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Marathon(490 BC)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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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전투 당사자: 그리스와 페르시아


    마라톤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고지에서 칼리마쿠스(Callimachus; 마라톤 전투 당시 그리스 장군)가 페르시아 군을 관찰하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 적군은 대규모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수와 창을 든 병사도 많았다. 그러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 그 수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지휘하는 군대는 아데네인 1만명, 프라테아인(Platea: 그리스 여러 도시 국가들 가운데 하나) 1천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페르시아 보병은 장비도 좋지 않고 특히 그 창의 길이가 짧았다. 그러나 페르시아 군대 힘은 바로 창과 활로 무장한 기병에 있었다. 마라톤과 같은 평야는 기병 작전에 매우 효과적이었던 반면, 그리스 군에게는 두려운 지형이었다. 페르시아군이 아테네로부터 이틀간의 행군을 필요로 하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평야이기 때문이었다. 아테네로서는 만일 스파르타 지원군이 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다면, 지원군이 모두 보병일지라도 그들과 힘을 합하여 야만인 페르시아군을 모조리 바다로 몰아낼 수가 있었다.

       마라톤 평야

    그리스군은 스파르타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달리기를 잘하는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ides를 보냈다. 스파르타는 돕겠다고 했지만 종교적 축제 때문에 출발이 늦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아테네와 플라테아 동맹군은 마라톤 평야 주변의 산을 장악하고 있었다. 아테네군을 지휘하는 열 명의 장군들은 산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공격을 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의 일치를 못하고 있었다. 칼리마쿠스Callimachus는 지휘관이지만 의사결정에서는 한 표만 행사할 수 있었다. 전투 중 야전군 사령관 직은 장군들 사이에 돌아가며 맡았고, 사령관은 하루만 전군을 지휘할 수가 있었다. 장군 중 한 사람인 밀티아데스Miltiades는 칼리마쿠스에게 공격에 나서라고 했다. 칼리마쿠스는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칼리마쿠스는 그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아테네 장군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시민이 통치하는 민주주의 문명 세계에서 한 사람이 결정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지극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전제적인 왕들을 배척했고, 아테네도 마지막 전제군주 히피아스Hippias를 몰아내고 전제군주를 반대하는 법을 제정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사위인 마르도니우스Mardonius에게, 이오니아Ionia 참주(僭主)들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당시 이오니아는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 참주들이 시민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리우스대왕은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그 참주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오니아 시민들은 이제 스스로 법을 제정할 수가 있었으나 다리우스의 승인을 받아야 그 법은 효력을 발생했다. 제거된 참주들 가운데 밀티아데스Miltiades는 페르시아 공략을 갈망했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는 당연히 아테네 시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체로네세(Cheronese: 현재의 터키 Gallipoli 반도)의 참주가 되었던 것이다. 밀티아데스는 아테네로 도주했지만 그곳에서 반참주법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참주 재임 시 렘노스 섬(Lemnos Island: 그리스 앞바다 섬)을 정벌하여 복속 시켰던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무죄석방이 되었고 장군으로 선출이 되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전직 참주를 경멸하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아테네와 에레트리아Eretria(그리스 도시 국가 중 하나)는 이오니아의 대 페르시아 저항을 도왔고, 페르시아의 그리스 원정은 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칼리마쿠스는 다리우스가 그리스 전체에 대한 야욕이 있다는 걸 알았고 또 많은 도시 국가들이 다리우스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오직 아테네와 스파르타만이 예외였다. 칼리마쿠스는 페르시아군이 갑자기 움직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야만인들이 6백척의 배가 정박해 있는 해안으로 말들을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다리우스Darius the Great: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를 “대왕”이라고 불렀다. 페르시아 수도 수사Susa에서 다리우스는 원정군으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입장에서 그리스인들은 골칫거리였다. 페르시아 제국 밖의 그리스인들은 제국 내 그리스인들의 반란을 부추겼던 것이다. 마르도니우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오니아 반란을 진압한 후 그는 그리스 본토로 진격했다. 테살리(Tessaly: Aeolia로 알려진 Aegae해 접안 지역)지역은 금방 항복을 했지만, 유랑민인 트라키아(Tracia; 지금의 불가리아 남부 및 그리스 동부 일부 지역 )는 완강한 저항을 했다. 전쟁에는 바다도 개입했다. 맹렬한 폭풍우는 페르시아 군의 보급을 담당했던 선박들을 거의 침몰 시켰고 따라서 마르도니우스는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다리우스 -

