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by
Ernest Hemingway
<Synopsis>
for More Readings;
www.beethovenno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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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투쟁 끝에 얻는 영광. 삶과 죽음. 위대함의 원천인 자존심.
등장인물:
산티아고 Santiago;
소설의 주인공. 불운한 쿠바 어부. 기울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못 잡는 인물. 겸손하지만 자신의 무능력을 정당화 하는 인물. 3일간의 투쟁 끝에 잡은 커다란 고기를 잃는 인물. 그가 잃은 고기가 그의 위대한 승리를 뜻하는 이율배반적인 사건의 주인공.
청새치 The marlin;
산티아고의 낚시에 걸리는 길이 18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물고기. 낚시 줄을 통해 산티아고가 동지애를 느끼는 물고기. 상어에 의해 육신이 찢기고 산티아고도 좌절을 느끼게 함. 산티아고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암시하는 물고기.
마놀린 Manolin;
사춘기 소년. 산티아고의 도제겸 보조자. 부모님의 조언으로 산티아고의 배를 떠나 다른 배를 타는 소년. 가난한 노인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인정 많은 소년.
디마지오 Joe DiMaggio;
소설에는 이름만 등장하는 인물. 뉴욕 양키즈 야구 선수. 그 힘과 책임감으로 산티아고의 숭배 대상인 인물.
페드리코 Pedrico;
소설에서는 이름만 등장하는 산티아고 마을의 창고 주인. 산티아고에게 야구 경기에 관한 신문을 제공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마르틴 Martin;
산티아고가 사는 마을의 카페 주인. 산티아고의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마놀린이 자주 찾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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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그는 걸프 만에서 소형보트에 의지하여 홀로 고기를 잡는 노인으로, 지난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못 잡고 있었다. 처음 40일 동안은 한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물고기를 못 잡은 채 40일이 지난 후 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그 노인은 이제 결국 불운한 사람이 분명함으로 배를 갈아타야 할 것이라고 했고, 부모의 명령에 따라 소년은, 출항 첫 주에 세 마리 좋은 생선을 잡은 배로 옮겼다.
텅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을 보면 소년은 마음이 슬펐고, 그래서 언제나 그에게로 다가가 엉킨 줄, 갈고리, 작살, 그리고 돛대 주변에 접혀 있는 돛 운반을 도왔다. 돛은 밀가루 포대를 이어 만든 것으로, 그 접혀 있는 모습은 영원한 패배의 깃발처럼 보였다. 노인은 가냘프고 여윈 몸으로 목 뒤에 깊은 주름이 져있었다. 볼에는 열대의 바다로부터 반사된 햇빛으로 인한 양성피부암의 갈색 검버섯이 있었다. 그 검버섯은 양쪽 볼을 타고 내려가며 피어 있었고, 손에는 줄에 걸린 커다란 물고기를 다루다가 생긴, 깊게 주름진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 새로운 상처들이 아니었다. 물고기가 없는 사막의 침식지대처럼 아주 오래된 상처였다. 노인의 모든 것이 오래되었지만 눈만은 예외로, 바다와 같은 푸른 눈은 불굴의 기운찬 정기가 흐르고 있었다.
배가 정박한 곳으로부터 둑 위로 오르며, 소년이 노인을 불렀다. 돈을 번 후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노인은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소년은 노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노인이 괜찮다고, 그냥 운수 좋은 그 배에 계속 있으라고 했다. 이에 소년은 노인에게 87일간의 빈손 끝에, 3주 동안 매일 큰 고기를 잡았던 일을 잊지 말라고 했다.
어구를 옮기며 소년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야 하는 게 괴롭다고 했다. 아버지는 신념이 부족하고 따라서 배를 갈아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노인과 소년은 맥주를 마시기 위해 바닷가 테라스 카페로 갔고, 그곳에서 만난 어부들이 노인을 놀렸다. 그러나 노인은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고기잡이를 했던 지난 수년간의 추억을 이야기했고, 소년은 노인에게 신선한 낚시 미끼를 공급해주겠다고 했다. 산티아고 노인은 고맙다고 했다. 노인은 다음 날, 보다 먼 바다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마놀린이었다.
