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Siddhartha


        by

Hermann Hesse

 <Synopsis>

 

for More Readings:

www.beethovennote.com

~~~~~~~~~~

주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길. 내면의 가르침 등.

등장인물:

싯다르타 Siddhartha;

    소설의 주인공. 자신과 현상 세계에 대한 초월적, 영적 이해를 원하여 깨달음을 찾아 나서는 인물. 자신과 동명의 아들이 있음.

바수데바 Vasudeva;

    싯다르타를 인도하여 깨닫게 하는 뱃사공. 영적, 사회적으로 흠이 없는 남자.

고빈다 Govinda;

    싯다르타의 가장 가까운 친구 겸 추종자. 싯다르타와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일생을 보내는 인물. 싯다르타와 함께 고향을 떠나, 고타마의 제자가 되는 인물. 싯다르타의 사랑으로 깨달음을 얻는 남자.

카말라 Kamala;

    싯다르타와 육체적 사랑을 맺는 고급 매춘부. 싯다르타로 하여금 사마나로서의 회의적인 삶을 포기케 하는 여인. 독사에 물려 죽기 전 싯다르타의 아들 싯다르타를 낳은 여인.

고타마 Gotama;

    깨달음을 얻은 종교 지도자. 붓다로 알려진 인물. 깨달음에 그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다고 싯다르타가 결론을 내린 인물.

카마스와미 Kamaswami;

    싯다르타에게 사업을 가르쳐 준 상인. 싯다르타로 하여금 물질이 반드시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걸 알도록 해준 인물.

사마나 Samanas;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처음 함께 했던 수도자들. 그들을 떠난 싯다르타는 마침내 높은 수준의 영적 수준에 이르게 됨.

~~~~~~~~~~

제1부:

브라만의 아들;

    기원전 6세기 인도, 부처 고타마의 8정도八正道가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시대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싯다르타는 젊은 브라만으로 잘 생기고 학식이 있으며, 브라만 계층에서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어린 시절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지식 및 의례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될 운명으로, 누구나 그를 알고 있었다. 싯다르타의 마을은 목가적이었고, 그는 남부러운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그의 부친은 브라만으로서 존경 받는 종교지도자였다. 싯다르타는 아무런 문제없이 부친의 길을 따르는 듯 보였다.

    싯다르타는 가장 친한 친구 고빈다와 함께 힌두교의 지혜를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부친을 비롯하여 여러 학식있는 브라만들이 경전으로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터득하였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들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로부터 배운 제식祭式과 만트라(眞言: 기도문)는 진정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닌, 그냥 관습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자신들 공동체의 기준에 따라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들이 알 수도 없고 물어볼 수 도 없는, 이미 정해진 제례와 형식에 따라 자신과 고빈다가 커다란 무리 속 한 마리 양이 되는 것임을 싯다르타는 알았다. 그 같은 생각에 싯다르타는 매우 불행했다. 비록 부친을 사랑하고 마을 사람들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그러한 길을 밟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부친의 길을 따를 것임을 확신했지만, 또한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명상을 끝낸 싯다르타는 고빈다에게, 마을을 지나간 사마나(Samana; 방랑하며 탁발하는 수도승)무리에 합류하겠다고 했다. 반은 벌거벗은 채 사마나들은 먹을 걸 동냥하지만 이는 육체적, 정신적 욕망을 벗어나려면 금욕을 통해서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사마나들은 싯다르타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로, 싯다르타는 그 지도자들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마나들의 길을 따라 그들로부터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을 말하자 고빈다가 놀랐다. 싯다르타가 이제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다는 걸 안 고빈다는, 그를 따라야한다는 걸 알았다.

    순종적인 아들인 싯다르타는 부친에게, 사마나들과의 동행을 허락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부친은 실망을 하며, 다시는 그 같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굽히지 않았다. 잠을 잘 수 없었던 부친은, 어둠 속에 합장을 하고 서있는 아들을 보았다. 아침이 되어 부친은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했다. 아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는 아들에게, 만일 어디선가 지고의 행복을 터득한다면, 집으로 돌아와 그 터득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집을 떠나는 싯다르타는 매우 행복했다. 또 자신의 길을 고빈다가 함께 하기로 결심한 것을 알고는 매우 놀랐다.