    당시 그리스는 대부분이 불모의 산악지역이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식량 조달을 상업에 의존해야만 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해상에서 거대한 군대를 운영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즉 페르시아군은 배로 보급을 해야만 했다. 뱃길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스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당시로부터 불과 45년 전, 그리스 소규모 도시국가인 포카에아Phocaea 선단이 자신보다 두 배나 더 큰 규모의 카르타고 선단을 무찌른 바 있었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현재의 레바논)의 식민지로, 페니키아는 페르시아에게 해군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당시의 그리스 해군은 소아시아(Asia Minor)의 이오니아 해안과 다다넬스(Dardanelles; 터키와 유럽을 분리시키는 좁은 해협), 크리미아 반도, 아프리카의 시레네(Cyrene; 현재의 리비아 Shahhat 시), 마씰리아(지금의 프랑스 마르세이유), 지중해와 이베리아 반도의 대서양 해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만일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단결한다면 다리우스 군대를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스로서는 육지에서의 싸움이 쉽지가 않았다.

        다다넬스 해협

    그리스 군대는 산 협곡에서 싸우는 게 이상적일 수 있도록 편제되어 있었다. 보병은 모두 무거운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했다. 청동제의 헬멧을 써 눈과 입을 가렸고, 착 달라붙는 갑옷과 다리보호를 위한 각반에다 커다란 청동제의 방패를 들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 한 화살로 그 갑옷을 뚫는다는 건 어림없었다. 보병은 단검을 차고 제2의 무기로 긴 창을 들었다. 

  

    그리스 병사

  
       투구

    전투 시 그리스 군대는 방진方陣(Phalanx: 창병들이 여러 겹의 긴 횡대를 이루어 공격하는 전술)을 썼다. 공격할 때는 피리 소리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문명화된 지역에서는 그리스 용병을 필요로 했고, 그들은 세계 최고의 보병들이었다. 따라서 당시 그리스를 제압하려면 인해전술이 필요했고 그에 필요한 병력은 바다로부터 공급해야 했다. 그러나 바닷길은 그리스 해군과 에게해의 폭풍우로 대단히 위험했다. 따라서 그리스를 정복한다는 건 기약할 수가 없었다.

                Phalanx 


    다리우스가 그러한 우둔한 뱃길을 택할 리 없었다. 그는 왕위를 찬탈한 사람으로, 사이러스 대왕(Cyrus the Great, 590–580 BCE: 페르시아 아키메니드 왕국 창시자)의 무너진 왕국을 재건한 사람이다. 그는 제국의 영토를 인도 접경까지 넓혔으며, 헬레스폰트(Hellespont; 지금의 다다넬스 해협)를 건너 유럽으로 진군하여 트루키스탄의 스텝 벌판까지 진출하고 나일 강을 건너 수단의 사막지대까지 진출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인들과 실전이 아닌 심리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에레트리아 함락:

    다티스(Datis: 다리우스 휘하의 페르시아 장군. 그리스 전문가)는 훌륭한 지휘자였다. 그는 페르시아가 아닌 페르시아 북쪽 나라 메디아 사람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가 에레트리아를 공격하자, 그곳 시민들이 6일간을 저항을 했다. 그러자 어떤 반역자가 페르시아 군에게 성문을 열어주었다. 페르시아 첩자가 사전에 그를 접촉한 것으로 보였다. 도시로 진입한 다티스는 정한 절차에 따라 작전을 전개했다. 약탈과 사원에 대한 방화, 시민들의 노예화를 단행했다. 그런 다음 마라톤으로 향했다. 그는 그리스군이 출현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테네의 성문이 열렸다는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만일 신호가 곧 오지 않는다면 스파르타군이 도착할 것이고, 그럴 경우 지옥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에레트리아에 대한 약탈이 아테네군 사기를 저하시켜, 그들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마침내 누군가 청동 방패로 햇빛을 받아 페르시아군을 향하여 신호를 보냈고, 다티스는 곧 공격명령을 내렸다.