마놀린과 산티아고 노인은, 노인의 집으로 낚시도구를 옮겼다. 침대와 식탁, 의자, 그리고 부엌만 있는 초라한 오두막집이었다. 벽에는 두 점의 그림이 있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성스러운 심장 또 다른 하나는 쿠바 수호성인인 성처녀 코브레였다. 아내의 유품도 있었다. 걸어 놓았던 아내의 사진은, 이제 내려놓았다고 했다. 아내의 사진을 보면 더욱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년이 무슨 음식을 먹느냐고 물었고, 노인은 “생선을 얹은, 샤프론으로 물들인 노란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먹어보겠느냐고 했고, 소년은 사양을 했다. 소년이 화덕에 불을 지필까 물었으나 노인은 밥은 나중에 짓겠으니 그냥 두라고 했다. 실제로는 양식이 없었던 것이다.
야구에 관한 신문기사를 좋아하는 산티아고 노인이 침대 밑에서 신문을 꺼냈다. 페드리코가 준 신문이라고 했다. 마놀린이 밖으로 나아가, 미끼용 생선과 먹을거리를 가져왔다. 카페 주인 마르틴이 준 음식이다. 마르틴의 사려 깊은 마음씨에 노인이 감동을 했고, 언젠가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산티아고는 어부를 아버지로 둔 “위대한 선수 디마지오”의 찬미자였다. 위대한 야구선수들과 야구 매니저들에 관한 대화를 나눈 후 마놀린은, 훌륭한 어부들이 있기는 하지만, 산티아고야말로 단 한 사람의 위대한 어부라고 했다. 소년이 떠나자 노인은 단잠이 들었고, 아프리카 해변에서 노는 사자들 꿈을 꾸었다. 그가 어린 시절 배에서 바라보았던 광경이었다.
이틀째:
다음 날 해뜨기 전 산티아고 노인은 마놀린의 집으로 가, 그를 깨웠다. 두 사람은 다시 산티아고의 오두막집으로 되돌아 가, 어구를 보트에 실었다. 그런 다음 커피에 가루우유를 타서 마셨다. 노인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노인은 그 커피가 하루 끼니라는 걸, 그걸 마셔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는 먹는 일이 귀찮았고, 점심을 챙겨 보트에 오른 일이 없었다. 물 한 병만 뱃머리에 실었고, 그것이 그날 필요한 전부였다. 노인과 소년은 해변에서, 서로의 행운을 빌며 작별했다.
노인은 천천히 노를 저어, 걸프 만의 해류를 따라 해안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는 날치가 뛰어오르며 나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로 생각되었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작고 연약한 새들을, 가엾은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바다를, 자신의 행동을 통제 못하는 여인으로 여겼다. 그는 미끼가 달린,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낚시 줄을 드리웠고 그 줄들이 해류를 따라 떠내려가지 않도록 노를 저었다.