사마나들과 함께;

    사마나들과 함께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방랑이 시작되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누더기를 입고, 목숨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친 음식만 먹었다. 그들은 곧 다른 사마나처럼 굶주리고 기진맥진한 모습이 되었다. 사마나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철학은, 자아가 파괴되거나 완전히 부정될 때에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들은 이 중심 목표를 위하여 금욕을 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싯다르타의 유일한 목적은 욕망, 꿈, 기쁨, 열정 등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비우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 속 모든 욕구를 버리고 난 후에야,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존재가 눈을 뜨리라는 믿음이었다. 싯다르타는 이미 부친과 힌두교를 공부하면서 배운 인내와 훈련이 되어 있었으므로, 사마나들의 고행과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관행에 빨리 적응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생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을 제외한 재산, 의복, 성 등 지금까지의 삶의 덧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곧 터득했다. 자아를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그렇게 해서 세속적인 즐거움과 욕망을 버릴 수가 있었다. 그는 가장 연로한 사마나의 제자가 되었으나, 가장 깊숙한 내면의 비밀은 그대로인 채, 마침내 의지를 이겨내는 것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마나들과 함께 생활하며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정신적으로 성숙하긴 했지만, 싯다르타는 그러한 삶이 자신이 찾는 열반을 마침내 가져다주리라 생각지 않았다. 이처럼 반은 회의를 품고 가는 길은, 그에게 있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는 이 같은 마음을 고빈다에게 이야기했다. 가장 나이가 든 사마나는 예순 살로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사마나들이란 자신들이 떠나온 브라만들보다 나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에 고빈다는 약간의 이의를 제기했다.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사마나들과 함께 3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어느 날,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붓다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이 세상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으로, 업 또는 윤회의 사슬을 끊었다고 했다. 사마나 원로들을 비롯하여 그 소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마음이 동요되었다. 고빈다가 이 새로운 스승을 따르고 싶어 하여, 싯다르타는 스승이라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지만, 고빈다의 말을 따라 그 스승을 찾아보자고 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를 통해, 사마나들로부터 고빈다가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고타마를 찾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이 떠나겠다고 하자 사마나 원로가 화를 냈으나, 싯다르타는 안력으로 최면을 걸어 그를 침묵 시켰다. 그가 뒤로 물러서며 떠나는 길을 축복해주었다. 그들이 고타마 붓다의 처소에 이르렀을 때 고빈다는,  그 눈빛으로 보아 싯다르타가 가장 고위의 사마나보다 더 높은 정신력을 획득하였음을 알았다.

고타마;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고타마 붓다의 제자들에게로 갔다. 그들은 정신적 순례자인 두 사람을 환영했다. 고타마는 싯다르타와 고빈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진실로 깨달은 풍모였다. 사마나와 유사한 수행을 비롯하여 8정도八正道, 사념四念 등 불교의 내용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했다. 고타마에 완전히 심취한 고빈다는 그를 영원히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의문이 들고,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숲속에서 고타마 붓다와 우연히 마주친 싯다르타는, 인과因果 즉 존재의 끊어지지 않는 사슬을 찾아낸 그를 경외하며, 그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품고 있어 악을 피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타마의 가르침은, 그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신비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싯다르타는 그 신비를 알기 위해 가고 있으며, 그것을 알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며, 누군가의 가르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고타마는, 싯다르타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고타마는 스승의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열반에 이른 이이다. 싯다르타는 고타마가 제자들에게 한 설법이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 이에 고타마는 싯다르타가 핵심을 알고 있으며,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보다 우월한 영적 지도자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고타마 붓다가 자리를 떠나자, 그의 시선과 미소가 싯다르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되었다.

깨달음:

    싯다르타가 숲을 나왔을 때 그는 고타마 붓다와 고빈다는 물론 자신의 과거의 삶도 그곳에 남겨 두고 온 것이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그는 마법에 걸린 듯 아득한 의식 속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세상 가운데 서 있고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다면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의 힘에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진정으로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열반에 이르는 길은 타인이 미리 정해놓은 삶의 모습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깨달음의 길은 누구든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신했다. 따라서 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찾기로 했다. 싯다르타는 우선 고향의 부친에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고향이란 과거의 한 조각이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완벽한 홀로임을 깨닫고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제2부:

카말라 Kamala;

    싯다르타는 한동안 방황을 하며 주변에 많은 동물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있음을 알았고, 물질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았다. 생애 처음 현상세계를 영적으로 또는 추상적인 사념의 관점에서가 아닌, 진실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 새로운 삶의 첫 밤을 어느 뱃사공의 오두막에서 보내게 되었고, 고빈다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고빈다는 예수님 모습을 한 채, 왜 자신을 버렸느냐고 물었다. 그런 다음 고빈다는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였고, 싯다르타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을 빨았다.

