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든
Walden
by
Henry David Thoreau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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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780~1842);
아마추어 자연주의자, 수필가, 고독과 시를 사랑하는 인물. 랠프 왈도 에머슨의 제자. 왈든 호숫가 에머슨의 토지에 오두막을 지어, 그에 대한 지적 채무를 상징케 하는 인물. 칸트의 선험론에 영향을 받은 그는 교육, 자립정신, 영적 깨달음을 통하여 자기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인물.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수필가, 시인. 선험주의를 이끄는 지도자. 소로우의 스승 겸 보호자. 인습을 지킬 것인가에 관해 소로우와 견해가 다른 인물.
테리앙Alex Therien;
소로우 이웃의 노동자. 소박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사는 인물. 문맹이지만 지적인 면이 있는 남자. 소로우가 왈든 호수에 비견하는 인물.
존 필드John Field;
아일랜드계 미국인 노동자. 정직, 근면하나 주변머리가 없고, 타고난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없어 고생하는 인물.
앨코트Amos Bronson Alcott;
소로우가 철학자로 칭하는 인물. 교육자겸 사회개혁론자. 보스톤 소재 Temple School 설립자.
챈닝William Ellery Channing;
소로우의 친구. 시인. 선험철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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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소로우는 마사추세츠 주 콩코드 인근 왈든 호숫가(그의 정신적 지주인 랠프 왈도 에머슨 소유의 토지)에서 보낸 2년간의 모험적인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그곳에서 2년 2개월을 보낸 후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갔는데, 이는 영원한 삶의 양식이 아닌 다만 실험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시도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했는데, 야생에서 자신이 누린 행복, 겨울철 자신의 건강에 대한 관심, 쉽게 교우관계를 포기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 그리고 사람들의 질투심에 관해 말을 하고 있다.
소로우는 자신의 실험이 가르쳐 준 교훈 즉, 단순한 생활양식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영위한 단순 소박한 생활을 자세히 이야기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그 가치를 깨닫게 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은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지나친 노고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근심과 정신적 압박 때문에 모든 시간을 노동에 쏟아붓고 그 결과 내면의 자유를 잃게 된다고 했다. 죄수들이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어 있듯 농부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농장이라는 사슬에 매어 있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필요 이상의 일은 사람들을 속박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사물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은 늘어나고, 이와는 반대로 필요성은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소로우는 단연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소로우는 4가지 필수품 즉 식품, 거처, 옷, 땔감을 말하고 있다. 자연은 이 물건들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음으로, 사람은 누구나 이 자연이 주는 기본적인 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토지에 집착하지 않고 최소한의 노고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로우는 단순 소박함과 자립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두막집을 지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한 그는 나무를 자르기 위한 도끼를 빌려야했다. 그는 그 도끼를 빌렸을 때보다 더 날카롭게 갈아 돌려주었다. 그는 몇 가지 기부 받은 물건도 사들인 물건도 있었다. 느긋하게 일을 시작하여 봄철 내내 꾸준히 일을 하였다.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 소로우 자신이 인습과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그날, 그는 이사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집을 짓고 농사일을 한 전과정을 세세히 기록을 하여 독자와 공유했는데, 주고받은 돈을 문자 그대로 한 푼도 빠짐없이 회계처리를 했다. 농사일로는 대략 15달라를 투자하여 9달라 가량의 이득을 보았다고 했다. 콩, 옥수수, 완두콩, 감자 등 자신을 지탱해준 일상 식품들에 대한 설명과 이들의 시장 가격도 말해주었다. 왈든에서의 첫 8개월 동안 소로우는 대략 62달라의 비용을 써 37달라의 소득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까 25달라의 비용으로 집과 원하는 자유를 얻은 것이고, 그의 생각으로 이는 괜찮은 거래였다.
나는 어디에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
소로우는 왈든을 선택하기 전에 정착할 뻔했던 몇몇 장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두 규모가 거대한 곳들이었다. 그는 로마 철학자 카토(Marcus Porcius Cato, 234~149 BC)가 한 경고의 말을 인용했는데, 농장을 사들이려면 문서에 서명하기 전 그 구매 여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많은 개선점이 필요했던 인근의 농장에 관심이 있었으나 문서에 서명을 하기 전, 그 농장주의 아내가 돌연 팔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따라서 소로우는 구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토지에 대규모 경작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포기야말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생활이 단순해진 그는 “가능한 한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은 삶” 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소로우는 의무에서 벗어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숲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우체국과 우편제도가 대변하는 모든 억압적인 사회관계를 벗어나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법적 행위의 포기는 역설적이게도, 그로 하여금 진정한 소유주가 되게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의 군주(영국 시인 William Cowper(1781~1800)가 한 말)”라는 뜻에서 한 사람의 시인과 같다.