날이 샜다. 해안으로부터 배는 점점 멀어졌고, 노인은 자신의 세계도 점점 멀어진다는 걸 알았다. 날치가 날면, 뒤이어 돌고래도 날았다. 물새들도 머리 위를 날거나 곤두박질을 했다. 걸프 만에서 발견되는, 포르투갈 전사의 군복 색깔 같은 기분 나쁜 갈색의 사르가소Sargasso 해초도 보였고 해파리처럼 투명하고 실처럼 가느다란 해초 사이를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도 있었다. 노를 저어 점점 더 멀어지면서 노인은, 물고기를 잡는 새들을 물길 안내자로 삼았다. 곧 낚시 줄 하나가 팽팽해졌다. 그가 탄성을 질렀다. 10파운드짜리 삼치였다. 좋은 미끼 깜이었다. 그는 언제부터 혼자 독백을 하는 버릇이 생겼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알 수도 없었다. 만일 중얼거리는 걸 다른 어부들이 듣는다면, 사실과는 달리 자신을 미친놈으로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노인은 너무 멀리 왔다는 걸 알았고, 해안가의 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6백 피트 길이의 줄에 매단 부표가 갑자기 갈아 앉았다. 큰 고기가 낚시 줄을 건드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청새치였다. 잠시 미끼를 가지고 놀더니, 마침내 물고기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보트도 딸려갔다. 산티아고 노인이 온힘을 다해 줄을 당겼으나 허사였다. 그 물고기에 끌려 더 먼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육지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물고기가 하루 종일 보트를 잡아당겼고, 노인은 필요한 경우 줄을 더 풀기 위해 손으로 잡은 줄을 어깨에 걸어 버티고 있었다. 물고기가 보트를 끌고 가면서 그 싸움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멀리 하바나의 불빛이 사라져갔고, 이는 보트가 어느 때보다도 먼 곳으로 와 있다는 걸 뜻했다. 소년과 함께 있었더라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때 가까이 돌고래 한 쌍이 즐겁게 노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돌고래도 낚시를 문 그 물고기도, 모두 사람들의 형제라는 생각에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 쌍의 청새치 중 한 마리를 잡은 걸 기억했다. 수컷은 언제나 암컷이 먼저 먹이를 먹도록 양보하기 때문에, 미끼를 문 암놈 옆에서 슬퍼하는 듯한 모습의 수놈을 보았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비록 슬프기는 했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단호했다. 청새치가 가는 대로 끝까지 쫓아가 마침내 잡아 올리겠다는 생각이었다.
날이 샜다. 청새치는 이전보다 얕은 곳을 헤엄쳤으나 여전히 지칠 줄 몰랐다. 낚시 줄을 더 팽팽하게 당기면 끊어질 수도 있고, 그러면 물고기가 도망칠 수도 있었으므로 노인은 낚시 줄을 더 당길 수가 없었다. 그 청새치가 물 위로 튀어 오르기를 바랐다. 그러면 부레에 공기가 찰 것이고, 따라서 물속 깊이 헤엄칠 수 없을 것임으로 끌어내기 쉬울 것이라는 게 노인의 희망이었다. 노란 해초가 낚시 줄에 걸려 물고기의 속도를 줄여 주었다. 산티아고 노인은 낚시 줄을 잡고 있는 일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청새치에게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했지만 또한 그날 해가지기 전에 죽여 버릴 것이라는 말도 했다.
사흘째:
지친 듯 보이는 작은 솔새가 한 마리 날아와 팽팽한 낚시 줄 위에 앉았다. 산티아고와 미끼를 문 청새치를 연결하는 줄이다. 아마 태어나 처음 나는 새 같았다. 육지에 가까워지면 독수리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거 같았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새라는 걸 안 노인은 그 새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육지에 닿을 때까지 앉아 쉬라고 했다. 바로 그때 청새치가 물위로 솟아 거의 배가 뒤집힐 뻔했고, 새는 날아갔다. 그의 손은 낚시 줄에 다쳐 피가 흘렀다. 힘을 아껴야 했음으로 노인은, 미끼로 사용할 예정이었던 전 날 잡은 삼치를 먹었다. 왼손은 부상을 입은 데다 낚시 줄을 당기고 있었으므로 오른손으로 잘라 먹었다. 삼치를 먹으며, 형제애를 느낀 청새치에게도 먹이를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련이 일어난 손이 풀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산티아고는 광활한 바다를 보며 고독감을 느꼈다. 오리 떼가 머리 위를 날아갔고, 바다에서 혼자 있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 잡고 있던 낚시 줄이 느슨해졌고, 이는 낚시를 문 물고기가 수면으로 오른다는 걸 뜻했다. 그 순간 청새치가 물위로 멋지게 솟아올랐고, 산티아고는 이제까지 보아 온 어느 것보다 크며, 자신의 보트보다 2피트 정도 더 큰 놈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그 청새치를 “위대한 자”로 부르겠다며, 그 물고기가 스스로의 힘을 모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그 물고기의 속도에 맞추어 줄을 풀었다. 정오가 되어서야 손의 경련이 풀렸고, 신앙심 깊은 신도는 아니지만 성모 마리아를 열 번, 하나님 아버지를 열 번 외쳤다. 그런 다음, 그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성녀 코브레(쿠바 수호신)를 찾아 순례의 길에 오르겠다고 했다. 하루 밤 더 그 청새치와 싸우게 된다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낚시를 드리워야 할 터였다.