다티스의 패주:

    페르시아군은 강력한 기병을 최전선에 내세웠다. 한편 칼리마쿠스는 공격에 찬성표를 던졌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은 앞에서 말한 밀티아데스가 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4개의 횡대를 중앙에 배치 시켜 페르시아군에 맞섰다. 좌우로는 각각 8개 횡대를 배치하여 적 기병의 측면 공격에 대비했다. 피리 소리에 맞추어 그리스 보병은 늘 하던 대로 적을 향해 느린 발걸음으로 질서정연하게 진군했다. 적전 2백 야드까지 다가섰을 때 페르시아 군의 화살이 비오 듯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스군의 방패에 맞은 화살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적진을 향해 그리스 군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갔다.

                마라톤 전투

    페르시아군의 중앙은 페르시아인과 사카족(Sakas: 스키타이인과 관련을 맺은 페르시아인)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그들은 많은 전사자를 내며, 그리스군의 취약 부분인 중앙부를 결사적으로 공격했다. 그리스 군의 창이 더 길었고 갑옷도 더 강했다. 페르시아 군은 그리스군 방패를 타고 올라, 도끼나 검으로 그리스 병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스 군의 중앙부가 뒤로 밀렸다. 그러나 좌우 날개의 8개 횡대는 진군을 계속하였다. 중앙부가 붕괴되자, 좌우 날개 병력이 그쪽을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페르시아군이 포위된 것이다. 피아 병사들이 뒤섞이자 페르시아군의 화살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페르시아군은 그들의 배로 퇴각을 하였고 그리스군이 뒤쫓았다. 그리스는 일곱 척의 페르시아 배를 나포하였을 뿐 페르시아군은 모두 도주를 할 수가 있었다. 배를 타고 도주를 한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향했다. 그들에게 바닷길은 산길보다 쉬웠다.

위대한 뜀박질:

    밀티아데스, 칼리마쿠스 그리고 그리스의 장군들은 방패로 햇빛을 받아 페르시아군에 신호를 보낸 뜻을 알고 있었다. 아테네를 페르시아에 넘기려는 반역자들의 뜻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불렀다. 승리를 아테네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스파르타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장군들이 그에게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직업이 전령이었던 페이디피데스는 지금까지 뛰어 본 적이 없는 속도로 뛰었다. 절름거리며 아테네에 도착한 그는 “나이키, 나이키(Nike: 승리의 여신. 그리스 신화)”하고 소리친 후 숨을 거두었다. 반역자들은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을 무찔렀다는 걸 알고 모두들 도망을 쳤다. 다리우스의 군대를 환영하겠다는 그들의 뜻도 분쇄가 된 것이다.

       아테네에 도착한

            페이디피데스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에 도착해보니, 예상과는 달리 성문은 굳게 닫힌 채 그리스군이 방어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군은 즉시 퇴각했다. 그러나 다리우스의 아들 세르제즈(Xerxes)는, 그리스를 다시 공격하기로 했다. 그는 대군을 그리스로 보냈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반도를 휩쓸었고, 아테네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들은 다리우스가 예상했던 대재난을 맞게 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524–459 BC; 비 귀족 출신의 아테네 정치가 겸 군인)가 지휘하는 아테네 함대가 페르시아 해군을 살라미스Salamis(그리스 연안의 섬) 인근 해역으로 유인하여, 전멸시켜버린 것이다.

            살라미스 해전

    세르제즈는 철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르도니우스에게 남은 병력을 넘겨주며 지키라고 한 다음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그 다음해 그리스 도시동맹은 방진(方陣)전술로  남아 있던 페르시아 군을 전멸 시켰다. 그리스 민주주의가 되살아난 것이다.

   마라톤에서 전사한

    그리스 병사 묘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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