소로우가 왈든에 새로 지은 집에 대한 기쁨은, 처음으로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자존심 이상의 것이었다. 그 집은 그의 내면에서 빛나는 철학적 성취이며, 바로 본질적인 문제를 극복했다는 상징과 같았다. 독립기념일에 그는 그 새 거주지로 이사를 하였고, 아직 굴뚝이 없고 벽토를 못 발랐지만 올림푸스 산꼭대기 신이 된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만일 느낄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신들에게나 적합한 천국은 어디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낙관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누구든 자신의 내면 속으로 여름날 밤 신선한 공기의 유익함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누구든 영혼이라는 예술 속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새겨 넣음이 좋다고 했다. 소로우의 오두막은 거의 정신적인 재료로 지은 집으로 천문학자들이 야간에 관찰하는 아득히 먼 곳, 어느 천상의 집과 같았다. 그는 카시오페아 좌 뒤 아득히 먼 우주의 어느 곳, 그 오두막 속 나무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걸 더 좋아한 것이다. 그는 시간과 물질로부터 자유롭고, 시간은 하나의 강으로서 자신이 낚시질을 하는 곳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에 간여할 수 있는 듯했다. 마치 영원 속에서 사는 신처럼. 그는 맨 아래 암반에 이르러 “리얼로미터(Realometer: 인식의 현실성을 측정하는 상상의 도구)"로 진리를 잴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실존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로 말을 맺고 있다.
소로우가 몰두한 즐거운 일들 가운데 하나는 독서이다. 그는 고대 이집트나 힌두의 현인들이 신상으로부터 장막을 걷어 올린 일을 독서에 비교하며 독서의 이익을 크게 주장하였다. 독서에 관한 그의 이 같은 발언이 풍자냐 아니냐의 논쟁이 되고 있지만, 어쨌든 독서는 숲속 생활 특히 건물을 짓고 난 후 그의 중요한 오락 가운데 하나이었음이 분명하다. 집을 짓던 여름 내내 호머의 일리어드Iliad를 책상 위에 놓고 이따금씩 들여다보았지만, 지금은 오두막으로 다만 이사를 한 것이 아닌 앞에서 말한 현실에 대한 완전한 지배자로서 독서는 새로운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현대의 싸구려 번역본이 아닌 그리스어나 라틴어 원본의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칭송했다.
소로우는 호머의 저서가, 적어도 그의 명성에 합당할 만큼 영어로 출판된 적이 없다고 까지 했다. 그는 농사일이나 집짓는 일을 강조하듯 마찬가지로 “읽는 일”을 강조했고, 훌륭한 독서가를 오랜 훈련과 규칙적인 연습으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운동선수에 비교했다. 소로우는 인쇄된 언어에 신비할 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연설이라도 책만큼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터에서도 일리어드와 함께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소로우는 폭넓은 독서를 권하고, 성경만을 읽는 사람들을 점잖게 조롱하며, 도서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락 관련 책이 아닌 걸작을 읽으라고 했다. 그는 위대한 사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역이지만, 고유한 정신을 좀먹는 콩코드의 지배적인 문화도 비판했다. 기술과 운송이라는 현대 사회의 찬미 받을 발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발전 즉 정신과 영혼의 발전은 잊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대 히브리인들을 이 세상에서 성서를 가진 유일한 사람으로 믿으며, 힌두 교도처럼 또 다른 경전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콩코드 주민들을 비판했다. 소로우는 정신적인 빈약보다 육체적인 질병에 더 많은 희생을 지불하는 주민들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는 분노한 예언자처럼 말하기를, 공공 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며 “뉴잉글랜드는 세계의 모든 현자들을 초청하여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귀족을 생산하는 지역 계급제도를 비판했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을 고상하게 하는 과업을 게을리 하는 일도 꾸짖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귀족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귀족 마을을 갖게 되는” 귀족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소리와 고독:
앞 장에서의 학구적인 태도와는 달리 소로우는 일상생활에 조심하는 일을 칭찬하고 옛 서사시에 빠져드는 걸 반대했다. 읽는 사람에게 단지 독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책을 보는 사람이 될 것이냐를 물으며, 우리는 책으로 배우는 것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고 일상생활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도록“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하는 그 무엇은, 위대한 것이 아닌 소로우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그가 말하듯 따듯한 햇빛이 쬐는 창가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듣고 명상에 잠겨 옷나무를 비롯하여 몇 가지 식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로우의 평온은 그의 집을 지나가는 핏츠버그 철도의 굉음으로 깨어진다. 