다음날도 청새치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산티아고 노인은, 그 고귀한 적대자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또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도 했다. 해가질 무렵 산티아고는 야구를 생각했다. 위대한 선수 조 디마지오는 뒤꿈치 뼈에 보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경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보철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자신은 그러한 고통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디마지오가 지금 그 청새치와 함께 있는 게 아닐까 했다. 그만큼 청새치는 불요불굴이었다. 자신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젊었을 때 밤새워 했던 팔씨름을 생각했다. 시엔후에고(쿠바의 한 마을) 출신의 흑인을 꺾은 다음, 그가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던 일이다.
밤이 내리기 직전 돌고래 한 마리가, 두 번째로 걸어 놓았던 낚시에 걸렸다. 산티아고는 한 손으로 끌어당겨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그리고 다음날의 식품용으로 그 고기를 보관했다. 하늘에 별이 떴다. 산티아고는 그 별들이 위대한 청새치와 마찬가지로 친구로 생각되었다. 자신의 삶에는 달이나 별 같은 위대한 일은 없지만,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청새치에 대해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다시 그걸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생명체로서의 존엄도 없고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별빛 아래서 그는 낚시 줄을 잡은 채 생각하기를, 만일 노를 저어 줄을 당긴다면 청새치는 결국 지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또 그 물고기를 놓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과 싸우기 위해 힘을 쓰는 대신 힘을 빼기로 했다. 손을 놓고 어깨 위로 줄을 풀겠다는 생각이었다
두 시간 동안 그렇게 했다. 잠도 못 잤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일어날 일들이 걱정되었다. 이미 잡아 놓은 돌고래를 배를 갈라보니 두 마리 날치가 있었다. 밤의 찬 공기 속에서 그는 돌고래 고기 한 점, 날치 고기 한 점을 먹었다. 청새치가 얌전하게 있어 노인은 잠을 청했다. 바다에서 뛰노는 한 무리의 돌고래가 꿈속에 보였다. 폭풍우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꿈, 아프리카 해변의 사자도 꿈속에 다시 보였다.
나흘째:
청새치가 낚시 줄을 당겨 산티아고는 잠을 깨었다. 그 물고기가 몇 번이고 물위로 튀어 올랐다. 보트 앞에 보관했던 돌고래 고기를 확인했다. 풀려 나아가는 낚시 줄을 어깨와 손으로 저지했다. 왼손을 크게 다쳤다. 소년이 함께 있었더라면, 줄 타래에 물을 부어 마찰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인은 돌고래 고기 조각으로 얼굴을 닦았다. 구역질을 하지 않을까, 힘을 잃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힘을 돋우기 위해 날치 고기를 먹었다. 해가 떠오르자 청새치가 배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줄을 당기고 풀고 하며 노인은 이 적대자와 싸웠다.
그는 현기증을 느꼈고, 눈앞에 검은 점 같은 헛것도 보였다. 청새치가 꼬리로 보트를 쳤다. 보트 아래로 지나가는 그 물고기의 몸집은 믿기 힘들 정도로 컸다. 계속 배 주위를 돌았다. 노인은 조금씩 줄을 당겨 배 가까이로 끌어 당겼다. 그는 그 물고기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그 물고기를 찬양할 것이고, 누가 누구를 죽이든 문제될 것 없다고 했다. 마침내 산티아고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 가까이 끌어들여 작살을 꽂았다. 물 밖으로 몸을 들어낸 그 청새치는 눈부시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았다. 물로 다시 떨어졌을 때 그 피가 파도를 물들였다.
