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Fem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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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여성은 제2의 성으로, 그들의 영역은 가정에만 국한되어 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구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적 지위에 관련된 법이 법전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5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여성은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고 직업을 갖기도 힘들었다. 여성이 사업을 한다든가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도 부적절 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선거권, 피선거권이 없으니 선출직에의 진출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여성과 남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이라는 페미니즘Feminism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과거에는 당연시되었던 여성 차별 관행은, 적어도 서구사회에서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은, 지난 두 세기에 걸쳐 페미니스트 운동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성 평등의 실현이라는 과업은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많은 제도적 차별이 제거되긴 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뿌리를 내려, 깨닫지 못하고 있는 관행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서 편견과 무시를 당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Glass Ceiling)"은 물론 상대적인 저임금,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억측들이 남아 있다.
페미니즘 심볼
제1차 물결: 투표권 획득
르네상스 기간 중에도 유럽에서는 오랜 기간 여성의 권리에 관한 논쟁이 있었지만, 여성은 경박하고 열등하다는 식의 논리에 반박하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한 별 효과가 없는 논쟁이었다. 영국에서 이 전례 없던 논쟁에 불을 붙인 인물은 월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1759–1797)이다. 마리 쉘리(Mary Shelley, 1797-1851;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로 불렸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여성 권리의 정당성(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en)"에서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압제 받는 여성의 평등권과 그 권리의 정당성을 열렬히 호소하였다. 특히 여성의 교육 기회를 막는 교육제도와 여성의 의존심을 조장하는 가정교육을 비판했다. 그러한 제도적 결함 때문에 여성은 우아함을 잃고, 남자들을 즐겁게 하고 외모에나 힘쓰는 것 말고는 아무런 야심이 없다고 했다. 만일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 같은 기회가 제공된다면, 남자들보다 지적으로나 능력 면에서 뒤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1797년 월스톤크래프트가 사망한 이후 수십 년 동안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지다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장은 밀(John Stuart Mill, 1806–73)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밀은 그의 논문 "여성의 종속에 관하여(The Subjection of Women)"에서 말하기를, 한 성이 타 성에로의 법적 종속은 완벽한 양성 평등으로 대체되어야 마땅하며 한 성의 타 성에 대한 특권이나 면책 또는 우월함이나 열등함은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노예제도 폐지 편에 섰던 여성들은 흑인 해방이 여성의 권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따라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 당연히 여성 해방도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여 서구의 여성 해방 운동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1920년대에 이르러 페미니스트 운동은 투표권 획득에 집중했다. 점잖고 신사적인 대 의회 로비를 통한 입법화는, 공고한 지반에 토대한 제도적 저항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운동은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여성 투표권 획득을 위한 싸움은 타협으로는 해결 불가능했고, 따라서 그 싸움은 보이콧, 대규모 시위, 방화, 단식투쟁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 같은 투쟁방식은 페미니즘의 특징이 되었고, 그 결과 마침내 여성 참정권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영국은 1918부터 1928년에 걸쳐, 미국은 1920년에 여성 참정권을 입법화하였다.
제2차 물결: 여성 운동
투표권 획득은 페미니즘 운동이 이루어낸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많은 생활 영역에서 아직도 성 불평등과 관련한 많은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848년 여성의 권리에 관한 전국 회의가 뉴욕 세네카 홀에서 처음 개최되었고, 이 회의에서 직업이나 상업에 남성과 동등한 권리로 여성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70년 이상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성 투표권 획득을 위한 투쟁으로 비롯된 공동체 의식은 곧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여성운동은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흑인 민권운동과 월남전쟁, 히피문화, 학생 저항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여성운동도 희망과 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즉, 제2차 여성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제1차 페미니즘 운동 물결”이 노예제도 폐지 운동으로 힘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든 보수주의자이든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일한 권리 획득을 목표로 했다. 그들은 일터에서의 보이지 않는 공식 비공식 장벽의 제거, 출산 및 육아 휴가, 남성과 동일한 교육과 훈련 받을 기회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뿌리 뽑을 것을 그 일차적 목표로 했다. 물론 그들과 함께 급진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 미국의 여류 작가 겸 무정부주의자)같은 이는 투표권의 획득으로 여성 해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다. 진정한 해방은 “여성의 육체에 손을 대는 권리”에 대한 거부 즉, 본인이 원할 경우 임신 거부는 물론, 하느님을 비롯하여 국가, 사회, 남편, 가정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고 했다.
후일의 여성운동가들은 남성과의 절대적인 평등은 투쟁을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남성 우위라는 생각에 토대한 가부장적인 세계에서, 권력 획득을 통해 여성 종속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청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언어로, 여성만의 운동으로 남성 우위의 사회를 혁파한다는 건 어렵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제3차 물결: 세계 여성 연대
20세기가 저물어가면서, 제3차 페미니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초기 페미니스트 운동이 가졌던 결점에 대한 인식이 그 동기가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물결은, 내용은 물론 그 형식에서도 품격의 변화를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앞선 여성운동가들의 점잖고 진지하며 성실한 이미지가 아닌 풍자적이고 장난끼에 도발적이고 뻔뻔하달까 여하튼 앞선 페미니스트들과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아닌 야한 여자, 영혼을 찾는 고통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바에즈(Joan Baez, 1941~ : 미국 가수, 여성 운동가)가 아닌, 마돈나Madonna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q2WS6ahCnY&ab_channel=Madonna
그러나 이 눈부신 광휘의 뒤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제2차 물결의 부유한 백인들은 “세계 여성 연대”의 주도자임을 자처했음에도, 흑인이나 제3세계 여성운동가들이 필요로 하고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제3차 여성 운동의 물결은 새로운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들을 잊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으로 전 세계적인 여성운동의 미래를 약속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끝으로 여성은 출산과 육아라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의 주체임으로, 마땅히 그 위치가 고려되여야하고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은 또한 모든 남성의 어머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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