그는 상업을 생각해보았다. 그는 상업 활동의 역동성을 찬미하고, 그 역동성을 상인들의 용맹성이라고도 했지만 상업에 대한 지나친 욕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를 잃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일요일이면 소로우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다. 밤이 되면 “밤의 마녀”인 올빼미 울음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 울음소리는 신음하듯 “우으으..으 ”하는 소리였다. 그는 올빼미의 존재를 기뻐했는데, 사람들의 “불만스러운 생각”을 소리로 나타내며 “멍청한 소리로 발광하듯 부엉부엉” 했기 때문이었다. 수탉이나 어떤 가축이 없더라도 그의 집은 짐승들 소리로 가득했다. 자연이 바로 창틀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소로우는 자연을 느낀 어느 “유쾌한 밤”을 이야기 했다. 싸늘한 바람이 불었는데, 개구리와 밤 짐승들로 더욱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누군가 방문객들이 몇 가지 선물을 놓고 갔더라고 했다. 가장 가까운 이웃과의 거리는 1마일 정도였지만, 그는 마치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있는 듯 커다란 고독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고독 속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자연 속에서 달콤하고 인정 넘치는 사회”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웃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편안함이 마치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로우가 사회를 포기한 게 아니고, 무의미한 인간 사회를 초자연적인 자연 사회와 맞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동료들이 마음을 닫고 있다면, 그들 가운데서도 누구든 고독할 것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마을로부터 벗어나 느끼는 심오한 기쁨에 관해 명상에 잠겼다. 그는 사람들을 피해 인근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을 사귀었다. 노인은 그에게 “옛 시대와 새로운 영원”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사귄 어느 노부인은 신화보다 더 먼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만남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상상 속이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소로우는 자연이 주는 이로움과 자연과의 깊은 친교를 또다시 칭송했다. 아침 공기 속 미풍이 생활에 필요한 유일한 약품이라고 했다.
방문객들:
소로우는 누구든 함께 동반자가 되고 싶으며, 그들을 위해 방문객 용 3개의 의자를 마련해놓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집이 좁다는 걸 알고, 개인은 국가와 같아 그들 간에는 적당한 넓이의 자연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문 밖 소나무 숲속으로 자주 가서 대화를 가졌다. 대화의 주최자로서 그는 상투적이 아니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였고, 음식이 부족할 경우는 그나 방문객이나 개의치 않았다. 음식 등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더욱 도우며 소로우는, 일천 명의 방문객에게도 스무 명 정도로 쉽게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소로우를 찾는 방문객은 계속 왔다. 그는 마을에 살 때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사회성도 점점 좋아져 갔다. 그를 만나고자 한 사람들은 마을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여행해야 했다. 그는 방랑자들도, 도보 여행자들도 만났다. 소로우는 이처럼 거친 사람들 가운데서도 놀랄만한 특질이 있음을 자주 발견했고, 유쾌하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이와는 반대로 소로우는 거지들을 경멸하며 “자선의 대상은 방문객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거지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는 "딸기 따기“ 같은 행사로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한 열렬한 노예폐지론자로서 소로우는 지하 철도를 이용하여 도주한 노예들을 돕기도 했다. 비록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소로우는 또한 인근 주민이나 노동자들도 맞아들였다. 그들 가운데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행복하고 가식이 없어 보인 그는 벌목꾼 알렉스 테리앙이었다. 소로우와는 달리 그는 문맹이었다. 소로우는 그를 “동물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그의 육체적 강인함과 스스로 즐길 줄 아는 능력이 경이로웠다. 그는 “자각”을 할 만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나 가끔 지혜를 들어낼 때도 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어내길 주저하고 그것을 기록할 능력이 없었으나, 테리앙은 공손하고 검소했다. 그가 가끔 “보잘 것 없으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소로우는 “가장 낮은 계층에도 천재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테리앙을 왈든 호수에 비교했다. 테리앙의 겉모습은 “어둡고 진흙투성이”이나, 그의 내면은 왈든 호수처럼 깊어, 바닥이 없다고 했다.