노인은 죽은 청새치에 배를 대어 매달았다. 그처럼 큰 놈이면 돈을 얼마만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위대한 디마지오도 부러워할만 한 돈이 아닐까 했다. 다친 손은 잘라 놓은 날고기처럼 피가 낭자했다. 이제 돛대를 세워 돛을 달면, 사람이고 물고기고 모두 육지를 향해 가는 것이다. 머리가 맑아진 산티아고는, 잠시 자신이 물고기를 가지고 가는 것인지 아니면 물고기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 것인지 혼동을 했다. 해초로부터 몇 마리 새우를 잡아 날것으로 먹었다. 보트가 항해를 시작하자, 잡은 청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의 손에 난 상처는 그 싸움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은 청상아리 상어가 나타났다. 이 상어는 맹금류의 발톱 같은 이빨을 가진 아름다운 물고기이다. 상어가 청새치를 물자 노인이 상어의 머리를 향해 작살을 던졌다. 상어가 작살과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고 줄도 풀려 나아갔다. 상어가 물고 간 청새치 고기는 약 40파운드였다. 청새치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이 피로 더 많은 상어가 몰려왔다. 산티아고는 그 싸움에서 질 것이라는 걸 알았다. 곧 모든 것을 잃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한 남자는 파멸할 수는 있지만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외쳤다.
디마지오가 그 장면을 보면 즐거워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산티아고는 기운을 내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이 디마지오의 보철처럼 약점이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희망을 잃는다는 건 바보와 같다는 생각으로, 희망을 갖기로 했다. 단지 팔기 위해 청새치를 죽인 것이 아닌, 어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죽였다는 생각을 했다. 청새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사랑을 했고, 사랑을 했으니 죽인 건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상 무엇이 있겠느냐고 스스로 반문을 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쿠바 해역의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덴투소 상어를 즐겨 죽인 것을 기억했다. 그 상어나 자신이나 물고기로 살아온 건 마찬가지였다. 그 상어는 썩은 고기를 먹지도 않고 보통의 상어처럼 삶 자체가 식욕인 동물도 아니었다. 아름답고 고귀한 동물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상어였다. 그 생각을 하며 노인은 “나를 방어하기 위해, 죽였다” 라고 외쳤다. 또 모든 생명은 자신 이외의 모든 생명을 어떤 식으로든 죽인다“는 생각을 했다. 고기 잡는 일이 자신을 살린 것처럼 또한 그 일은 자신을 죽이기도 했다고 생각했다. 소년이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너무 속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두 시간쯤 지나 삽코 상어가 나타났다. 산티아고는 손에 못을 박을 때나 낼 법한 비명을 질렀다( 이 문장은 헤밍웨이가 잃음을 얻음으로, 패배를 승리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신 예수님 이미지에 산티아고를 연결시킨 것임). 상어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산티아고는 급히 노에 칼을 묶어 그것을 무기로 싸웠다. 청상아리 상어를 죽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힘이 세고 겁이 없는 약탈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삽코 상어에 대해서는 경멸감만 들었다. 이 두 상어가 모두 그로부터 청새치 고기를 빼앗아갔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산티아고는 당초 그 청새치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먼 곳까지 나아가 그 일을 벌인 자신의 행동에 대해 청새치에게 사과했다. 자신에게 그리고 청새치에게 모두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했다. 온 몸이 난자가 된 청새치를 바라본다는 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삽코 상어가 또 한 마리 나타났다. 바로 죽여 버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칼을 잃었다. 밤이 내리기 전 두 마리 상어가 더 접근해왔다. 이제 노인에게 남은 무기란 미끼를 죽일 때 사용하는 곤봉밖에 없었다. 곤봉으로 두 상어를 물리쳤으나, 곧 되돌아 온 그 상어들이 청새치를 물었다. 몸도 둔해지고 아픈데다가 피로가 엄습하여 노인은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남아 있는 반 토막만이라도 집으로 가져가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다시 청새치의 남은 몸뚱이에 사과하며, 그 살을 떼어간 상어들을 많이 죽였다며 위로도 했다. 그러나 그 청새치가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상어들을 죽였을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상어들과 싸우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는 행운을 빌었지만, 그 먼 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이미 자신의 행운에 거역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정이 되자 또 다른 한 무리의 상어가 나타났다. 