기에 걸쳐 영국에서 생성된 일단의 사상가들로 자유방임적인 자유주의에 반대하고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간섭을 옹호한 사람들로 지금은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라고도 칭한다.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와는 정 반대의 개념이다.
` 3) Dictionary of Socialism by Angelo Rapopport
4) 페비언 사회주의는 영국 노동당과 영연방 국가들의 노선이기도 하고 스칸디나비안 국가들의 이념이며, 세계1등 민주국가 코스타리카를 포함한 몇몇 라틴 국가들이 페비언주의를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싱가폴의 이광요 등도 페비언 소시알리스트로 분류되고 있다. 만일 대한민국이 복지 국가를 목표로 한다면, 스칸디나비안식 페비언 소시알리즘이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보수와 진보에 관한 스탠포드 대학 논문.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rogress/
https://plato.stanford.edu/entries/conservatism/
보수는 자유의 가치관을 우선하고, 진보는 평등의 가치관을 중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경제를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래서 보수는 자유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지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시장을 자율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진보는 일반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하죠. 또 보수는 대체적으로 성장을, 진보는 분배를 우선합니다.
ReplyDelete비슷한 맥락에서 보수는 개인의 가치를, 진보는 집단의 가치를 더 중시한다 볼 수 있죠. 성과주의/개인주의/사유재산권은 보수가 지지하는 가치이고, 분배주의/집단주의/공유는 진보적 가치에 가깝다 볼 수 있습니다. 보수정당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진보정당은 평등을 실현할 정책을 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생각됩니다. 물론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개념이죠. 진보적 가치를 배제하는 보수나, 보수적 가치를 무시하는 진보는 편향적인 이념일 뿐입니다. 보수=우익, 진보=좌익이라는 구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보수든 진보든 개혁과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면서 경쟁해왔으니까요.
ReplyDelete보수와 진보의 다른 점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 베토벤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지아님, 댓글 고맙습니다.
ReplyDelete싸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