소로우는 여인들이나 아이들이 남자들보다 숲을 더 즐긴다고 보았다. 그는 상인들이나 농부들에게 농촌 생활의 즐거움이 아닌, 마을로부터 먼 거리 등 그 약점에 유의하라고 했다. 비록 숲속을 거니는 일이 즐겁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그들이 실제로 숲속을 거니는 걸 그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삶은 “생존”에 매달려, 삶을 위한 시간이 없다고 했다.
콩밭:
소로우는 2에이커 반 넓이의 밭에 콩을 심었다. 감자, 무우, 완두콩도 조금씩 함께 심었다. 여름 내내 농사일을 했다. 맨발로 일하면서 설계를 하고 때로는 휴식을 취하며 주변의 동식물을 살폈다. 매일 콩밭의 풀을 뽑으며 농부의 일상생활을 했다. 비가 오면 작물에 도움이 되었고 들쥐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토질을 비옥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는, 백인들이 오기 전 그 옛날 이곳에 한 나라가 있었다가 사라졌고 그들이 옥수수와 콩을 경작하여 그로 인해 토질이 어느 정도 나빠졌음을 알았다. 땅을 파보니 연대를 알 수 없는 흔적들 속에 화살촉과 도기 파편 등 그 증거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소로우는 풀을 뽑으며 자연의 모습과 소리 등 주변의 “고갈되지 않은 즐거움”에 몰입했다. 그러나 또한 근처 마을로부터 콩밭을 건너 군사 훈련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날들에 처해 있음을 알고는, 분쟁 속에서도 자신의 자유는 지켜지리라 확신했다. 그는 포성을 듣는 즉시 “멕시코인에게 즐겨 침을 뱉을 수 있으리라 느낄 것이고...내 기사도를 발휘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 들쥐나 스컹크를 찾아볼 것이며.., 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시골구석의 그는 전쟁의 필요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수확의 결과 소로우는 15달라가 채 못 되는 돈을 지출했고 24달라 어치 수확을 하였으니 대략 9달라의 이윤을 얻은 셈이다. 자신도 콩을 별로 먹지 않았음으로 대부분 쌀과 교환을 하고, 무우와 완두콩은 식량으로 비축했다. 농사에 관한 충고로 소로우는 밭갈이, 해충 방지, 첫서리가 내리기 전 조기 수확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창출해낸 이익에도 불구하고 소로우는, 자신의 농사일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작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드는 건 수확이 아니라 농부의 수양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농장의 성공을 위해 그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사람의 수확에는 별로라는 데 소로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양이 휴한지나 경작지에 차별 없이 빛을 쬐듯 자연은 그해 농사의 성패여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소로우의 생각이었다. 그는 어느 작물이던 그 일부는 들쥐에게 주는 희생물을 뜻한다고 했다. 밭에 번식하는 잡초는 배고픈 농부에게는 바로 저주이겠지만, 배고픈 새에게는 축복이라고 했다. 그는 결론 내리기를, 농부는 근심을 하여서는 안 되며 자연이 내리는 축복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을과 연못들:
정오경에 아침 잡일을 끝낸 다음, 소로우는 연못에서 잠시 목욕을 하고 그날 남은 시간은 여가로 보낼 준비를 했다. 일주일에 몇 번 그는 콩코드로 산책을 했고 그곳에서 최근 소식을 들은 다음 광장이나 상점, 바, 우체국, 은행 등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상점마다 상품을 팔기 위해 소로우를 꼬득였지만 그는 상인들의 뻥에는 관심이 없었고 장터에서 너무 오랜 시간 어슬렁거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이 내리면 그는 자주 왈든 호숫가로 발길을 향했고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익숙해지자 주변의 나무들이나 발자국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보통 밤길이 어둡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을에서조차도 어둠 속에 길을 잃는 일이 많으며 몇 시간을 헤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처럼 길을 잃는 일을 소로우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길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누구든 자신과 “우리들 관계의 무한성”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어느 날 콩코드로 가는 길목에서 소로우는 “상원 의사당 문 앞에서 남자, 여자, 어린이, 가축을 파는 국가”에 통행세 지불을 거부했다는 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다음날 아침 석방되어 왈든 호수로 되돌아갔다. 그는 어떻게 하면 정부의 간섭 없이, 누구의 간섭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감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고 모든 계층의 누구든 언제나 환영을 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도적이란 “누군가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에 존재한다고 했다.