어두움으로 인해 거의 보이지 않았음으로 산티아고는, 상어의 턱과 지느러미가 내는 소리 쪽으로 공격을 했다. 무엇인가가 그의 곤봉을 낚아채 갔다. 보트의 키를 떼어내 무기로 사용했으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상어가 청새치의 단단한 머리를 물고 늘어졌고, 노인은 키가 부서질 때까지 상어를 두드려 팼다. 마침내 키가 등을 찢어놓자 상어가 물러갔다. 청새치에게 남아있는 살은 없었다. 노인은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입안에 이상한 맛을 느꼈다. 구리가 닿은 듯 달콤한 맛으로 잠시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별거 아니었다. 바다에 침을 뱉으며, 이거나 먹고 사람 하나 죽였다는 꿈이나 꾸어라'라고 외쳤다. 보트를 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모든 감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이 나를 패배시켰는가? 아무것도... 그냥 너무 멀리 온 것뿐이었다. 그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불이 꺼져 있었고 인적도 없었다. 뼈만 남은 청새치는 아직도 배에 묶여 있었다. 그는 닻을 내려 어깨에 메고 언덕을 올라 집으로 향했다. 너무 무거웠다. 집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이나 쉬었다. 쉬면서 잠을 한 번 자기도 했다.
닷새째:
이튿날 아침, 마놀린이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아 왔다. 노인의 상처 난 손을 본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조용히 밖으로 나선 소년은, 가는 길 내내 흐느꼈다. 노인의 배 주위로 많은 어부들이 모여, 배에 묶인 청새치 뼈를 보고 있었고, 한 사람이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물에 들어가 낚시 줄로 그 길이를 재고 있었다. 소년은 그곳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어부 한 사람이 소년에게 노인의 안부를 물었다. 잠을 자고 있다고 소년이 대답했다. 자신의 우는 모습을 그들이 보건말건 개의치 않았다. 그때 뼈를 재던 어부가 18피트나 된다고 소리쳤다. 소년은 테라스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뜨거운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많이 타 달라고 했다. 커피를 가지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소년은, 노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커피가 식지 않도록 애를 썼다. 한 번 깬 듯했으나 노인은 다시 깊은 잠에 들었고, 소년은 커피를 데우기 위해 길을 건너 가 나무 땔감을 가지고 왔다. 마침내 노인이 잠에서 깨었다.
노인과 소년의 따듯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노인은 상어의 공격을 이야기했고, 마놀린은 부모님의 뜻이 어떻든 노인과 다시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해안경찰과 비행기가 동원되어 노인을 찾았다는 말도 했다. 산티아고 노인은 이야기를 해주는 소년이 있어 행복했고, 두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한 다음 노인은 다시 잠이 들었다. 소년은 노인을 위해 먹을 것과 신문, 그리고 손을 치료할 약을 가져오기 위해 문을 나섰다. 소년은 마을의 창고 주인 페드리코에게 청새치 머리를 가지라고 했다.
그날 오후, 테라스 카페에 온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바닷물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한 부인이, 바닷물에 뜬 빈 맥주 깡통과 죽은 전갱이 사이를 떠도는 커다란 꼬리지느러미 뼈를 가진 길고 흰 등뼈가, 항구 밖 착 가라앉은 바다 위를 부는 동풍에 따라 흐르는 조류와 함께 출렁거리는 걸 보았다. 그게 무엇인지 부인이 웨이터에게 물으며, 이제 곧 조류에 휩쓸려 나갈 쓰레기인 커다란 물고기의 그 등뼈를 가리켰다. 이에 웨이터는 상어라고 대답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코자 한 것이다. 부인은 상어가 그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꼬리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녀의 동반자인 남성도 역시 몰랐다고 했다. 산티아고 노인은 그의 오두막으로 가는 길 위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옆에 소년이 지키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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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참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사실 그리 늙은 나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홀로 배를 몰면서 수십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청새치와 사투를 벌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고기를 노리는 상어 다섯 마리를 죽이죠. 작품을 발표할 당시 미국의 평단에서는 주인공의 나이와 완력의 비대칭에 대해 헤밍웨이 특유의 사실주의에 흠집이 났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작품이 보여주는 생의 의지, 새로운 관점에서의 생태주의, 차원이 높은 은유 앞에서 이 같은 비판은 다소 사소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전 작품 특유의 아우라는 작품의 ‘노인’을 일반적인 노년과 달라 보이게 하지요. 산티아고처럼 늙어도 좋겠다는 생각 혹은 결심. 그것은 당연히 그의 완력이나 체력에 대한 부러움만은 아닐 것입니다.