    그 다음 날 싯다르타는 뱃사공에게 강을 건너달라고 했다. 뱃사공은 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고, 그 말에 싯다르타는 안도했다. 그들이 강을 건넜을 때 싯다르타는 배 삯을 지불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고, 뱃사공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는 어느 날엔가는 싯다르타가 그 강으로 돌아 와 자신에게 무슨 선물인가를 줄 것이라고 했다.

    싯다르타가 어느 마을 어귀에 이르자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그를 유혹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그녀를 거부했다. 마을로 들어선 그의 앞에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나 유혹을 했고, 그는 그 유혹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한 고급 창녀 카말라였다. 비단 가마를 탄 그녀가 싯다르타의 앞을 지나가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세속적 욕망이 꿈틀거렸다.

    싯다르타는 강에서 목욕을 한 후 삭발을 하고 수염을 깎은 다음 카말라에게로 갔다. 머리에 기름을 발랐으나 옷과 신발과 돈이 없다면 자신에게 만족하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카말라는 좋은 옷과 좋은 신발, 많은 돈과 자신에게 줄 선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간청을 하거나 돈으로 사거나 선물로 받을 수도, 거리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훔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쓴 한편의 시로 그녀의 입맞춤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녀를 위해 좋은 옷과 좋은 신발,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부유한 사업가인 카마스와미에게 싯다르타를 추천했다. 하인이 아닌 사업가의 자격으로 소개를 한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서;

    카마스와미는 싯다르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자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싯다르타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으나 그 대신 자기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카마스와미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사업가가 되겠다는 싯다르타를 조롱했다. 싯다르타는 점잖은 말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 하자 좋은 인상을 느낀 카마스와미는 그에게 보호자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싯다르타는 카마스와미의 집에 거주하며 그와 함께 상인의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은 비교적 쉬웠으나 정서적으로 맞지가 않았고, 성공은 물론 실패의 경우에도 웃음으로 넘겼다. 그의 태도에 실망을 한 카마스와미는 그가 사업에 대한 의욕을 갖도록 이윤의 적은 부분을 주었다. 그러나 사업이란 싯다르타에게 장난과 같았고, 카마스와미는 그가 보다 진지한 자세를 가지게끔 할 수가 없었다. 카마스와미는 부유함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알아야할 것이라고 했지만 싯다르타는 변함이 없었다. 사마나로서 그의 삶은 바로 돈, 욕망, 명예 등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들로 고통 속에서 동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제 싯다르타는 그러한 고통을 거부한 것이다.

    한편 카말라는 싯다르타로 하여금 사랑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카마스와미가 말한 상인의 삶 이상의 것을 알고 기뻐했다. 그는 카말라를 유혹하기 위해 필요한 선물과 옷을 손에 넣기 위해 카마스와미와 함께 열심히 일을 했다. 그는 카마스와미보다는 카말라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육욕뿐만 아니라 인내,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고빈다나 카마스와미보다 카말라가 자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카마스와미와는 달리 그녀는 언제나 물질세계로부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었고, 그녀의 삶은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고타마 붓다의 삶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싯다르타와 카말라는 닮은 점이 많았고 연대감도 있었지만, 둘이 사랑한 건 아니었다. 카말라에게 있어 섹스란 매춘부로서 일의 일부였다. 싯다르타로서는 자신을 깨닫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사랑의 세계에 대해 보다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카말라와의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삼사라 Samsara;

    카마스와미로부터 사업을 배운 싯다르타는 부자가 되어 카말라의 친한 동반자가 되었다. 이렇게 그는 수년간을 살았고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처음에는 사업이 모든 것이었고, 그는 쾌락과 부를 찾는 모든 사람들 위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그 역시 점점 소유라는 마법에 걸려들고 있었다. 그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었으며 무희들과 즐겼고 도박도 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영혼의 목소리가 죽었음을 알았다. 카말라와의 관계도 더 이상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한지 20년이 지난 후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얼굴에 주름이 지고 자신의 머리칼도 희어졌음을 알았다. 그는 떠나야할 시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카말라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고타마 붓다를 만나겠다고 했고, 그는 말렸다. 카말라가 기르는 귀한 새가 새장에서 죽어 있는 꿈도 꾸었다. 그는 그 새를 거리에 버렸는데 마치 좋은 것들,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버리는 듯했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마음속에 어떤 죽음을 느꼈다. 붓다를 벗어나 사마나가 되고, 미지의 것을 마주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이다.