호수들:
물이 있는 곳은 대기 중의 정령과 상반관계에 있다. 그곳은 위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받아들인다. 물이 있는 곳은 땅과 하늘의 중개자이다. 소로우가 마을 생활을 오래하는 동안, 여가는 시골에서 보냈다. 그는 연못 위 보트에서 플릇을 불고, 밤이면 낚시를 하면서 비몽사몽간에 여기저기 저으며 마침내 낚시 줄이 당겨지면 번쩍 정신이 드는 것이다. 그림과 같은 이러한 장면은 소로우로 하여금 콩코드의 호수들 특히 왈든에 대해 묵상하게 하였다.
왈든은 특별히 큰 호수가 아니었지만 매우 깊고 물이 맑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 시대의 시각으로 연못의 물은 청색이거나 초록색 아니면 완전히 투명한 색으로 분류했다. 그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의 몸은 강물에서처럼 황색이 아닌 완전한 백색으로 보였다. 소로우는 왈든 호수가 바닥이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호숫가의 흰색 돌들(wallled-in)은 소로우로 하여금 "왈든“의 어원이 아닐까 생각케 했다. ‘프린트 호수’와 같은 다른 호수들은 각각 특징이 있으나 소로우는 호수들 간 유사성보다는 각각의 특징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연못 변두리에는 앞선 세대가 사용했던 희미한 흔적의 길들이 있다. 소로우는 호수 바닥의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말하고, 그것이 바로 왈든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아닐까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로 이곳에서 저지른 악행에 대한 징벌로, 하나의 언덕이 땅속으로 가라앉아 생긴 호수가 왈든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음을 소로우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옛 정착민들이 연못을 파겠다고 했다는 이야기에 소로우는 이의가 없었다. 그는 호수 주변의 언덕들에 있는 돌들이 호숫가를 이루고 있는 돌들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수에는 동물들도 있었다. 오리, 개구리, 밍크, 사향뒤쥐, 거북이 등 모두들 소로우가 설명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지식이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삶”보다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보다 고차원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호수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커 농장과 고차원의 법:
소로우는 왈든 호수, 프린트 호수 건너 편 숲속을 거닐며 토지를 살펴보았다. 어느 날 낚시를 하다 비를 만난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베이커 농장 근처 오두막으로 갔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니 존 필드 가족이 있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 가족이다. 비록 강연 투이기는 했지만 소로우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하며 필드에게, 무엇이 돈 쓸 일이 우선인지를 생각하고 돈을 절약한다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연은 손을 대지 않은 그대로가 최고의 상태이며 “유일하게 진정한 아메리카”는 차나 커피, 쇠고기 같은 사치품이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소로우는 동료 철학자로서 필드에게 충고를 한다고 했으나, 필드는 그의 견해를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소로우는 필드가 위험 부담에 관심이 없고 지혜로운 충고를 받아들일 만한 “수리 능력”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가족과 나눈 따듯함과 유머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이 그들과 헤어졌다. 더구나 소로우는 필드가 대대로 이어받은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옳지 않은 생각을 했다. 떠나기 전 그는 우물이 더럽고 두레박 끈이 끊어졌으며 두레박도 망가져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마실 물을 요청했으므로, 그 집에서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묽은 죽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음식을 거부할 정도로 자신은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보다 고차원의 법칙들:
집으로 가던 길에 소로우는 들쥐 한 마리를 보았다. 그것을 잡아먹고 싶은 원시적 욕망이 솟구쳤다. 그는 자신의 이중적인 성격 즉 한편은 귀족적이고 영적이나 또 다른 한편은 어둡고 야만적임을 알았다. 그는 자신을 양면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한 개인의 초기 교육단계에서 사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성장을 하면서 지적이고 정신적인 사람들은 한 단계 더 높아지고, 그들은 이제 “총과 낚시대”를 뒤로 물리는 것이다.
비록 소로우는 숙달된 낚시꾼이지만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는 이유는, 물고기란 완벽한 영양 식품도 아니고 청결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건강 악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본능과 원칙에 따라 채식주의를 지향했다. 그는 술, 홍차, 커피 등도 같은 이유로 회피했다. 그에게는 가장 검소한 음식이 최선의 음식이고 육식은 도덕적으로도 천박한 것으로, 스스로 도살을 해야 한다면 고기를 먹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목사는 사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곡물이나 채소는 요리도 쉽고 포만감도 있다고 했다. 식욕에 복종하기보다는 즐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즐기는 음식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이 많지만, 음식 맛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목을 축이기에는 포도주보다 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단순한 그의 입맛은 그의 다른 즐거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소로우는 음악이 주는 긴장보다는 신선한 공기 흡입을 더 좋아했다.