ReplyDelete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50대에 접어들 무렵에 출간된 작품으로, 안타깝게도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1961년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생의 주기를 대입한다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인생 주기에서 가장 노년의 작품일 것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의 작품, 초기작-'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유산자와 무산자'에서는 전체주의에 저항하고 괴로워하는 개인주의적 서사를, 중년 시절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전쟁과 폭력을 극복하는 공동체적 연대를 그렸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연대, 인간과 삶에 대한 진중한 상징에까지 나아갑니다. 그것은 노인 화자에 의해 가능했다고 볼 수 있죠.
우리는 누구나 늙습니다. 늙음에는 차별이 없죠.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태반주사를 맞는다 해도 노년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헤밍웨이처럼 생물학적인 노년이 되기 전에 죽음을 택하거나, 나는 노년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수밖에 없겠죠? 둘 다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며 동시에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노년으로 살아야 할 날을 아주 많이 받아놓은 모범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은퇴 시기는 앞당겨졌는데, 평균 수명은 급격히 늘어났죠. 자본주의의 발달은 빠른 은퇴를 부르고 의학의 발달은 늦은 죽음을 기대하게 합니다.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무력하게 늙어가는 것뿐이랍니다. 운이 아주 좋으면 건물을 갖고 있을 것이고, 운이 조금 있으면 연금 생활을 할 것이며, 운이 없는 대부분은 별다른 대책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노년은 잔인한 공명정대함으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ReplyDelete노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환경에 대한 일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을 자꾸만 배반하는 사회에 관해서라면 더 긴 지면이 필요할 테지만, 다행히도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의 믿음은 크게 배반당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환경은 거대한 바다고, 그에게 사회는 작은 어촌 마을이죠. 그는 84일간 물고기를 낚지 못하지만, 바다에 대한 믿음은 늘 굳건합니다. 마을의 젊은 어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부표를 사용하지도 않고, 모터보트는 더더욱 그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는 보수적입니다. 전통적인 낚시를 하며, 신문으로 야구 경기 결과를 확인하며, 절대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원칙이 있고, 그것은 바다와 그가 낚은 ‘고기’를 대할 때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에게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죠. 예를 들어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습니다.
현 사회에서 노년의 많은 경우 가난으로 상징됩니다. 가정에서 노인은 더 이상 존경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심통을 부리는 노인, 이해될 수 없는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한 노인, 은근히 드러나는 노인 혐오의 정서.. 우리 곁의 노인은 어째서 바다에 나가지 않는지.. 존경받기 전에, 왜 존경하지를 못하는지.. 그들의 노년과 산티아고의 그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믿을 만한 바다가 없고, 지켜야 할 마을이 없습니다. 그것은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산티아고와는 다른 좌절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좌절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혹은 우리는 좌절이 없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요? 멕시코만의 난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대로인 것이 없고, 계속 바뀌고 있는데, 그 방향성에 대한 의심만이 자욱합니다.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원칙,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 그것이 노인의 바다였을 것입니다. 그 바다로부터 생겨난 것은 모두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존경받는 노년이기 전에, 존중할 바다인 것이 아닐까요. 산티아고는 사자 꿈을 꿉니다. 우리의 노년도 꿈을 꿀 것입니다. 그것이 함께 꿀 수 있는 바다와 같은 꿈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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