    이러한 꿈을 꾼 후 망연자실한 싯다르타는 쾌락의 정원으로 가 명상에 잠겼다. 그는 그곳에서의 삶을 숙고해보았다. 카마스와미의 도제가 되어 살아온 삶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로부터 일탈이었다. 먹고 마시고 춤추었던 일들은 쾌락을 가져다주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카말라와의 관계는 쾌락을 주었고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는 관계였다. 그는 삼사라 (Samsara; 윤회)즉 삶과 번뇌, 그리고 죽음이라는 하나의 유희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 알았다. 그 놀음이 중요함을 알았지만 그 놀음을 영원히 계속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가 사라졌음을 안 카말라는, 자신의 황금 새장으로부터 명금鳴禽을 놓아주었다. 이날로부터 카말라는 더 이상 연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싯다르타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

강가에서;

    카말라를 떠난 싯다르타는 광야로 돌아와 방랑을 계속했다. 고통을 느껴 자살을 생각도 해보았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구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사마나들과 함께 물질적 탐욕을 억제한 시절이 있었고 그 후엔 물질적 욕망에 만족했고, 그러나 어느 것도 깨달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방황 끝에 뱃사공과 함께 건넜던 강가로 돌아왔다. 강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부질없는 목숨이 끝날 찰라 성스러운 말씀 옴이 내면에 울려 퍼졌고, 그의 잠자던 영혼이 잠을 깨었다. 자살을 생각한 자신의 우둔함을 깨달아 잔디에 누어 깊은 잠에 들었다.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보니 옆에 명상에 잠겨 있는 중이 있었다. 고빈다였다. 그러나 고빈다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소개하고, 고빈다는 아직도 자신이 고타마붓다의 제자라고 했다. 고빈다는 영적인 순례자로 자신의 역할이 옳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싯다르타 역시 자신이 영적인 순례자라고 했으나, 그 말을 들은 고빈다는 회의적이었다. 고빈다는 싯다르타가 안색이 좋고 부유한 상인처럼 보인다고 했다. 싯다르타는 살아온 자신의 삶을 간단히 이야기했고, 그러나 아직도 깨달음을 찾아 순례의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고빈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으나 싯다르타에게 절을 한 다음 자신의 길을 떠났다.

    싯다르타는 사마나와 다시 함께 하거나 고타마의 제자가 된다고 해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지나친 생각 때문에, 지난 날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 노력이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았다. 깨달음을 준다고 생각한 존재의 길이나 행동에 집착한 열정이 잘못 되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애를 썼기 때문에, 추구하는 바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강을 내려다 본 싯다르타는 그 강에 강열한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뱃사공;

    강가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 후 싯다르타는 곧 자신을 건네 준 그 뱃사공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바수데바로서, 싯다르타를 몇 년 전 자신의 오두막에서 잠을 재웠던 사마나로 기억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와 함께 강변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바수데바는 강이 싯다르타의 소망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여, 함께 하자는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싯다르타는 바수데바와 함께 열심히 일하고 먹고 잠을 잤다. 바수데바는 그에게 뱃사공의 일을 가르쳤다. 이 기간 중 싯다르타는 그에게, 그의 깨달음을 얻은 듯한 초연함과 강가의 생활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묻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해 바수데바는, 강에는 많은 비밀과 가르침이 있으며 싯다르타가 그 비밀들을 알고 배울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싯다르타가 강으로부터 처음 배운 것은, 강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바수데바에게 역시 이 비밀을 깨달았느냐고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이 사실을 깨닫고 기뻤던 싯다르타는 모든 고통, 근심, 자기학대, 고난, 적대감 등은 시간 속에 머물고 있고, 시간이라는 관념을 극복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걸 알았다. 얼마 후 싯다르타는 그 강이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 소리들이 하나가 되어 들릴 때면 옴의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바수데바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고타마 붓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국에 퍼졌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는 카말라와 그의 아들도 있었는데, 그는 집에서 편안히 지내고 싶어 그 여행을 원치 않았었다. 그녀는 강에서 머지않은 곳에 머물렀는데, 그만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다. 도와 달라는 그녀 아들의 외침을 들은 바수데바가 달려가, 그녀를 배에 태워 강 건너 자기 오두막집으로 데리고 갔다.