소로우는 자신의 고결한 성격과 동물적인 성향을 구별하고 싶어 했다. 노력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패의 경우에도 상당한 보상이 따랐다고 했다.
사람이란 동물적인 본능이 사라지면 신성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소로우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정숙할 수도 관능적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돌보는 건 각자의 책임이다. 그는, “모든 사람은 성전을 세우는 자” 라고 했다. 이 책임의 증거는 얼굴과 태도에 분명히 나타난다고 했다. 옳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면 고상한 인품이 눈에 보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천한 모습이 눈에 띄게 마련이라고 했다. 끝으로 소로우는 존 파머라는 사람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파머는 높은 수준의 음악을 듣는 평민을 대표하는 사람인데, 희망이 없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품고 보다 간소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파머는 마음을 낮추어 자신을 부활시키고, 그 이후 존경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야생의 이웃들과 난방:
소로우는 친구 챈닝(William Ellery Channing, 1780~1842)이 콩코드에서 오면, 함께 왈든 호숫가로 가 낚시질을 했다. 시인으로서의 챈닝과 은둔자로서 자신 간에 나눈 많은 대화 가운데 하나를 인용하고 있다. 시인 챈닝은 하늘의 구름에 몰두한 반면 소로우는 저녁 식사용 물고기 잡기라는 현실적인 일에 열중했다. 결국 챈닝은 물고기를 잡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소로우는 집안의 생쥐들과 놀이를 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그의 손에 있던 치즈를 낚아챘다. 그는 또 딱새, 개똥지바뀌, 자고새와 그 새끼들과 수시로 맞닥뜨렸다. 그는 이 야생 조류들을 암탉이나 병아리라고 불렀다. 드문 일이기는 했지만, 수달이나 너구리도 보았다. 그는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에 의존하면서도, 숲에 숨어 사는 너구리의 능력에 놀라기도 했다. 그의 오두막으로부터 약 반 마일 떨어진 곳에 우물을 팠는데 오전 일이 끝나면 그곳으로 가 점심을 먹고, 물을 긷고, 책을 읽기도 했다. 그곳에서 도요새와 호도애새를 자주 보기도 했다.
언젠가 소로우는 작은 몸집의 붉은 개미와 싸우는 커다란 흑개미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흑개미군단과 붉은 개미 군단의 싸움이었다. 붉은 개미 군단의 병정개미 수는 흑개미 군단의 반에 불과했다. 그 걸 본 소로우는 인간의 전쟁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병정개미들은 인간 병사와 마찬가지로 용감하고 사기충천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병정개미가 붙은 나무 조각을 집으로 가져가 관찰하기로 했다. 유리 뚜껑을 덮고 관찰했다. 목이 잘린 놈, 먹이가 된놈..., 그는 살아남은 개미를 놓아 주었다.
소로우는 숲속에서 자주 고양이들을 만났다. 집 고양이지만 숲에 적응이 되어 야생이 살아나, 그가 접근하면 성난 소리를 냈다. 그는 날개가 달렸다고 한 고양이 한 마리가 생각났다. 나르는 다람쥐와 잡종이 아닐까 할 정도로 날쌘 고양이었다. 그는 그 고양이를 본 적이 없고 그 가죽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방석용이었다). 그는 시인이 되어 날개 달린 고양이를 갖는 환상에 젖었다. 그는 연못으로 가 보트를 타고 물새를 쫓는 때도 있었다. 물새는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하였지만, 가까이 가면 물속으로 다이빙을 한 후 웃음과 같은 큰소리를 내며 다시 솟아올랐다. 소로우는 이러한 과정에서, 오리들의 움직임에서 또는 기타 “야생의 이웃들”의 움직임에서 아무런 운율이나 움직임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물과 주변의 자연 환경에 취해 환호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난방:
야생 사과와 밤나무 목장을 갈면서 소로우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연의 선물이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아직도 그가 즐길 수 있는 많은 것이 남아 있기는 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은 눈부신 장관이 펼쳐지는 길로 오는, 가혹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령이라는 걸 소로우는 잘 알고 있었다. 말벌은 무리지어 추운 겨울을 벗어나고, 소로우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갈 터였다. 그는 호수 건너편으로 가 잦아드는 가을 햇빛에 잠시 몸을 담았다. 계절은 여름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소로우는 친구 챈닝의 도음을 받아 오두막에 굴뚝을 세우기 위한 석공 일을 공부하고 있었다. 11월이 되자 여름에 한 일이 훌륭한 투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는 난롯불로 따듯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왈든 호수가 얼기 시작했다. 소로우는 얇은 어름을 밟고 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물 아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고, 얼음 그자체도 그를 사로잡았다. 특히 공기 방울이 솟아올라 얼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얼음을 깨고 관찰해보니 물방울 주변에 어떻게 얼음이 형성되는지 알 수가 있었다. 공기 방울이 얼음을 깨뜨려 소리를 내게 하고 있었다. 한 겨울이 되자 소로우는 일상적인 겨울철 일을 시작했다. 난로용 나무를 하고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떼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 가지 나무 장작과 불쏘시개를 사용하여 난로에 불을 지피고, 지하실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두더지가 아늑하게 지내도록 해주었다. 그는 난로가 빈자나 부자 모두 따듯하게 해준다는 것과, 빙하시대가 다시 오면 빈부 차별 없이 모두 죽는다는 걸 깊이 생각해보았다.
