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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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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보수란Conservatism?   for More Readings; www.beethovennote.com ~~~~~~~~~~~~~~~~~~           보수와 진보, 라는 두 어휘가 우리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우리에게 낯설었던 이 단어들이 어느 날, 불현 듯 우리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이 두 단어를 두고 시민들이 편 갈라 싸운다.  어느 저명한 법률가의 글에서 보수 즉 우파 는 “질서 즉 법의 편”으로 “옳은 쪽(오른쪽이 아닌)”이며, “원칙을 지키고” "반듯하고 선량"하면서 "술수를 부리지 않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 인용문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러한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는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로” 정의되며, 한 사회가 지금까지 보존해온 전통과 관습을 가장 보배로운 자산으로 본다. 17세기 영국의 정치가 캐리(Lucius Cary; 1610~43)는 “멀쩡한 물건은 고칠 필요가 없다” ,라고 했는데, 이는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을 표현한 것으로, 위험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말하고 있다. 보수주의는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 변경은 사회를 더 낭패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허황된 약속보다는, 고칠 필요가 없는 과거에 대한 확고한 신뢰, 안정된 사회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주의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에 반대하고, “기왕에 해본 것”에 집착한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 사회의 공동 이익에 부합해온 멀쩡한 제도를 버리고, 그 유용성이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법이나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관점이다. 프랑스 혁명에 반대한 보수주의 아버지 버크(Edmund Burke 1729~97)는 그의 논문 “프...

프랑스 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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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nch Revolution(1789)   for More Readings:   www.beethovennote.com ~~~~~~~~~~~~   1. 프랑스 대혁명(개요)      프랑스 대혁명은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결합한 결과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은, 루이15세와 루이16세의 구체제( Ancien régime )  개혁 시도가 오히려 혁명을 초래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루이14세, 루이15세 또는 루이16세, 아니면 이 세 사람 모두 혁명 발발의 책임자라고 말한다. 루이14세 (1643~1715)에 의해 약화되긴 했지만, 귀족들은 아직도 왕권에 도전할만한 강력한 세력이었고, 루이15세(1715~74)와 루이16세(1774~92)는, 그 누구도 강력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귀족들은 특권하에 군대나 정부의 고위직을 독점했고, 캐톨릭 승려는 병원, 학교, 고아원의 운영자들이었다. 출생, 사망, 결혼에 따른 신고는 교회 소관이었고,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사생아로 취급되어 법적인 권리가 없었다. 이 같은 교회와 귀족세력의 발호는 사회적 긴장을 불러왔고 또 왕으로 하여금 개혁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더구나 루이14세가 양위를 할 당시 프랑스는 7년전쟁, 스페인왕위 계승전쟁 등 일련의 전쟁으로 인한 전비 때문에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었다.      또 루이15세나 16세의 치세 중, 프랑스는 수많은 군사적 외교적 패배를 했고, 이로 인해 왕권의 버팀목인 군대의 충성심과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다. 치세 초기 루이15세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치세 말에는 뽕빠두르 (Madame de Pompadour), 뒤 배리(Madame du Barry)등 귀부인들이 개인적인 취미를 위해 정사에 관여...