    싯다르타는 그녀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녀 아들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카말라는 곧 죽지를 않아, 싯다르타에게 전모를 말할 수가 있었다. 그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카말라는, 깨달은 자를 보고 싶다는 소원성취를 위해 붓다를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싯다르타가 바로 붓다와 다름없다고 했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축복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녀 아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카말라의 장례식을 치른 후 싯다르타는 최선을 다해 아들을 위로하고 돌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버릇이 없고 냉소적이었으며, 뱃사공들과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하고 도시로 돌아가 부자로 살고 싶어 했다. 싯다르타는 좋은 옷, 좋은 잠자리, 하인이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들이 깨닫도록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혼자 아들을 키워야한다는 걸 알았다. 아들이 행복하고 또 어떻게 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르치려 했지만, 아이는 분노만 하고 있었다. 아이는 바수데바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반항도 하여 그들의 삶을 불행하게 했다. 과거 싯다르타는 사랑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 아들을 사랑하고, 따라서 아들의 행동은 카말라의 죽음이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들은 아버지나 바수데바가 걸어 온 길을 따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바수데바는 아이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허락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늙은 사람들이야 뱃사공 일을 좋아하겠지만, 나이 어린 소년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바수데바는 또 자신의 부친도 자신이 사마나들과 함께 하는 것, 속세의 가르침을 배우는 일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아이는 자신의 길을 가야하며, 그 일로 싯다르타가 불행하여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 싯다르타는 동의하지 않았다. 부자 관계란 중요하며, 아들 역시 깨달음을 찾아 나설 것이고 강이야말로 소년이 진실로 깨닫고 배울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라고 했다.

    어느 날 밤 싯다르타의 아들은 그에게, 자신을 가르칠 아무런 권위가 없다고 소리쳤다. 강가에서 뱃사공으로 사는 것이 자기가 원한 일이 아니며, 부친 싯다르타 같은 인간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살인범이 되겠다고 했다. 싯다르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싯다르타는 아들이 자신과 바수데바의 돈을 훔쳐 달아난 것을 알았다. 바수데바는 싯다르타가 아들을 보냈다고 생각했으나, 싯다르타는 아들의 뒤를 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안전이 걱정되어서였다. 곧 아들을 찾아 나섰으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보면 아들은 숨어버릴 터였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계속 걸어, 아들이 있을 도시에 이르렀다.

    도시에 이른 싯다르타는, 그 곳에 살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카마스와미와 함께 했던, 특히 카말라와 함께 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순간적으로 아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 같이 스쳤다. 아들을 붙들어 두어야할 이유가 없었다. 아들이 자신처럼 영적인 순례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건 그의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몸이 지친 싯다르타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그를 일으킨 사람은 그를 몰래 뒤따라 온 바수데바였다. 그들은 함께 강으로 돌아갔다.

옴;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싯다르타는 며칠간을 슬픔에 잠겼다. 고통과 슬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싯다르타는 강물을 들여다보았고, 강물은 미소 지으며 자신의 상처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는 강물처럼 삶이란 반드시 흘러가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는 어렸을 때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친을 떠났다. 이제 그의 아들이 떠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보니, 그는 부친과 아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비켜갈 수 없는 슬픔도 있고, 그러한 슬픔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대를 이어 전해진다는 걸 알았다. 그는 새로운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그날 밤 그는 바수데바에게 그가 느낀 모든 감정을 이야기했고, 바수데바는 그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싯다르타는 바수데바가 바로 붓다처럼 깨달은 자라는 걸 알았다. 싯다르타에게 그는 신처럼 보였다.

    늙은 바수데바가 싯다르타를 강으로 가까이 데리고 가 귀를 기우리라고 했다. 강둑에 앉아 보니 지나온 삶의 모습들이 싯다르타의 눈앞에 펼쳐졌다. 선과 악, 희로애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를 사로잡은 소리는 오직 옴이라는 말이었다. 강가 바수데바의 옆에 앉아 싯다르타는, 자신의 자아가 이 세계 모든 목소리의 총체인, 위대한 완전자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싯다르타는 이 현상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그가 바수데바의 얼굴에서 처음 느꼈던 것과 같은 어떤 신비스러운 깨달음의 표정이었다. 이제 싯다르타는 자신의 운명과 싸우기를 멈추었고 그의 눈은 지혜로 빛이 났다. 싯다르타를 본 바수데바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고 하며 그를 뱃사공으로 남겨둔 채 숲속으로 사라졌다.