과거의 거주자들과 겨울 방문객들:
소로우는 난로 옆에 홀로 앉아 많은 밤을 보냈다. 창 밖에는 눈보라가 쳤다. 눈을 헤치고 마을로 가는 통로를 열수도 있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야생 속에 홀로 있는 소로우는, 왈든의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콩코드와 링컨을 연결하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았지만 그 세기 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리라는 게 소로우의 생각이었다. 초기 주민들은 대부분 흑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카토 잉그래함, 노처녀 질파, 브리스터 프리만과 그의 아내를 생각했다. 그들의 집은 이제 세월이 흘러, 또는 화재로 모두 파괴되거나 사라져버렸다. 그는 12년 전 불타 없어진 브리드의 집을 기억했다. 그와 소방관이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거리가 멀어 늦게 도착을 하였다. 그 집을 물려받은 상속자가 충격으로 바닥에 누워 사라져버린 재산에 대해 머뭇거리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링컨 인근에 와이만이라는 옹기장이가 땅을 개척하여 거주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왔다. 워털루 전쟁 참전 병사 였던 휴즈 콰잉이라는 아일랜드 사람이 숲속에 살다가 와이만이 사는 곳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한 때 그들의 가정이었던 움막과 폐허가 된 집터 가운데 소로우가 홀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한때 신흥 마을이 들어섰던 그곳은, 소로우 시대에는 폐허가 되고 잔디와 라이락이 무성하여, 그것들을 심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 속 인간의 터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인가, 소로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 겨울 소로우는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고 동물들과도 접촉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동료들은 새장 속의 올빼미, 들쥐, 챈닝, 그리고 철학자 아머스 브론슨 앨코트였다. 그의 멘토이며 동시에 보호자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도 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 책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겨울 동물들:
얼음이 언 호수 위를 걸으며 소로우는 얼어붙은 물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스케이팅을 하기에 넓고 넓다는 걸 알았다. 이때가 되면 숲을 통해 들려오는 올빼미와 기러기 울음소리를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붉은 다람쥐들이 여기저기 뛰놀고, 땅거미가 지면 토끼들은 먹이를 찾아 나온다. 달밤에는 여우들이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다. 그러한 짐승들이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소리, 얼음이 깨지는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왔다. 소로우는 문가에 날옥수수 놓아, 다람쥐나 토끼들을 오게 하여 먹게 했다. 또 때로는 앞발로 먹이를 들어 먹는 작은 동물들 모습을 몇 시간씩 지켜보기도 했다. 먹이를 물고 숲으로 가는 모습,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 모습도 보았다. 이 버리고 간 먹이를 찾아 어치, 박새, 참새들이 날아들어 먹어치우는 것이다. 사냥감을 찾아 짖는 사냥개 소리가 들려오는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왈든을 지나가는 사냥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겨울 호수:
아침에 일어나 소로우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날 쓸 물을 긷는 일이다. 겨울철이면 이 일은 매우 힘들었다. 얼음을 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한 무리 어부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그들의 원시적인 물고기 잡이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보고는 더욱 놀랐다. 색깔이 또렸한 강꼬치고기로, 이 물고기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대구나 또는 북대서양산 대구와는 다른 물고기였기 때문이었다.
왈든 호수의 깊이를 재고 바닥이 없다는 신화를 깨기 위해 소로우는 낚시 줄과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많은 주민들이 왈든 호수는 바닥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소로우가 재어보니 1백 피트를 조금 넘었다. 그는 사람들이 천국과 영원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어떤 방식으로 믿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았다.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소로우는 왈든 호수의 바닥 생김새를 감각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호수를 둘러싼 주변의 지세와 같다는 걸 알았다. 호수의 가장 길고 넓은 지점에 가장 깊은 곳이 있었다. 이 사실을 바다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는 인근의 화이트 호수 깊이를 추를 사용하여 재어보았다. 결과는 가설과 같았다. 자신의 이론을 증거로 밑받침하기 위해 그는 형이상학적 차원 즉, 한 인간의 행동과 그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의(그녀의)영혼의 깊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봄 그리고 결어:
봄이 오자 왈든 호수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고 물 흐르는 소리는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지혜를 갖춘 어느 노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노인은 -소로우는 그가 만일 메두셀라(Methuselah, 969세를 산 성서 상의 인물)만큼 산다면 그 지혜를 이길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연에 대한 오랜 경험에도 불구하고 얼음 녹는 소리에 두려움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얼음 녹는 소리는 우주가 녹아내리는 소리로 모든 것이 전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전하는 소리이다.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모래도 흐른다. 꽃과 잎이 핀다. 머리 위로는 갈매기들이 날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울음소리를 낸다. 이 같은 새 생명의 계절에 소로우는 이제 낡은 욕심을 버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계절에 영감을 받은 그는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그는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나는 우아한 한 마리 독수리를 찬양했다. 그는 우주의 생명이 뛰는 맥박 소리, 영혼의 대 격동 소리를 듣고 이제 그러한 분위기 속에 죽음을 맞는다면 아무런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의 임무는 완성이 된 것이다. 1847년 9월 6일 그는 왈든 호수를 떠났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분위기를 바꿔보라는 권고를 한다는 걸 소로우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이상으로 넓다”라고 하며 그러한 권고를 무시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영혼의 변화이지 눈에 보이는 것들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왈든 호수를 떠난 이유는 그곳을 찾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합당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삶이 있고 경험해야할 변화가 있는 것이다. 누구든 신념을 가지고 “꿈을 향해” 살려고 하면 갑자기 그 꿈이 실현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삶이 진정으로 중요한 목표라고 했다. 삶의 목표는 “잔지바르 고양이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즉, 아프리카 잔지바르를 여행하며 고양이 수를 세는 걸 비하한 말. 내면의 여행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비유).
그는 당시 미국인들의 무감각과 저열한 생활태도를 슬퍼했다. 왜 그들이 성공을 위해 그처럼 절망적으로 서두는지 의아했다. 그는 유행 옷을 팔아치우고 올바른 생각을 할 것이며 문명화된 집을 버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걸 촉구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가 최대 행복이라고 했다. 지나친 부는 불필요한 사치품들을 사들일 뿐이라고 했다. 영혼이 필요로 하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인간이란 자신이 있는 곳을 모르고, 삶의 반은 잠을 잔다고 했다. 이 보잘 것 없는 삶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인간 곤충”으로 부르고, 자신 위에 서 있는 “위대한 후원자와 지성”에 대해 숙고케 했다. 그는 그의 말을 읽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나 이는 중요치 않다고 하며 끝을 맺었다. 새날이 밝아오고 새벽 별인 태양이 새로운 생명을 전하고 있었다.(C)
Translated into Korean by Hung S. Park
for More Readings;
www.beethovenno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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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David Thoreau(1817-1862):
미국의 철학자겸 작가. 미국의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과 자연과 소박한 삶을 칭송한 인물. 그를 전통주의 철학으로 인도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작가. 에머슨은 그를 선험철학(transcendentalism)으로 인도하였고, 이 철학은 소로우의 사상과 글에 중심이 됨. 소로우는 1849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Walden"으로 저명 인사가 됨. 일생을 통해 그는 개인의 자립정신과 개성을 강조함. 그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고, 미-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세금 납부를 거부, 투옥되기도 함. 노예제도에 반대하기도 하였음. 투옥 경험으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씀.
이 책은 미국은 물론 레오 톨스토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미국 시민권 운동에도 힘이 되어줌. 1862년 폐렴으로 사망함.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요?
ReplyDelete출세지상주의와 배금주의의 헛된 환상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월든은 깊은 깨우침과 위안을 줍니다. 소로우는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라고 권하죠. 소위 말하는 출세라는 것도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거품 같은 명성과 부를 위하여 짐을 잔뜩 지고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로우는 짐부터 내려놓으라 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