고빈다;

    고빈다는 깨달음을 찾아 그 강으로 왔다. 그곳에 현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나, 그가 강에 도착했을 때 싯다르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말을 걸자 싯다르타는 미소 지으며, 그가 너무 애써 깨달음을 찾고 있고 그 목표에 사로잡혀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가에서 보고 알아보지 못한 그가 싯다르타임을 알고 고빈다는 크게 놀랐다. 고빈다는 아직도 고타마 붓다를 따르고 있었지만, 아직 싯다르타처럼 빛나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가르침을 간청했다.

    그날 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오두막에 머물렀고, 싯다르타는 그에게 지혜의 요체를 알려주었다. 지혜는 타인에게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며, 말로 설명하는 지혜는 한계가 있고 깨달음의 전모를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지혜를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으나 지혜는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했다. 붓다처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 현상세계를 삼사라와 열반, 슬픔과 구원, 좌절과 진실로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싯다르타는 진리마다 진리에 반하는 진리가 있음을 알았다. 누구도 완전한 성인이거나 완전한 죄인이 될 수 없고, 만일 그렇게 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속임수라고 했다. 현상세계는 결코 불완전한 것이 아닌, 다시 말해 완전성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다. 그러니까 매순간마다 현상 세계는 완벽한 것이다. 은혜에도 죄가 있으며 아기들은 죽음을 전제로 태어나며, 따라서 모든 죽음은 영원히 계속되는 생명을 동반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과거, 현재, 미래의 현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모든 생명체를 사랑과 경외, 존경심으로 우러르고 싶다고 했다.

    고빈다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 더 있는지 싯다르타에게 물었다. 고빈다는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신은 이제  싯다르타가 이룬 마지막 깨달음에 도달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싯다르타는 그에게 이마를 내밀며 입 맞추라고 했다.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 고빈다는, 물이 흐르는 강가에서 싯다르타가 보았던 바로 그 환영들이 눈앞에 전개되어 영원히 흘러가는 걸 보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싯다르타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온화한 미소를 지은 싯다르타의 얼굴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얼굴과 다름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그들이 젊은 날 찾아 나섰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

Hermann Hesse: Demian 참조.



Comments

  1. 헤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자전적’이라는 말이 관용처럼 사용됩니다. ‘자전적’이라는 말은 개인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한 개인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보편성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헤세가 세대를 넘어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인간 근원에 있는, 자기를 찾아가고자 하는, 자기를 만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연을 건들기 때문일 것 입니다.

    헤세는 그 길을 가는 방법을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자신만이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ReplyDelete
  2. '싯다르타'는 한 인간의 일대기입니다. 형이상학적인 사유 속에서, 다른 사람의 배움을 통해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트만의 세계에 정착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청년이, 진정한 배움이란 오로지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것.. 인간이든 사물이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그 안에 완전함을 갖고 있음을.. 자신은 극복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라 합니다.

    싯다르타는 정신적인 삶을 버리고 세속적인 삶에서 배운 체험이 의미 있는 것임은 틀림없지만, 그것 또한 전부는 아님을 깨닫습니다. 싯다르타는 정신적인 체험과 육체적, 세속적인 체험 모두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기가 됨을 깨닫습니다.

    정신적인 세계의 싯다르타도, 육체적 쾌락과 부, 구토감을 느낄 정도의 바닥을 체험한 싯다르타도, 모두 싯다르타임을 알게 됩니다. 어느 것 하나가 빠지거나 부족한 것은 온전한 하나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ReplyDelete
  3. 우리는 융합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모든 기존의 것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시대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혼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자기 자신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하나의 지향점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이 시점에 헤세가 그의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전일성, 단일성에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합니다.

    헤세의 작품과 그의 사상은 혼돈에 빠지기 쉬운 이 시대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ReplyDelete
  4. 지아님,
    이 소설이 다루는 여러 주제 가운데
    스스로 터득하는 깨달음이라는 게 아마 가장 핵심적인
    주제일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올바른 가치관에
    토대한 내면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ReplyDelete

Post a Comment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노트르담의 꼽추

앵무새 죽이기

영어 단어 내려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